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달 만에 엇갈린 판결 왜..재판부 "국가면제 여부는 각국 법률 아닌 국제관습법 따라야"

전현진 기자 2021. 4. 21.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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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면제권 예외 인정 땐
강제 집행 과정 외교 충돌"
한·일 합의, 구제 수단 인정
'외교적 해결 가능' 판단해

[경향신문]

위안부 피해자들 항소 땐
대법원에서 판단 받아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재판장 민성철)는 21일 이용수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유족 등 20명이 낸 손해배상 청구의 소를 각하했다. 재판부는 일본에 대한 국가면제를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가 재판의 선결 쟁점이 된다면서 이 사건에 대해 국가면제권을 인정할 수 있어 소송 자체가 부적법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국제관습법을 근거로 국가면제권의 인정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며 국제사법재판소(ICJ) 판결을 인용했다. 이탈리아 법원이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자국민 원고의 손을 들어주며 독일 정부의 이탈리아 내 재산 강제집행을 승인했다. 독일은 이탈리아가 국가면제에 관한 국제법을 위반했다며 2008년 ICJ에 제소했다.

당시 이탈리아 정부는 “독일군의 행위가 주권적 행위에 해당하더라도 불법적인 행위에 국가면제를 적용할 수 없고 인권에 관한 국제조약 등 강행법규를 위반한 행위에 국가면제를 주장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ICJ는 2012년 12 대 3의 다수의견으로 “강행법규 위반으로 인한 심각한 인권침해 행위에 관해 국가면제를 부정하는 것이 (국제관습법상) 일반적인 관행에 이를 정도로 뒷받침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 사례 등을 토대로 재판부는 현시점의 국제관습법이 주권행위에 대해서는 국가면제를 인정하고 있기에 일본 정부에 대한 재판권이 한국 법원에는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또 “국가면제를 인정해 외국을 상대로 금전지급 의무를 부과하는 판결이 확정되면 강제집행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외교 관계의 충돌이 야기된다”면서 “기본적으로 행정부와 입법부의 정책 결정이 선행되어야 할 사항”이라고 했다.

재판부는 일본의 행위가 주권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원고 측 주장에 대해서는 “일본군의 요청에 따라 조선총독부 등 당시 행정조직을 이용해 피해자들을 차출, 일본군이 주둔한 위안소에서 성관계를 강요한 것은 공권력을 행사한 주권적 행위에 속한다”며 “주권 행사가 강행규범을 위반했다면 위법한 주권 행사가 될 뿐”이라고 했다. 위법한 주권 행사일지언정 주권적 행위는 맞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국가면제를 인정하는 것은 ‘최후의 권리구제 수단’인 재판청구권을 막아 헌법에 위배된다는 원고 측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 행사로 볼 수 있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 의하여 피해자들에 대한 ‘대체적인 권리구제 수단’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합의는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피고 정부 차원의 사죄와 반성의 내용이 담겨 있고, 피해자들의 피해 회복을 위해 피고 정부가 자금을 출연해 재단을 설립하고 그 재단이 피해 회복을 위한 구체적 사업을 하도록 정하고 있다”며 “위안부 한·일 합의는 현재도 유효하다”고 했다.

재판부는 선고 말미에 “피해자들이 많은 고통을 겪었고, 대한민국이 기울인 노력과 성과가 피해자들의 고통과 피해를 회복하는 데는 미흡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위안부 문제는 한국, 일본을 포함한 각국 정부의 외교적 교섭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해 회복 등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해결은 한국이 여러 차례 밝힌 바와 같이 피고(일본 정부)와의 외교적 교섭을 포함한 대내외적 노력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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