[역사와 현실] 개혁 앞의 목은 이색

이정철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2021. 4. 22.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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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이색은 고려 말 최고의 학자였고 최고위 관직을 지냈다. 그와 같은 연배로 그의 학문적·사회적 명망을 앞서는 사람은 없었다. 아버지 이곡에 이어 그도 고려와 원나라 과거시험에 합격했다. 고려 말 고려의 관료와 지식인들이 느끼는 원나라의 힘과 권위는 아마도 오늘날 한국 지식인과 관료들이 미국에 대해 느끼는 것 이상이었을 것이다. 이색의 명망은 개인적 탁월함 때문만도 아니다. 그는 과거시험을 4번이나 주관했다. 고려시대에 과거 시험관인 좌주와 그가 뽑은 합격자인 문생의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에 비길 정도였다. 이들은 관료조직 안에서 강력한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이정철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고려 말 최대의 개혁 과제는 토지 개혁, 요즘 식으로 말하면 부동산 개혁이었다. 고려가 원나라 지배를 받기 시작한 원종부터 마지막 공양왕까지 11명의 왕이 재위했다. 100년 넘는 이 기간에 개혁기구가 16번 설치되었다. 어린 나이에 즉위한 뒤 곧 죽은 왕 하나를 제외하면 모든 임금이 재위기간에 1회 이상 개혁기구를 설치했다. 부유하고 세력 있는 가문들이 합법과 불법을 넘나들며 토지를 긁어모았다. 이것이 국가재정과 군대를 파탄 냈고,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렸다. 개혁기구가 16번이나 설립되었다는 것은 개혁이 계속 실패했다는 말이다.

이색은 존경받는 온건한 개혁 성향의 인물이었다. 20대 중반에는 개혁 상소를 올렸다. 이성계가 위화도회군을 성공시킨 후 개혁내각을 꾸릴 때 그는 수상에 발탁되었다. 이성계는 그를 높이 평가했고 아마 존경했을 것이다. 그는 이성계보다 7살이 많았다. 위화도회군 직후 이성계 세력은 토지 개혁을 시작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색이 이 개혁에 반대하고 나섰다. 아마 누구도 이색의 행동을 예상하지 못했으리라.

이색은 위선적이었나? 겉으로는 도덕적인 체하고 뒤로는 부패한 인물이었나? 그렇지 않다. 그는 적지 않은 땅을 가졌지만 모두 적법한 땅이었다. 그는 관직 복귀 이전 10년 넘게 벼슬이 없었다. 만약 부패한 이전 집권세력과 타협했다면 충분히 높은 관직을 얻었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기회주의적인 인물이었다면 이성계 세력의 개혁에 동조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개혁으로 자기 땅을 빼앗길 일이 없으면서 개혁파 수장으로 이성계 다음 자리가 예약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왜 개혁을 반대했을까? 아마도 높은 수준의 토지 개혁은 불가능하기도 하고 불필요하기도 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고려는 본래 대대로 높은 관직과 엄청난 규모의 토지를 가진 소수 귀족 가문들의 나라였다. 또 토지 개혁은 100년 넘게 실패하고 있었다. 이쯤 되면 부패는 불법이 아닌 능력이나 관행이 된다. 그런데 고려가 완전히 꽉 막힌 사회는 아니었다. 재능 있는 소수의 인물들은 출세해서 귀족 가문과 혼인하여 그들의 일부가 되었다. 고려 말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이곡과 이색이다. 이곡은 지방 향리 출신이다. 이들 부자는 2대 만에 명문거족 반열에 올라섰다. 함께 어울리는 인간관계가 바로 자신의 세계가 되는 법이다.

지성의 퇴화는 사회에 대한 감수성이 둔감해지면서 시작된다. 사회적 불공정과 백성들의 곤경에 대한 감수성이 줄어들면, 사회 문제에 대한 지적 능동성도 줄어들기 마련이다. 당시 이색은 61세였다. 아마도 그의 인간관계와 생물학적 나이가 개혁에 대한 그의 생각을 규정했을 것이다. 그 결과 이색은 자기 시대의 문제를 역사적 수준에서 바라보는 데 실패했다. 재·보궐 선거가 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여당의 패배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 때문이라고들 말한다. 그것이 다일까? 불공정에 대한 감수성이 둔화된 것은 아닐까? 사실 적지 않은 여당 인사들은 다른 나라 같으면 온건한 보수 엘리트로 분류될 사람들이다.

이정철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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