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 군부가 이 청년에게 건 엄청난 현상금 [미얀마에서 온 사진]

소중한 입력 2021. 4. 21. 12:06 수정 2021. 6. 11.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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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소한 체구에 머리를 짧게 깎은 청년이 손을 번쩍 추켜세우자 수많은 인파가 그를 따라 주먹을 들어올렸다.

미얀마 민주화를 위한 시민단체에서도 활동했던 테이자 산은 지난 2월 1일 군부 쿠데타 이후 지체 없이 저항운동을 시작했다.

테이자 산은 쿠데타 사흘 뒤인 2월 4일 미얀마에서 처음으로 군부독재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미얀마인들은 이에 반발해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 주요 인물들의 얼굴을 담은 수배 전단지를 만들어 곳곳에 부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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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에서 온 사진] 32세 만달레이 청년 테이자 산.. 쿠데타 후 그의 첫 시위, 들불처럼 전국으로

[소중한 기자]

 미얀마 군부 쿠데타(2월 1일)에 저항하는 첫 시위(2월 4일)를 진행해 민주화운동의 상징이 된 32세 만달레이 청년 테이자 산(Tayzar San). 사진은 4월 14일 그의 모습이다.
ⓒ MPA
왜소한 체구에 머리를 짧게 깎은 청년이 손을 번쩍 추켜세우자 수많은 인파가 그를 따라 주먹을 들어올렸다. 청년은 항상 시위대 맨 앞에 서서 확성기와 마이크를 쥐었고, 2021년 미얀마 민주화운동의 상징이 됐다.

32세 청년 테이자 산(Tayzar San). 미얀마 대표 도시 중 하나인 만달레이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한 그는 대학원에서 행정학과 국제관계학을 공부했다. 미얀마 민주화를 위한 시민단체에서도 활동했던 테이자 산은 지난 2월 1일 군부 쿠데타 이후 지체 없이 저항운동을 시작했다.

테이자 산은 쿠데타 사흘 뒤인 2월 4일 미얀마에서 처음으로 군부독재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동료 20여 명과 만달레이 거리에서 벌였던 작은 기습 시위는 미얀마 전역으로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미얀마 군부 쿠데타(2월 1일)에 저항하는 첫 시위(2월 4일)를 진행해 민주화운동의 상징이 된 32세 만달레이 청년 테이자 산(Tayzar San). 사진은 4월 14일 그의 모습이다.
ⓒ MPA
 
쿠데타 세력은 테이자 산을 체포하는 데 혈안이 됐고 급기야 그에게 현상금까지 내걸었다. 4월 20일부터 그의 얼굴이 담긴 전단이 길거리와 SNS에서 삽시간에 퍼졌다.

1000만 짯(kyap). 쿠데타 세력이 테이자 산의 소재를 제보한 이에게 주겠다는 돈이다. 한국 돈으로 약 840만 원이라 엄청난 액수는 아닌 것 같지만, 경제 사정이 어려운 미얀마 평범한 국민들에겐 인생을 바꿀 수도 있는 돈이다.

미얀마에선 일반 서비스업 노동자 월급이 10만짯(약 8만 원), 말단 공무원 월급이 20만 짯(약 17만 원), 사기업 노동자 월급이 30만 짯(약 25만 원), 외국계 기업 근무자 월급이 600달러(약 67만 원) 정도라고 한다. 미얀마 일반 대중의 경우 한 끼 식사에 2500짯(약 2100원) 정도를 쓴다고 하니 1000만 짯이면 4000끼를 먹을 수 있는 액수다.
 
 쿠데타를 일으킨 미얀마 군부는 만달레이의 32세 청년 테이자 산(Tayzar San)에게 현상금 1000만 짯(약 840만 원)을 걸었다.
ⓒ 페이스북 'Myanmar Today'
 
미얀마인들은 SNS를 통해 테이자 산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다. 앞서 테이자 산은 자신의 주거지가 군부로부터 급습당한 소식을 SNS를 통해 알리기도 했다. 더구나 최근 몽유와(Monywa) 지역의 청년 지도자 웨이 모 나잉(Wai Moe Naing)이 잔혹한 방법으로 체포되면서 많은 미얀마인이 분노에 휩싸여 있다(관련 기사 : [영상] 차로 '쾅' 청년 지도자 체포...군부가 만든 충격적 장면 http://omn.kr/1sv4z)

쿠데타 세력은 그뿐만 아니라 미얀마 전역에 수많은 인사들을 상대로 수배령을 내렸고, 대형 포스터를 곳곳에 세워뒀다. 이들에게 씌워진 죄명은 미얀마 형법 505조 선동 및 내란 혐의다.

미얀마인들은 이에 반발해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 주요 인물들의 얼굴을 담은 수배 전단지를 만들어 곳곳에 부착하고 있다. "국가를 전복한 무장 반란집단 테러리스트들"이라고 적힌 전단지엔 민 아웅 흘라잉(Min Aung Hlaing), 딴 슈웨(Than Shwe), 조 민 툰(Zaw Min Tun) 등 8명의 얼굴이 담겨 있다.
 
 미얀마인들이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 주요 인물들의 얼굴을 담은 수배 전단지를 만들어 곳곳에 부착하고 있다. "국가를 전복한 무장 반란집단 테러리스트들"이라고 적힌 전단지엔 민 아웅 흘라잉(Min Aung Hlaing), 딴 슈웨(Than Shwe), 조 민 툰(Zaw Min Tun) 등 8명의 얼굴이 담겨 있다.
ⓒ 페이스북 'Myanmar Today'
 
테이자 산도 굴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4월 20일 페이스북에 "나는 이 여정을 끝까지 계속 해나갈 것이다"이라며 "아웅 산 수지를 체포하며 그들은 쿠데타가 성공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 세대는 이 나라에서 군사독재와 쿠데타에 맞서는 마지막 세대가 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쿠데타 세력은 국민의 힘을 과소평가한 것 같다. 독재자들은 지금이 (8888항쟁이 있었던) 1988년, (샤프론혁명이 있었던) 2007년이 아니란 걸 깨달아야 한다"라며 "나는 두렵지 않다. 물러서지 말고 포기하지 말자. 공포의 시대는 무너질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미얀마 군부 쿠데타(2월 1일)에 저항하는 첫 시위(2월 4일)를 진행해 민주화운동의 상징이 된 32세 만달레이 청년 테이자 산(Tayzar San). 사진은 2월 21일 그의 모습이다.
ⓒ MPA
 
 미얀마 군부 쿠데타(2월 1일)에 저항하는 첫 시위(2월 4일)를 진행해 민주화운동의 상징이 된 32세 만달레이 청년 테이자 산(Tayzar San). 사진은 4월 14일 그의 모습이다.
ⓒ MPA
  
 미얀마 군부 쿠데타(2월 1일)에 저항하는 첫 시위(2월 4일)를 진행해 민주화운동의 상징이 된 32세 만달레이 청년 테이자 산(Tayzar San). 사진은 4월 14일 그의 모습이다.
ⓒ MPA
  
 미얀마 군부 쿠데타(2월 1일)에 저항하는 첫 시위(2월 4일)를 진행해 민주화운동의 상징이 된 32세 만달레이 청년 테이자 산(Tayzar San). 사진은 4월 14일 그의 모습이다.
ⓒ MPA
 
 미얀마 군부 쿠데타(2월 1일)에 저항하는 첫 시위(2월 4일)를 진행해 민주화운동의 상징이 된 32세 만달레이 청년 테이자 산(Tayzar San). 사진은 2월 21일 그의 모습이다.
ⓒ M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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