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5B는 365일 오디션중".. 30년째 '보컬 구인난'이 장수의 비결 [인터뷰]

심윤지 기자 2021. 4. 2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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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18년부터 ‘뉴에디션’이라는 프로젝트로 매달 신곡을 발표하는 015B의 기타리스트 장호일이 지난 19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015B와 함께 좋은 음악을 만들어보고 싶다면 누구나 지원 가능합니다.”

메인보컬 없는 한국 최초의 프로듀서 그룹. 015B는 1년 365일 오디션 진행 중이다. 공식 홈페이지에 적힌 e메일로 간단한 자기 소개와 데모 음원을 보내기만 하면 된다. 데뷔 후 31년 동안 이어온 ‘객원보컬’ 체제 때문에, 015B는 ‘이젠 안녕’ ‘신인류의 사랑’같은 히트곡을 내고도 30여년째 구인난에 시달리는 처지다.

하지만 바로 그 객원보컬 시스템 덕분에, 015B는 ‘왕년의 뮤지션’이란 타이틀 속에 갇히지 않는다. 예전만큼 알려져있진 않지만 이들은 2018년부터 매월 ‘뉴에디션’이라는 이름으로 신곡을 발매하고 있다. 가장 최근 곡은 20일 발매된 1980년대 신스팝 장르의 ‘빅터를 기다리며’. 인디밴드 ‘서교동의 밤’ 보컬인 다원과 함께했다.

1990년에도 2021년에도, 발매일을 가늠하기 어려운 가장 최신의 음악을 하는 그룹. 지난 19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작업실에서 015B의 기타리스트 장호일을 만나 그 비결을 물었다. 그는 외부활동을 하지 않는 메인 프로듀서 정석원을 대신해 ‘팀의 대변인’ 역할을 맡고 있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015B는 20일 1980년대 신스팝 장르의 ‘빅터를 기다리며’를 발매했다. 이석우 기자

-2018년부터 매달 한 곡씩 싱글을 발표하는 <뉴 에디션>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계기가 있나.

“실물 앨범에서 디지털 음원 중심으로 시장이 바뀐 후로 싱글을 내야겠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었다. 우리가 1년에 한 장씩은 앨범을 냈는데, 앨범 하나에 보통 12곡정도 들어가지 않나. 생각해보니 한달에 1~2곡씩만 발표하면 되겠더라. 초반 몇달은 적응이 안됐는데 요즘은 시간이 남는다. 2주만에 작업 다 끝내고, 2주동안은 발매일이 언제 오나 기다리며 지낸다.”

-<월간 윤종신>에서 영감을 받은것 아닌가. (윤종신은 015B 객원보컬 출신이다.)

“부정하지 않겠다. (웃음) 원래 이 곳이 윤종신이랑 같이 쓰던 작업실이었다. 미스틱(윤종신 소속사)이 이사를 가면서 저희가 옆방까지 점령을 하게 됐지만…. 윤종신이 부지런하지 않은 성격인걸 알고 있어서 ‘과연 오래 할수 있을까’ 했는데 정말 열심히 쉬지 않고 하더라. 우리도 할수 있겠다 싶었다.

-현재까지의 성과를 자평한다면.

“절반의 성공? 우리 스스로 부끄러운 작품은 없었다. 하지만 생각만큼 조횟수가 나오지는 않는다. 우리는 ‘가요계 르네상스’라 불리던 90년대에 활동한 사람들이고, 그때는 앨범이 백만장씩 나가던 시기였으니까… 그 정도의 부흥을 바라는 것은 아니고, 요즘 시대에 남들이 알만한 인기곡 하나 더 만드는게 새로운 목표다. 신인의 마음으로 돌아갔다고 할까. ‘어느 한 놈만 걸려라’ 하면서 매달 곡을 내고 있다. (웃음)”

-함께 작업한 객원보컬들의 면면이 굉장히 다양하다. 유라·김뮤지엄은 R&B씬의 떠오르는 신예, 동하·이태권은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이름을 알린 보컬리스트, 롤링쿼츠는 요즘 시대 보기 드문 여성 락밴드다.

“015B가 이런걸 하는걸 아니까 주위에서도 소개를 많이 해준다. 유라는 다른 회사 연습생이라 소개를 받았는데, 목소리 톤이 워낙 개성있길래 우리가 프로포즈를 했다. <너의 목소리가 보여> 출신인 동하는 ‘함께 작업해보고 싶다’고 지인 통해 직접 연락을 해왔다. 들어보니 ‘우리야 땡큐’였지. 우리는 보컬이 없으니 신인이나 지망생들에 늘 안테나를 켜두고 있다. 그들도 우리와의 작업이 커리어가 될 수 있고.”



-객원보컬은 015B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객원보컬 체제는 어떻게 시작됐나.


“젊은 혈기에나 할수 있던 일인데…. 흔히 밴드라고 하면 ‘보컬’과 ‘나머지’로 보는 시선이 너무 싫었다. 밤새도록 영상을 찍어도 보컬 얼굴만 나오고, 기타리스트인 나는 손가락만 나오고… 농담처럼 ‘우리끼리 밴드 만들면 보컬을 두지 말자’고 하곤 했는데, 마침 015B를 만들어보겠냐는 제안이 왔다. ‘드디어 때가 왔다, 보컬은 피처링으로만 쓰고 헌신짝처럼 버리자’ 한거지.(웃음) 초창기 멤버가 3~4명쯤 됐는데 연주자들이라 다들 생각이 똑같았다.”

-회사에서 반대하지는 않았나.

“아무 관심이 없었다. 015B는 신해철을 제외한 ‘무한궤도’ 멤버들이 주축이었다. 당시 회사는 오로지 신해철의 솔로 앨범에만 관심이 있었고 나머지 ‘깍두기’ 멤버들은 미안하니까 기념앨범 정도 하나 내주고 끝내려고 한거다. 그러니까 우리 하고 싶은 대로 할수가 있었지. 1집이 뒤늦게 잘돼서 10개월만에 다시 소집이 됐지만.”

-객원보컬 체제가 015B의 음악에 미친 영향은.

“장단점이 있다. 좋게 말하면 지루하지 않다. 단점은 지속성은 없다. 3집 <아주 오래된 연인>들이 백만장 넘게 팔리고 대히트를 쳤다. 당시 객원보컬이 윤종신의 친구였던 김태우였는데, 카리스마가 있다보니 팬들이 많이 생겼다. 보통 밴드가 다음 앨범을 내려면 보컬의 인기에 기대야 하는데, 우리는 언제나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다.”

015B 기타리스트 장호일과 팀내 메인 프로듀서인 정석원은 형제지간이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 90년대생 밀레니얼 세대 팬들이 유튜브에 ‘015B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올리기도 하더라.

“우리 팬들이 연령대가 다양하다. 좋아하는 대표곡들도 세대별로 조금씩 다르다. 90년대 올드팬들은 ‘신인류의 사랑’같은 노래를 좋아하고, 2000년대 팬들은 ‘싸이월드 BGM’으로 유행했던 ‘잠시 길을 잃다’를 좋아한다. 세대와 전혀 상관없는 노래는 ‘이젠 안녕’. 졸업식 노래로 많이 쓰여서인지, 지방공연을 가면 유치원생들도 애드리브까지 다 따라 부른다. 우리에겐 훈장같은 곡이다.”

-015B의 전성기를 경험하지 않은 세대들이 015B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우리와 콜라보하는 후배들 덕이 크지 않겠나. ‘세월의 흔적 다 버리고’도 그렇게 빛을 본 곡이다. 원곡은 1993년에 김돈규씨가 불렀는데, 2017년 ‘앤솔로지’라는 리메이크 프로젝트를 통해 오왠과 재녹음을 했다. 요즘엔 오왠 곡인줄 아는 이들도 많더라. 서로 ‘윈윈’인 것 같다.”

-객원보컬로 참여했던 롤링쿼츠는 보컬이 96년생이더라. 015B와 작업한다고 하니 부모님이 굉장히 좋아했다고 하던데.

“그런 말 많이 듣는다. 잔나비도 신현희도 사석에서 만나면 ‘저희 부모님이 팬이에요’ 이러던데… 처음엔 우리도 사람이니까 약간 씁쓸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너무 많이 들어 그런지 익숙해졌다. ‘그래 부모님이라도 좋아하셔서 다행이다, 그러니까 저 친구들이 우리를 친숙하게 생각하겠지’ 한다. (웃음)”

-젊은 아티스트들과 작업을 하면서 세대차이를 느낄 때는 없나.

“글쎄, 우리야 모르지. 우리 딴에는 최대한 이야기를 들어주고 맞춰준다고 해도, 자기들끼리 있을때 무슨 생각하는지는 정말로 알수 없지. 뮤지션이라면 쓸데없는 권위의식은 없어야 한다는 생각은 늘 가지고 있다.”



-015B의 과거곡과 요즘곡을 번갈아 듣다보면 “언제 나온 노래인지 모르겠다”는 반응도 있더라.

“최근 ‘레트로’ 음악의 유행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고, 기본적으로 우리가 추구하는 장르가 트렌드와 큰 상관이 없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우린 90년대에도 복고를 지향했다. 사람이 35살을 넘으면 더이상 새로운 노래를 안 듣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저는 감수성도 굳은 살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귀찮더라도 계속 다양한 장르, 새로운 음악을 들으면서 굳은 살을 제거해주려 한다.”



-취향에 맞지 않는 새로운 곡들을 의무감으로 듣는게 귀찮지는 않나.


“다른 일을 해도 그 정도는 해야하니까. 나는 015B 데뷔 초까지 회사 생활을 해서 그런지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아침에 출근해서 사무실을 둘러보는데 ‘내가 10년 후에는 저기 부장님 자리에 앉아있겠구나’ 생각하니까 너무 싫었다. 얼마나 싫었는지 아직도 그 느낌이 생생하다. 힘든 순간도 있지만, 지금은 적어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90년대 015B와 지금 015B은 무엇이 가장 달라졌나.

“일단 나이가 차이가 나지…. (웃음) 우리가 똑같은 음악을 하더라도 20대 초중반에 했으면 ‘트렌디하고 앞서간다’는 평가를 받았겠지만, 지금은 ‘아재들이 의외네’ 정도 아니겠나. 지금 가장 듣고 싶은 말이기도 하고.”

-매우 시니컬한 자기평가다.

“그게 우리 특징이다. 자기객관화를 잘 한다. 정석원과 작업할때도 ‘너같으면 듣겠니’ ‘요즘 애들이 아재들 음악을 들을 이유가 없잖아’ 이런 말들을 많이 한다. 한편으로는 그러니까 이들에게 통하는 음악을 만들어보고싶다는 의욕도 생긴다. 아직까지 우리 음악을 들어주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해볼만하다 본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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