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 여론조사, 이 정도면 사회악 / 서복경

한겨레 2021. 4. 21. 14:3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숨&결]

서복경ㅣ 더가능연구소 대표

최근 언론사-여론조사기관의 기획 ‘정책현안조사’들은 조사의 기본이 안 되어 있거나 결과의 중대함을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적은 돈과 노력으로 ‘바이럴 마케팅’ 효과를 노리는 언론사의 상업주의, 그저 의뢰자의 주문에만 충실하거나 때로 영업이익을 위해 스스로 조사 윤리를 내던지고 있는 여론조사기관이 만들어낸 사회현상으로, 일회성 문제로 치부할 수준을 훨씬 넘어섰다는 판단이다.

정치 관련 여론조사의 대상은 정당이나 인물, 활동 평가, 정책 선호의 범주로 나뉜다. 정당이나 인물 지지도 조사는 지난 조사 결과에 이은 추이가 핵심 정보다. 표준 질문이 여러 종류로 만들어져 있고 합의된 해석도 존재한다. 정부의 정책활동, 정당의 정치활동에 대한 평가는 이미 진행된 사건의 결과를 두고 질문을 하므로, 응답자들이 기본 정보를 인지한 상태라고 가정할 수 있다. 물론 이 경우에도 단어나 조사, 문장의 순서에 따라 왜곡이 발생하므로 전문성을 필요로 한다.

가장 어렵고, 시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정책 선호 조사다. 복잡한 정보를 포함한 다양한 대안 가운데 심중에 있는 의견을 읽어내야 한다는 점에서 어렵고, 그 결과가 여론 형성과 정책 결정에 실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함이 필요한 조사다. 물론 학계와 여론조사 업계가 공유하고 있는 조사 윤리가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규범이 이윤추구 욕구를 이기기는 어렵다. 법적 규제를 도입할 문제도 아니다. 사례는 다양하고 오류는 전문적이므로 이현령비현령 규제가 될 수밖에 없다. 공론화 과정을 통해 시민들의 감시 기제를 작동시키고 해당 언론사와 여론조사기관의 자제를 유도해야 한다.

사태의 심각성을 공유하기 위해 사례를 하나 들어보겠다. ‘종부세 완화 찬성 44%, 반대 38.4%… 민주당 지지층 반대 높아’ 제목의 <오마이뉴스> 주간 현안 여론조사 기사다. 이 기사 첫 줄은 “정부와 집권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종합부동산세 부과 기준 완화에 대한 찬반 여론이 팽팽하게 맞서는 것으로 조사됐다”로 시작한다.

이 기사의 문제를 생각해보자. 첫째 4월20일이라는 조사 시점이다. 이날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종합부동산세 완화 관련 질의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 다만 … 부동산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답했다. 같은 날 더불어민주당 한 의원은 ‘조세부담 완화 취지에서 종합부동산세 및 재산세법(소득세법) 개정 법안을 발의’한다는 기자회견을 했다. 또 같은 날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원내대책회의에서 “종부세와 관련된 정책위의 검토 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니”며 “검토한 바도 없다”고 말했다.

여러 보도를 종합해보건대 지난 4월7일 재보궐선거 후 정부와 집권당 일부에서 관련 논의가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그러나 관련 정보가 공표된 것은 4월20일이다. 그런데 정보가 공표된 바로 그날, 시민들이 관련 정보를 전달받지조차 못한 시점에서, <오마이뉴스>는 ‘정책현안조사’를 의뢰하여 결과를 보도했다. 대체 이 결과는 무엇을 조사한 것일까? 왜 조사한 것일까?

두번째 문제는 설문 문항이다. 긴 설명을 붙여놓긴 했으나 응답자가 선택 가능한 정보는 ‘완화에 찬성하느냐, 아니냐’다. 현재 정책 논점은 완화 여부부터, 한다면 ‘무엇을, 어디까지, 누구에게’라는 다차원적인 수준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종부세에 더해 재산세, 대출 규제 등을 포괄하는 정책 패키지 차원에서 구성된다. 이런 중차대한 정책을 다루면서 ‘종부세’ 완화 하나만을 똑 떼어 조사한 결과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세번째 문제는 500개 표본 수 조사 결과에 대한 해석이다. 오차범위 ±4.4%포인트, 즉 8.8%포인트의 차이는 의미가 없는 조사다. 그러나 ‘44%와 38.4%’의 제목은 이런 해석을 전혀 담지 않으며 결과적으로 정보 왜곡을 가져온다. 제발, 이런 짓 좀 하지 마시라.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