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거래허가구역 추가 지정에 전문가들 "재건축 정상화 위해 필요한 일"

허지윤 기자 2021. 4. 21.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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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서울시장이 핵심 부동산 공약이던 '재건축·재개발 정상화'에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했다. 오 시장은 재건축 활성화를 위해 ‘안전진단 기준 완화’를 추진하면서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과 영등포구 여의도 등 최근 가격이 들썩이는 재건축 단지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하는 규제 카드를 동시에 꺼냈다.

전문가들은 재건축 사업 속도가 빨라질 경우 가격 상승과 주택 시장 불안 확대가 뒤따를 우려가 있는 만큼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이라는 선제 대응이 필요한 조처라는 평가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이 이 지역 집값 상승을 원천적으로 막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나왔다.

서울 용산구 유엔빌리지 인근에서 바라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일대의 모습

21일 서울시는 주요 대규모 재건축‧재개발 사업지역 4곳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한다고 밝혔다.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토지 등 부동산을 취득하려면 사전에 토지이용목적을 명시해 시‧군‧구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실거주 등 실사용 목적으로만 부동산을 살 수 있다. 아파트를 사도 토지에 대한 권리가 포함돼있기 때문에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은 같다.

지정 구역은 ▲압구정아파트지구(24개 단지) ▲여의도아파트지구 및 인근단지(16개 단지) ▲목동택지개발사업지구(14개 단지) ▲성수전략정비구역으로, 총 4.57㎢이다. 오는 27일부터 발효되며, 지정기간은 1년이다. 이로써 서울시내 ‘토지거래허가구역’은 앞서 지정된 송파구 잠실동, 강남구 삼성동‧청담동‧대치동에 더해 총 50.27㎢로 확대된다. 재건축단지 발 서울 주택가격 상승 우려에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이란 강수를 둔 것이다.

전문가들은 오 시장이 재건축 시장을 정상화하기 위해 필요한 장치라고 평가했다. 오 시장이 추진하고 있는 안전진단 규제 완화가 이뤄질 경우 재건축 단지에 희소식이 될 수 있고, 이에 따라 집값이 상승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날 서울시는 재건축 활성화를 위해 안전진단 기준 개정을 위한 개선 건의안 공문을 국토교통부에 발송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현행 안전진단 기준은 주거환경(주차대수, 층간소음), 설비노후도(전기배관 등) 등 주민 실생활에 관련된 사항보다 구조 안전성에 중점을 둬 실제 안전진단 통과가 어렵도록 만든 부분이 있다"면서 "노후 아파트의 주거환경개선이 가능하도록 현실적인 안전진단 기준을 마련해 국토부에 개선 건의를 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번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이 집값 상승을 예견하고 미리 집을 사두는 수요를 차단하는 데에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거주하지 않으면서 전세를 끼고 사두는 매매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되면 허가를 받고 매매한 뒤 매수자가 해당 주택에 실거주해야 한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어놓은 상태에서 안전진단 완화를 추진하면 미래 수요를 차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단기 급등세를 막는 데는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도 "정비사업 추진 구역의 집값 상승세가 주택 시장 전반의 불안을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은 필요한 조처"라고 말했다. 그는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부동산정책의 목표는 ‘변동성 완화’, 즉 거래량과 가격이 안정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것에 있고, 서울시의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도 그 일환"이라고 했다.

이번 재건축‧재개발 사업지역 4곳에 대한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에 따른 거래절벽 현상이 앞선 송파구 잠실동, 강남구 삼성동‧청담동‧대치동 일대 지정 때보다 더 강할 것이란 관측도 이어졌다. 박 전문위원은 "새 아파트가 상대적으로 많은 잠실동, 삼성동, 청담동, 대치동보다 이번에 지정된 재건축 재개발 구역에서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영향을 더 많이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후화한 재건축 아파트일수록 구매자가 당장 거주하는 데 부담이 있는데다 재건축 재개발 시장 자체가 실수요보다 투자수요 중심으로 움직이는데,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으로 투자수요 유입을 차단한 것이라 거래절벽 현상이 더 강하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거래 절벽 속에서도 강남·여의도 재건축 단지 집값 상승을 아예 막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해당 지역에 대한 수요 유입을 제한하더라도 주변 시장의 거래 영향으로 ‘가격 키 맞추기’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시각에서다.

고 교수는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으로 그 지역 거래를 막더라도, 토지거래허가구역 밖 주변부 집값이 오르면 서울 강남과 여의도, 목동 재건축 단지 집값도 영향을 받아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1971년 국내 첫 민간 고층 아파트로 지어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시범아파트 단지.

물론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에 따른 피해 발생 등에 따른 반발 및 피해 우려도 있다. 해당 지역 내 부동산을 처분하고자 하는 소유자 입장에서는 매수자 찾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거주이전의 자유와 재산권 침해 논란이 생길 수 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으로 인해 거래 자체가 까다로워지면서 지역 내 빌라나 상가 거래도 어려워지는 문제가 발생할 수는 있다"면서 "재건축 추진 대상 단지로 한정하거나 정비조합 단계가 아닌 추진위 단계로 올려 핀셋규제 하는 것이 토지거래허가제보다 나은 방안일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압구정아파트지구는 압구정역 중심으로 밀집된 24개 모든 단지와 목동 지구 14개 단지 전체를 토지거래허가구역 대상으로 지정하면서도 규제 피해 최소화를 위해 목동지구에 대해서는 상업지역을 제외했다"고 밝혔다. 또 서울시는 "여의도 지구는 풍선효과 방지를 위해 인근 재건축 단지를 포괄해 총 16개 단지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었다"고 했다.

토지거래허가구역 확대로 현금부자 실수요자만 진입할 수 있는 지역이 넓어졌다는 지적도 있다. 이미 투기과열지구에 대한 LTV 규제와 재건축 단지의 ‘2년 실거주 요건’ 등의 규제 장치가 있다는 점에서 갭투자를 하지 않으면 집값 전액을 자력으로 융통해 매수해야 한다.

일부에선 반포·잠원·개포 등 다른 강남 지역이 토지거래허가구역에 들어가지 않는 것을 두고 기준이 불명확하다는 지적도 내놓고 있다. 반포에서는 신반포2차와 신반포4차도 정비사업에 시동을 걸고 있다. 개포에서는 개포 5·6·7단지가 정비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반포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압구정을 토지거래허가제로 지정하면 반포로 풍선효과가 나올 수 있다"면서 "대치동을 토지거래허가 구역으로 지정하니 도곡동이, 잠실 중에선 토지거래허가 구역에서 빠진 ‘파크리오’ 단지만 급등했던 것이 재연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재건축 사업 추진을 기대하는 실거주 소유자들은 담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비사업 활성화를 위한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현대6차에 거주하고 있는 조합원 J씨는 "정부가 주택 시장 불안을 서울시 탓으로 돌리려는 마당에 서울시 입장에서도 토지거래허가구역 재지정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재건축 추진이라는 대의를 위해 필요한 것이라면 반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압구정 한양아파트 소유주 L씨는 "조합이 설립되기 전에 매수 양상을 보면 가계약금을 넣는다기보단 계약하고 한 번에 잔금까지 치를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면서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한다고 해서 큰 타격이 있을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신속하지만 신중하게’라는 기조 아래 집값을 자극하지 않도록 투기수요를 철저하게 차단하면서, 부동산 시장 안정화를 위한 주택공급 확대는 차질 없이 추진해나가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4월 21일 발표한 토지거래허가구역 대상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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