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이어준 어제와 오늘

도재기 선임기자 2021. 4. 21.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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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간 초월한 고미술과 현대미술의 만남
호림박물관 특별전 '공명-자연이 주는 울림'

[경향신문]

고미술과 현대미술이 시공을 초월해 만나는 기획전 ‘공명(共鳴)-자연이 주는 울림’ 특별전이 호림박물관 신사 분관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은 왼쪽부터 가야시대 토기들과 현대 단색화의 전시 전경, 유덕장의 ‘묵죽도’(8폭 병풍)와 이우환의 작품 전시 전경, 조선시대 달항아리와 정상화 작가의 작품 전시 전경. 호림박물관 제공
가야 토기와 설치미술, 달항아리와 단색화, 정선의 수묵화와 김환기의 점화…
‘머물다, 품다, 따르다’ 3가지 주제로 70여점 전시

1500년 전의 가야 토기와 현대의 설치미술이, 조선에만 존재한 독특한 백자인 ‘달항아리’(백자대호)와 오늘날의 단색화가 만났다.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 개척자인 겸재 정선과 현대 추상미술 선구자인 수화 김환기의 그림이 나란히 걸렸다. 겸재의 문인화풍 수묵담채 산수화와 수화의 추상적 유화인 전면 점화가 시공을 뛰어넘어 함께 관람객을 맞이하는 것이다.

옛사람들의 예술적 미감이 오롯한 고미술과 이 시대 예술가들의 작품철학과 치열한 창작행위 성과물인 현대미술이 한 전시 공간에 놓였다. 조선시대 산수화·사군자·서예·도자기가 1970년대 시작돼 근래 국내외적으로 큰 인기를 얻는 단색화를 비롯한 회화·조각과 어우러지는 것이다. 고 윤형근·정창섭·김창열 화백을 비롯해 박서보·정상화·이우환·하종현·이강소·이배 등 이름난 원로·중진 작가가 조선 중·후기 한 시기를 풍미한 문인·예술가와 작품으로 교감한다.

성보문화재단 호림박물관이 신사 분관(서울 강남구)에 마련한 특별전 ‘공명(共鳴)-자연이 주는 울림’의 전시 풍경이다. 전시장은 고미술과 현대미술이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서로 만나는 자리다. 모두 70여점의 작품이 선보인다. 문화재 중심의 박물관이 현대미술을 포용하는 새롭고 의미 있는 시도의 기획전이다. 물론 흔하지 않은 만남의 장으로, 관람객들로선 신선하고 독특한 미적 경험을 할 수 있다.

고미술과 현대미술을 만나게 하는 접점, 연결고리는 ‘자연’이다. “자연을 중시한 전통적 창작행위가 과거의 유산에 머물지 않고 면면히 이어져 현대작가들의 작품 창작에도 큰 자양분이 되고 있음에 주목했다”는 게 호림박물관의 기획 취지다. 사실 자연은 전통시대 동양미술의 핵심 축일 뿐 아니라 지금도 인간의 삶, 특히 예술가들의 작품세계나 창작행위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영감의 원천이자 끊임없이 변주되는 주제·소재다. 연결고리가 자연이라는 것은 그리 신선하거나 독특한 것은 아니어서 좀 싱겁다. 그래서 박물관은 더 구체적으로 “자연과의 합일, 즉 자연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작가·작품을 엄선했다.

전시는 ‘자연에 머물다’ ‘자연을 품다’ ‘자연을 따르다’란 소주제로 구성됐다. 자연과 함께하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이는 ‘자연에 머물다’에는 겸재의 초기작인 ‘사계산수화첩’(1719년), 겸재보다 100여년 앞서 조선 중기 화단을 대표하는 이경윤, 단원 김홍도의 스승이자 당대 문화예술계 실력자이던 표암 강세황 등의 산수가 나왔다. 여기에 하늘의 별, 고향 동네의 강변 모래 등을 자신만의 미감으로 추상화한 김환기의 점화와 ‘물방울 화가’ 김창열, 이강소 등의 작품이 조응한다.

자연에 인격까지 부여한 ‘자연을 품다’에선 최북의 ‘사군자화첩’을 비롯해 김홍도의 ‘매조도’, 매화로 유명한 조희룡과 난초로 이름난 이하응의 작품, 조선시대 3대 묵죽화가인 유덕장이 다양한 대나무를 8폭 병풍에 담아낸 ‘묵죽도’, 추사 김정희의 서예, 달항아리·분청사기 등을 만날 수 있다. 또 김종영의 조각, 옛 선비의 절개 같은 작가의 굳은 신념이 밴 윤형근의 작품 ‘청다색’, 박서보·이우환 등의 현대 작품이 감흥을 전한다.

인위적 행위를 최대한 배제하고 자연 그대로 본성에 순응하는 ‘자연을 따르다’는 4세기 아라가야(경남 함안)에서 제작돼 흙이라는 자연재료의 특성이 두드러지는 ‘가야 토기’ 등으로 이뤄졌다. 중앙에 놓인 토기들과 닥나무 한지를 재료로 한 정창섭, 올이 굵은 마포로 작업한 하종현의 단색화와 ‘숯의 작가’ 이배의 숯을 재료로 한 설치작품이 함께 전시된다.

전시장에 어우러진 고미술과 현대미술은 배경이나 장르·재료·표현방식 등은 많이 다르지만 서로 하나가 돼 뿜어내는 분위기와 울림이 있다. 시대를 넘어선 각 작품들 사이는 물론 그 작품들과 관람객이 교감·소통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그 바탕에는 자연을 정복 대상이 아니라 공존·상생하며 배우고 따르고 품어내는 자연관이 자리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 기후 위기 속에서 시공을 초월하는 예술작품이 지닌 치유의 힘, 나아가 자연과 인간의 보다 바람직한 관계까지 사유할 수 있는 전시다. 관람료 5000~8000원, 전시는 6월12일까지.

도재기 선임기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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