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축구선수·페루 정치인 등 남미 부유층, 美 '백신 여행' 러시
멕시코, 아르헨티나 등 라틴아메리카 국가의 부유층이 백신을 맞으러 미국으로 원정 여행을 떠나 논란이 되고 있다. 미국 내에선 자국민도 맞기 어려운 백신을 타국인이 가져간다는 이유로, 멕시코 등 남미 국가에선 여행비를 지불할 수 있는 부유층만이 백신을 맞는다는 이유에서 비난이 쏟아지는 것.
20일(현지 시각) AP 통신에 따르면, 라틴아메리카의 부유층은 백신을 맞기 위해 미국으로 수천 마일을 날아오고 있다. 멕시코에선 텍사스 행 항공편이 동이 났다고 폭스뉴스는 보도했다.
AP는 멕시코 몬테레이에 사는 버지니아 곤잘레스 씨 부부를 소개했다. 부부는 두번의 예방접종을 맞기 위해 멕시코의 몬테레이 시에서 텍사스주 에든버러까지 두번 왕복했다. 비행기와 버스를 갈아타며 이 부부가 이동한 총 거리는 2200km에 달했다.
곤잘레스 씨는 미국에서 코로나 백신을 맞은 것에 대해 "생존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멕시코 공무원들은 백신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 (그들은) 시민들에게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몬테레이 시에 거주하는 치과의사 알레한드라 씨(가명)도 ‘백신 여행’을 통해 텍사스 주 패서디나에서 모더나 백신을 맞았다. 그는 지난 2월 어머니를 코로나19로 잃은 후 미국에서 백신을 맞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는 "우리 엄마도 미국에서 백신을 맞을 기회가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접종 소감을 밝혔다.
남미 유명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이달 초 몬테레이 시의 축구 클럽 CF몬테레이 소속 19명의 선수들은 백신을 맞으러 미국 텍사스 주 달라스 시로 ‘백신 여행’을 떠났고, 페루에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경력이 있는 경제학자 페르난도 드 소토도 백신을 맞기 위해 미국에 방문했다고 인정했다.
이같은 남미 거주민들의 미국행 ‘백신 여행’이 가능한 건 대부분의 미국 주들이 백신 주사를 놓기 전에 간단한 신분확인만을 거치기 때문이다. 최근 타국민이 미국으로 백신 접종을 맞는 등의 사례가 증가하자 플로리다 주에선 거주 증명서를 요구하기 시작했지만, 아직 텍사스 주, 애리조나 주, 캘리포니아 주 등 대다수의 주에선 사진이 부착된 공식적인 신분증이 있으면 백신을 맞을 수 있다. 실제로 미국에 거주하는 친구나 친척이 있는 경우 주소를 빌려 거주지를 등록한 후 백신을 맞으러 가는 경우가 많다.
미국이 ‘느슨한’ 규제를 적용하는 건 해당 주에서 주로 활동하는 거주자 모두에게 백신을 접종하기 위해서다. 미국 정부는 보험이 없는 사람에게 백신과 예방접종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텍사스주의 보건서비스부 대변인 크리스 반 듀센은 "텍사스의 백신은 텍사스에 거주하거나 일하거나 상당한 시간을 보내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좋은 의도’를 악용하는 남미발 백신 여행객들은 자신들이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한다. 알레한드라 씨는 "나와 같은 외국인들이 백신을 몰래 맞아 미국 납세자들에 피해를 주고 있다는 비판을 알고 있다"면서도 "나와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호소했다. 남미 국가들의 백신 확보가 늦어, 순서대로 기다리다간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것.
실제로 페루에서는 3200만명의 인구 중 2%만이 접종을 받았다. 남미 국가 중 코로나19 백신 접종 우등생으로 꼽히는 멕시코는 지난해 크리스마스이브부터 60세 이상을 대상으로 접종을 시작해 현재 1300만회 이상 접종을 완료했다. 하지만 텍사스 한 주만 해도 멕시코 전체보다 많은 1500만회를 접종하는 미국에 비교하면 속도가 현저히 늦다.
AP통신에 이메일을 보내온 한 페루계 미국인 과학자는 "나는 그들을 전혀 비난하지 않는다. 그들은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한편에선 이같은 백신 여행을 부유층만이 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현업에 내몰린 빈곤층이 부유층보다 코로나19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은데, 백신 여행은 부유층만이 갈 수 있다는 이유다. 실제로 관광여행을 떠나기 위해서는 관광비자를 취득해야 하고, 코로나바이러스 검사, 비행기 티켓, 호텔, 렌터카 비용 등을 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정치인, 방송인, 축구선수 등 부유층만이 여행에 나설 수 있다.
이에 대해 에이드리엔 아쉬트 라틴아메리카 센터 책임자인 제이슨 마르잭은 "부유층은 비행기표를 구매해 백신을 접종할 수 있지만, 원격근무를 하거나 일을 쉴 수 없는 서민층은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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