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반인권범죄 국가책임 면죄 위안부 판결, 퇴행적이다
[경향신문]
국내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두 번째 손해배상 소송에서 패소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재판장 민성철)는 21일 이용수 할머니와 고 곽예남·김복동 할머니 유족 등이 일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각하했다. 지난 1월8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재판장 김정곤)는 고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에게 일본 정부가 각각 1억원씩 배상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한 것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3개월 사이에 같은 내용의 사건을 두고 법원이 정반대 판결을 내린 것이다. 아무리 법관이 법과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판단한다고 하더라도 받아들이기 어렵고 혼란스럽다.
이번 재판부는 ‘각하’ 형식으로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패소 판결을 내렸다. 각하는 소송 요건이 갖춰지지 않았다고 판단될 경우 본안 심리 없이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재판부는 주권이 있는 국가는 다른 국가의 법정에 서지 않는다는 국제관습법상 원칙인 ‘국가면제’를 적용했다. 일본 정부의 배상 여부를 강제할 권한이 한국 법원에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그 근거로 2차 세계대전 후 유럽의 국가들이 독일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으나 국가면제를 이유로 각하된 사례 등을 들었다.
국가면제가 국제관습법과 외교상 중요한 원칙이기는 하다. 그러나 반인권적이고 반인도적인 범죄 행위까지 대상이 될 수는 없다. 삼권분립하에서 한국의 사법부는 행정부와 별도로 독자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피해 사실이 명확하고 피해자들이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데 한국 법원이 재판을 못할 이유가 없다. 한국 법원의 결정에 대한 일본 정부의 준수 여부는 재판과는 별개로 법원과 판사가 책임질 일이 아니다. 분명한 점은 일본이 군과 국가기관을 동원해 전쟁 중에 위안소를 운영했고, 위안부 모집 과정에서 납치 등 반인권적 불법 행위가 있었으며,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에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첫 번째 소송을 담당했던 재판부는 “일본군 위안소의 운영은 일본제국에 의해 계획적이고 광범위하게 자행된 반인도적 범죄행위”라며 “국가의 주권적 행위라고 해도 국가면제를 적용할 수 없고, 예외적으로 대한민국 법원에 피고에 대한 재판권이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런 흐름을 인정하지 않은 이번 판결에 유감을 표한다.
재판부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외교적인 요건을 구비하고 있고 권리구제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평가한 점도 납득하기 어렵다. 당시 합의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아 피해자 중심 원칙을 어겼다. 지난 1월 첫 번째 재판부는 “원고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이나 2015년 한·일 위안부 문제 관련 합의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라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개개인들의 손해배상 청구권도 소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번은 1심 판결이므로 최종 판단은 향후 상급심을 통해 내릴 수밖에 없다. 이번 판결로 위안부 피해자 배상 문제 해법이 더욱 복잡해진 만큼 당국은 더욱 면밀히 대응책을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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