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혹독했던 나, 록시 만나고 나를 내려놓는 법 알게 됐죠

2021. 4. 21.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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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대1 경쟁뚫고 시카고 '록시'役 무대올라
정확한 타이밍·악기 큐사인·조명 위치까지
연습 또 연습.."해본 것 중 가장 어려웠죠"
늘 완벽해야 하는 아이돌 '소녀시대' 15년차
"실수 하나로 항상 모자라는 사람 아냐..
록시 통해 치유받고 많이 건강해졌어요"
티파니는 “록시와 ‘시카고’라는 안전한 공간을 만나 제가 많이 건강해진 것 같다”며 “내 모습을 보는 사람들도 편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시컴퍼니 제공]

“역시 티파니”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했다. 200대1의 경쟁률을 뚫고 뮤지컬 ‘시카고’(7월18까지, 서울 디큐브아트센터)의 무대에 올랐다. 티파니 영에게 록시 하트는 ‘오래 품은 꿈’이었다. “제가 제일 많이 준비해갔던 것 같아요.(웃음)” ‘시카고’의 대사를 줄줄이 외웠고, 무대의 배경이 된 1920년대 미국에서 듣던 음악, 입던 옷, 마시던 술까지 섭렵했다. “여성 재즈 보컬리스트 톱25를 들으며 재즈를 공부했어요.” 경쾌하고 묵직한 브라스(brass)와 ‘찰랑거리는’ 드럼 연주에 맞춰 재즈 넘버를 소화해야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여섯 번의 무대를 마친 티파니 영(32)의 얼굴에 많은 감정이 오갔다. 설렘과 긴장감 안에 여유와 자신감도 묻어났다.

불륜남을 살해한 코러스걸 ‘록시 하트’. 천진한 얼굴, 사랑스러운 매력으로 스타를 꿈꾸는 록시는 티파니에게도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이 많았다. 연습생 시절을 거쳐 2007년 소녀시대로 데뷔, 15년간 K팝 그룹으로 치열하게 지내온 지난 시간들이 절로 떠올랐다.

“록시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건 스타가 되고 싶어 꿈을 꾸는 마음에 공감했기 때문이었어요. 20대 때 록시의 마음에 공감했어요. 인기라는 건 많았다가 적었다가 하잖아요. 30대가 되니 이제 좀 알 것 같아요.”

뮤지컬은 이제 막 개막했지만, 연습 시간이 상당하다. 본격적인 연습의 시작은 1월. 티파니는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록시가 될 준비에 돌입했다. “연습에 목 매는 스타일”이라는 티파니는 출석률도 단연 1등이었다. 워낙에 고난도를 요구하는 작품인 탓에 “연습만이 살 길”이었다.

“‘시카고’는 연기, 춤, 노래뿐만 아니라 정확한 타이밍, 악기 큐사인, 조명 위치까지도 맞게 기획된 공연이에요. 몇 번째 계단에서 어떤 드럼 박자에 맞춰 내려와야 하는지까지 계산돼 있어요. 제가 해본 것 중 가장 어려웠어요.”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세련된 안무는 배우들마다 혀를 내두른다. 티파니는 “울면서 연습했다”며 “좋은 코치를 만난 운동선수처럼 연습으로 하루하루를 채워나갔다”고 말했다.

이름과 유창한 영어가 아니라면 교포라는 사실도 망각할 만큼 정확한 한국어를 구사하지만, 정작 티파니는 “한국어 대사가 가장 어려웠다”고 말했다. “말은 한국어로 하는데, 생각은 영어로 해왔거든요. . 영어 대본과 한국어 대본을 함께 보고, 매일 녹음하면서 연습하다 보니 많이 좋아졌어요. ‘시카고’ 덕분에 한국어가 늘고 있어요.(웃음)”

티파니의 록시는 조금 특별하다. 무슨 일을 해서라도 자신을 알리고자 했던 ‘야망의 아이콘’이 아닌 ‘사랑에 허기진’ 한 사람으로 표현했다. 순수하고 인간적이다. “연예인으로서가 아니라, 한 사람으로 사랑과 보호를 받고 싶은 인간적인 캐릭터로 그려보고 싶었어요. 그래야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마침내 무대에 오르자, 응원과 지지가 이어졌다. 오디션 때부터 “간절히 합격을 기도했던” 소녀시대 멤버들은 “엇박에 춤을 추는 티파니를 ‘댄스 담당’”으로 임명(?)했다. “록시와 잘 어울린다, 정말 록시 같다는 이야기를 해줬어요.” 티파니 역시 록시를 만난 이후, 달라진 점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록시의 삶의 태도를 배웠다. 그 뒤엔 티파니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시카고’ 스태프와 팀원들의 믿음이 있었다.

“록시를 만나고, 실수를 해도 세상이 무너지는 것처럼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게 됐어요. 연습 초반엔 한 신만 틀려도 도미노처럼 와르르 무너졌어요. 난 ‘못하는 배우’라고 자책도 많이 했고요. 록시를 준비하면서 내게 조금 더 젠틀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티파니는 이 실수 하나로 항상 모자라는 사람이 아니야, 실수도 할 수 있어’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됐어요. 록시처럼 ‘뭐 어때’라는 마인드도 가질 수 있게 됐고요. 사실 그렇게 되기까지 두 달이 걸렸어요.”

소녀시대로 10년 넘게 무대에 서는 동안 티파니는 자신에게 혹독했다. 고작 3분의 시간동안 완성되는 무대를 위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해야 했고, 한치의 오차도 없어야 했다.

“워낙 엄격하고 완벽한 퍼포먼스 트레이닝을 많이 받다 보니, 제 자신에게 너무나 엄격했어요. 얼굴에 트러블이 생기고, 손톱 하나만 이상해도 내 노래가 별로라는 생각으로 이어졌어요. 그래서 철통보안하듯이 완벽하게 꾸며왔는데, 이젠 아침 일찍 일어나 풀메이크업을 하고 화려하고 꾸미지 않아도 전 티파니라는 것을 알아요.”

화려한 무대 위 모습이 아닌 오로지 실력으로 평가받고 싶은 마음도 컸다. 티파니는 “가장 고팠던 것은 작품과 실력을 보여주는 콘텐츠였다”고 말했다. ‘시카고’를 꿈 꾼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록시와 ‘시카고’라는 안전한 공간을 만나 제가 많이 건강해진 것 같아요. 이 현장에서 치유받고 있어요. 늘 꾸밀 필요가 없고, 지나치게 엄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자신부터 내려놔야 보는 사람도 편해지고, 그래야 힘도 받고 위로도 받을 수 있다는 걸 배웠어요. 제 안에서 밸런스가 맞춰졌고, 이제 드디어 제 자신을 만난 것 같아요. 저를 봤을 때 많은 사람들이 편했으면 좋겠어요.” 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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