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로 사라지는 아라비카 커피, '스테노필라'가 대체하나

조승한 기자 2021. 4. 2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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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디부아르에서 자라는 야생 커피종 '스테노필라'의 모습이다. 프랑스개발연구소 제공

기후변화가 커피의 맛을 점차 바꿔가고 있다. 온도가 상승하면서 주요 재배지에서 점차 좋은 커피를 키우기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커피는 열매인 커피체리 내부의 생두를 가공해 만든다. 이때 재배 온도가 높을수록 체리가 원두보다 빨리 숙성되며 품질이 낮은 커피가 생산된다. 주 재배 품종인 아라비카는 기후변화에 더욱 취약해 생산량이 2040년 절반까지 줄어들 수 있다는 예측도 있다.

기후변화로 위험에 빠진 커피를 구할 구원투수로 잊혀졌던 커피 품종이 떠올랐다. 애런 데이비스 영국 왕립식물원 연구원팀은 프랑스개발연구소 등과 공동으로 서아프리카에서 자라나는 야생 커피종인 ‘스테노필라’가 더 높은 온도에도 잘 자라면서도 맛은 아라비카와 비슷하다는 연구결과를 20일 국제학술지 ‘네이처 플랜트’에 발표했다.

전 세계에서 재배되는 커피종은 대부분 아라비카와 로부스타종이다. 전 세계 커피 생산량의 99%가 두 품종으로 약 6대 4의 비율로 생산된다. 아라비카가 풍미가 더 우수한 것으로 평가돼 가격이 비싸다. 로부스타는 주로 인스턴트 커피 생산에 쓰인다. 이들 커피는 서늘한 열대 고지대에서 주로 자라는데 기후변화로 온도가 높아지며 재배지의 범위가 점차 더욱 높은 지대로 옮겨가고 있다. 특히 아라비카는 기후변화와 질병에 더욱 취약한 점이 문제다. 로부스타는 상대적으로 기후변화에 강하지만 맛과 향이 떨어지는 점이 문제다.

아프리카 내 아라비카(Coffea arabica)와 로부스타(Coffea canephora), 스테노필라(Coffea stenophylla)의 분포를 표시했다. 아라비카는 아프리카 동부 에티오피아에서 주로 자생하는 반면 스테노필라는 아프리카 서부에서 자란다. 네이처 플랜트 제공

스테노필라는 1834년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서 처음 발견됐다. 커피체리가 붉은색인 아라비카와 달리 검은색인 것이 특징이다. 20세기 초까지 서부 아프리카에서 재배됐으나 더욱 생산량이 높은 로부스타로 대체되며 점차 잊혀졌다. 시에라리온과 기니, 코트디부아르에서 과거 야생종이 발견돼왔으나 삼림벌채로 대부분이 사라졌다.

스테노필라가 자라는 지역의 기온은 연평균 24.9도다. 로부스타보다 1.9도 높고 아라비카보다는 6.8도 더 높다. 스테노필라는 가뭄에도 잘 견뎌 아라비카보다 적은 강우량 조건에서도 성장할 수 있다. 19세기 스테노필라에 관해 식물학자들이 기록한 바에 따르면 커피잎녹병과 같은 질병에도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데이비스 연구원은 2018년 12월 시에라리온 중부지역 열대우림에서 야생 스테노필라 군락지를 찾아내 이를 영국으로 가져왔다. 2020년 스테노필라 커피를 처음 시음할 때만 해도 기대치가 낮았지만 이를 마시고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다. 데이비스 연구원은 “첫 모금은 마치 식초를 기대하던 중 샴페인을 마시는 것과 같았다”고 말했다. 런던에서 실시한 평가에서 전문가들은 스페셜티커피협회 기준에 따라 스테노필라에 80.25점을 줬다. 커피의 최고 등급은 ‘스페셜티’로 협회 기준 80점을 넘겨야 한다.

연구팀은 프랑스에서 지난해 12월 열린 커피 평가회에 스테노필라 커피를 소개했다. 스타벅스와 네스프레소 등에서 온 커피 감정 전문가 15명은 고품질 아라비카에서 기대할 수 있는 단맛과 중간 정도의 산도, 과일향 및 풍부한 바디감을 갖고 있다고 보고했다. 스테노필라와 아라비카 대조군을 놓고 시행한 블라인드 시음회에서도 심사위원 중 81%는 스테노필라가 아라비카라고 답했다. 이들 중 47%는 스테노필라 커피가 새로운 독특한 맛을 낸다고 평가했다.

프랑스에서 진행된 야생 커피 블라인드 시음회다. 커피 색을 가리기 위해 붉은색 조명이 이용됐고 맛보는 사람들은 미각과 후각에만 집중하도록 했다. 프랑스개발연구소 제공

스테노필라 커피는 기후변화로 만들어진 따뜻한 기후에서도 우수한 맛의 커피를 재배할 수 있는 대안이 되리란 기대다. 아라비카 가격의 절반 수준인 로부스타와 비슷한 조건에서 자랄 수 있는 만큼 농부들에게 새로운 대안도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데이비드 연구원은 “5~7년 안에 틈새 고가 커피 시장에 진입해 더 일반적인 커피가 될 것”이라며 “스테노필라의 재발견으로 커피의 미래가 조금 더 밝아졌다”고 말했다.

기후변화로 인해 기존에 맛보던 커피가 점차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은 이어지고 있다. 아라비카 커피의 원산지로 커피의 고향으로 알려진 동아프리카 에티오피아는 기후변화로 일반 커피의 수확량은 증가하지만 스페셜티 커피 생산량은 줄어들 것으로 예측됐다. 아벨 케무라 포츠담 기후영향연구소 연구원팀은 15일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츠’에 “평균 품질의 커피는 더 많이 생산될 수도 있지만 고품질 커피는 줄어들 것”이라고 발표했다.

연구팀은 평균기온, 연간 강수량 등 19개 기후 요인이 예가체프, 시다모, 모카 하라, 네켐테, 리무 등 에티오피아에서 나는 5종의 스페셜티 커피 재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시뮬레이션했다. 그 결과 네켐테를 제외한 4종의 스페셜티 커피를 재배할 수 있는 지역이 점차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달콤하면서도 부드러운 신맛으로 세련된 맛을 자랑해 '커피의 귀부인'이라는 칭호를 받는 예가체프는 이번 세기 내로 현재 재배지 중 40%에서 더 이상 자라날 수 없을 것으로 예측됐다.

[조승한 기자 shinj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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