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남성징병제의 정당성, 여성징병제의 가능성 / 임재성

한겨레 2021. 4. 21.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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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임재성ㅣ변호사·사회학자

남성들만을 징집 대상으로 하는 징병제는 정당한가? 정당하지 않다. 성별에 따른 차별, 즉 평등 원칙을 위반한 제도다. 여성 등에게까지 징집 대상을 넓히는 소위 ‘여성징병제’는 필요한가? 현실적이지 않다. 헌법재판소 군가산점제 위헌 결정 이후 20여년, ‘여성도 군대 가라’는 계속된 주장에 담긴 분노와 울분을 이해해야겠지만, 현존하는 제도의 모순과 그 모순의 대안처럼 보이는 것의 비현실성 사이 틈에 좀 더 주목해야 한다.

먼저, 남성징병제는 정당한가? 헌법재판소가 2010년 남성징병제를 합헌으로 결정했던 핵심 논거는 신체적 능력이었다. “근력 등이 우수한 남자가 전투에 더욱 적합한 신체적 능력”이고, 일부 여성의 능력이 뛰어날 순 있어도 “월경이 있는 매월 1주일 정도 훈련 및 전투 관련 업무수행에 장애”가 있기에 군복무에 부적합한 신체라는 판단. 동의할 수 없다. 위 판단에 깔린 수많은 편견과 왜곡은 차치하고서라도, 군복무가 전투병과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군사훈련 자체가 배제된 복무 영역까지 등장하고 있다.

‘전투’에 초점을 맞춰보더라도 여군의 전투부대 보직 확대는 세계적 추세이며, 남성 내부에도 신체적 차이가 존재한다. 여성 전체를 ‘복무 부적합한 신체’로 판단하는 것은 사실 왜곡이다. 위 헌법재판소 결정은 ‘여성이 포로가 되는 경우 남자에 비해 성적 학대를 당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는데, 이 부분에선 할 말을 잃는다. 법여성학자 양현아 교수는 이미 2008년 남성만을 징병 대상으로 하는 병역법은 성별 간 평등 위반(위헌)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남성징병제가 평등 원칙을 위반한 제도라면, 여성징병제가 도입되어야 하나? 이 논의는 최근 무게감을 갖게 되었는데, 저출생으로 인한 병역자원 부족 때문이다. 현재 한국군은 50만명 규모의 상비병력을 유지할 계획인데, 육군 18개월 복무를 기준으로 당장 2025년부터 50만명 구성이 어려워진다. 2036년 이후에는 40만명 정도가 가능할 뿐이다. 50만 병력을 고집할 경우 복무 기간을 늘리거나 복무 부적합 판정 비율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전자는 추가적인 고통을, 후자는 복무 중 사건 발생 가능성을 높이기에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다.

그러나 여성징병제 역시 현실적 선택항이 될 수 없다. 지금의 병력 부족 상황은 여성인구 전체를 징집 대상으로 할 만큼의 수준이라 할 수는 없고, 그럴 경우 소요될 예산과 사회적 비용을 고려할 때 정책적 현실성도 없다. 모병제라면 이 모순들이 한순간에 해결되는 듯하지만, 한국 사회와 같이 병역에 대한 거부감이 큰 사회에서 모병제는 ‘빈민의 군대’ 탄생으로 이어질 것이다. 저소득층 입대 비율이 압도적일 것이고, 이미 존재하는 격차가 더 확대될 것이다. 전투 환경의 변화로 모병제는 불가피한 길이지만 장기적 과제일 수밖에 없다.

정당성 없는 남성징병제에 대한 비판과 대안은 ‘여자도 군대 가라’일 수밖에 없을까? 그렇지 않다. “군대 가고 싶은 사람 나와보라고 해”와 “그런데 왜 너희들은 안 가냐” 사이에 강요된 침묵이 존재한다. ‘나를 끌고 가는 국가의 책임’이다. 국가는 ‘숭고한 희생’이라는 수사 뒤에 숨어 있었고, 결국 징병제라는 고통의 제도는 남성과 여성 사이의 싸움처럼 방치되었다.

50만 상비병력은 합당한가? 저출생이라는 중대한 사회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병력 규모가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에 대한 투명한 논쟁과 검증은 없었다. ‘북 급변사태 발생 시 안정할 전력’ 가설에 기댄 산출로 추정하지만, 방식이 과장되었다는 비판도 상당하다. 변화된 전투 환경에서 30만명 정도의 상비병력이면 충분하다는 의견도 설득력 있다. 병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사실상 공짜로 쓰는 노동력을 엄밀한 기준 없이 국가가 동원해왔던 것은 아닐까?

국가는 병역이 남성들에 대한 차별이지만 현실적으로 남성징병제 유지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차별 시정을 위한 적극적 조치를 해야만 한다. 오직 그 조치가 충분할 때만 남성징병제는 존재할 수 있다. 월급 인상 등 복무 여건이 개선되고 있지만, 대체 불가능한 ‘젊은 날의 시간’에 대한 보상은 특별해야 한다. 군가산점제와 같이 국가부담 없이 여성과 장애인들을 차별하는 보상이 아닌 분명한 정책적 결단이 필요하다.

‘너도 고생해야 한다’가 아닌 ‘군복무의 고통을 줄여야 한다’라는 싸움은 인권의 문제다. 모두가 연대해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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