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프리즘] 천동설과 디지털 이민

남상훈 2021. 4. 21.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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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종종 사용하는 단어 중에 '패러다임'이라는 말이 있는데, 급격한 변화가 수반될 때 패러다임이 변한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명확한 관측 결과와 수학적인 증명이 있음에도 사회적 부정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패러다임의 변화에서는 과학적 사실만큼이나 신념의 변화가 중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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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다임의 전환 과정에서
사실만큼 사회적 수용 중요
방대한 디지털 기술 부적응
오해 불식·정보 제공 노력을

우리가 종종 사용하는 단어 중에 ‘패러다임’이라는 말이 있는데, 급격한 변화가 수반될 때 패러다임이 변한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많이 회자되다 보니 ‘패러다임 변화’가 흔하게 일어나는 현상 같지만 사실 자주 일어나는 현상은 아니다.

패러다임은 미국의 과학철학자인 토마스 쿤이 그의 책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처음 제시한 개념인데, 어떤 한 시대 사람들의 견해나 사고를 근본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인식의 체계를 뜻한다. 대표적인 예가 천동설에서 지동설로의 변화이다.
안준모 고려대 교수·행정학
천동설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고 태양을 비롯한 천체가 지구 주위를 돌고 있다는 이론이고, 지동설은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는 이론이다. 지금이야 지동설이 당연한 교과서적 진리로 여겨지지만 천동설에서 지동설로의 패러다임 전환은 그리 순탄치 못했다. 1543년 발표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지지했던 도미니코회 수도사 브루노는 종교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화형당했으며, 갈릴레오도 죽을 때까지 가택연금되었다. 이후에도 지동설에 대한 종교적 검열이 상당히 오래 지속되었다.

천동설에서 지동설로의 패러다임 전환은 수 세대에 걸친 갈등을 극복하고 이루어졌는데, 이는 우리 사회가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사고의 틀을 받아들이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명확한 관측 결과와 수학적인 증명이 있음에도 사회적 부정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패러다임의 변화에서는 과학적 사실만큼이나 신념의 변화가 중요할 수 있다.

지동설만큼의 패러다임 변화는 아니겠지만 요즘 디지털 기술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을 살펴보면, 불필요한 오해와 불신, 신념적 충돌 등 패러다임 전환에 수반되는 갈등이 나타나고 있는데 그 배경에는 다양한 원인이 존재한다.

첫째, 무엇이 변화하는지 그 내용을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짧아지는 기술개발 주기로 새로운 기술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일반인들이 전문적 지식을 현실적으로 제대로 소화하기 힘들다. 사실 전문가도 본인의 전문분야가 아닌 분야에 대해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에 늘어나는 새로운 지식의 양을 따라가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둘째, 새로운 기술의 장점이 극단적으로 강조될 경우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 기술의 경우 아직 이미지 인식, 패턴 발견 등 특정한 분야에 국한되어 강점을 보이는 ‘약’인공지능이지만, 대중적으로는 SF영화에 등장하는 ‘강’인공지능의 이미지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현재 활용되고 있는 대부분이 ‘약’인공지능이기 때문에 예전에 불가능했던 모든 것이 가능해지는 것도 아니며 막상 인공지능이 못하는 분야도 많지만 이러한 사실들이 간과되고 있다.

셋째, 최근에는 다양한 인터넷 기술에 힘입어 잘못된 정보에 노출될 확률도 크다. 특히, 문서나 유튜브 등으로 접할 경우 검증된 지식이라고 믿는 ‘활자화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쏟아지는 가짜뉴스를 일일이 필터링하기 힘들기 때문에 불필요한 오해가 증폭될 확률도 그만큼 크다.

최근 제4차 산업혁명, 디지털 전환 등 기술이 주도하는 사회변화가 빠르게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기술개발을 위한 노력만큼 사회적 수용성에 대한 담론도 중요함을 간과하면 안 된다.

대부분의 주류세대가 디지털 전환기술이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전에 태어난 ‘디지털 이민’ 세대임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순조로운 디지털 패러다임 전환을 위해 기술에 대한 오해의 불식, 기술 문해력 제고 등 다양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안준모 고려대 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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