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식의 지식카페>多産 필요 없어진 현대사회.. 저출산은 '심리적 진화'의 결과일 수도

기자 2021. 4. 21.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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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 김민식의 과학으로 본 마음 - (20) 마음의 진화

인간은 생존이라는 목적에 부합하게 발전… 동성애 증가도 그 결과물일 가능성

수명연장에 따라 다양한 환경 변화… 인식과 제도 뒤따르지 못하면 도태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사냐건/웃지요’라는 김상용 시인의 표현처럼, 삶의 이유를 물어온다면, 웃음으로 답할 수도 있지만, 인간은 끊임없이 존재 이유를 물어왔고, 알고 싶어 한다. 그래서 우리의 위대한 선각자들도 삶의 목적이나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하지만, ‘왜 사는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이야기하는 수많은 말이 이제는 우리의 생각이라는 방 안에 폐품처럼 쌓여가고, 우리는 오도 가도 못하는 방 안에서 여전히 재활용으로 쏟아져 나오는 온갖 말의 유희에 갇혀버린 신세가 된 듯하다. 도대체 인간은 삶의 의미와 목적을 왜 생각하게 됐을까? 인간만이 살아가는 의미와 목적을 생각한다면, 정작 지구상에서 인간보다 더 오랜 시간을 성공적으로 살아왔지만, 삶의 목적을 생각하지 않는(혹은 생각하지 못하리라 추측되는) 바퀴벌레와 같은 다른 생명체가 살아가는 목적은 무엇인가? 어쩌면 인간이 이처럼 골치 아픈 질문과 씨름하는 이유는 고등 인지기능과 의식을 담당하는 뇌 영역의 발달로 인한 일종의 부작용(?)일지도 모른다. 더욱 우울한 것은 오직 인간만이 자신이 다른 생명체보다 우월하다고 계속 외치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의 마음을 연구하는 심리과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어떤 가치가 옳은지,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지를 선뜻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신,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이 어떤 가치를 옳다고 생각하고 어떻게 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들이 개인에 따라, 상황에 따라, 그리고 시대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이해하려고 한다.

최근 심리학에서는 진화적인 관점에서 인간의 행동과 마음을 이해하고 설명하려는 시도가 활발하다. 매우 영향력 있는 현대 과학 이론 중의 하나인 다윈의 진화론은 생명체의 진화를 말하고 있지만, 이러한 진화적 관점과 이론들은 우리의 마음에도 적용 가능하다. 즉, 생존에 유리한 마음과 행동이 살아남아 후대에 전달되고 그렇지 않은 마음은 도태되거나 사라지는 것이다. 석기시대부터 수백만 년 동안 적응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뇌의 특정한 구조나 회로가 진화됐고, 오랜 기간 수렵과 채집을 하던 원시시대의 마음이 현대인의 뇌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

2007년 미국 퍼듀대학의 심리학자들과 2010년 필자의 연구실에서 발표한 기억 연구에서 사람들은 생존과 관련해서 생각할 때 가장 기억 수행을 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령, 실험 참가자들에게 일련의 단어를 하나씩 보여주고 과거 원시시대처럼 맹수들이 있는 초원에 홀로 남겨지는 상황을 상상하면서 각 단어가 얼마나 필요하고 중요한지 점수를 매겨 보라고 한 조건(생존 조건)이 다른 어떤 조건들(이사하는 상황을 상상하거나 단어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조건 등)보다도 높은 기억 수행률을 보인 것이다. 특히 같은 생존 조건이라고 해도 원시적인 초원을 상상하는 것이 도시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생존 조건보다도 더 높은 기억 수행률을 보인 점도 흥미롭다. 사실 우리 뇌의 진화는 수백만 년 동안 원시시대에 진행됐고, 어쩌면 우리 인류 조상들 대부분이 생존해 오면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초원의 상황은 우리 기억이 가장 효율적으로 작용하는 환경일 수 있다. 생존과 관련된 것이면 우리는 거의 자동적으로 잘 기억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생존과 관련된 것들을 잘 기억하는 사람들만이 살아남아 후손을 남겼고, 우리는 그들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적응적 마음도 있지만, 어떤 마음은 원시시대에는 적응적이었어도 오늘날에는 더 이상 적응적이지 않은 마음도 있다. 가령, 먹을 것이 귀했던 원시시대에는 달고, 짜고, 기름진 음식은 생존에 중요한 에너지원이었고, 이것을 좋아하는 것은 수백만 년 동안 적응적 마음이었다. 그러나 먹을 것이 넘쳐나는 오늘날 이러한 마음은 더 이상 적응적인 것이 아니고 성인병을 유발하는, 경계해야 하는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문제는 원시시대를 거쳐온 우리의 뇌는 아직도 기름이 많은 A++ 등급의 소고기에 더 많은 돈을 기꺼이 지불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진화는 세대와 세대를 거쳐 매우 느리게 진행되기 때문에 급격한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는 데에는 무용지물이다. 하지만 우리는 ‘학습(learning)’이라는 기전을 통해 시시각각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며 더 나아가 환경의 일부까지도 변화시킬 수 있게 됐다(물론 크게 보면 학습 능력도 진화의 산물임). 또한 인류는 다양한 생존 환경에 놓이면서 다양한 문화를 발전시켰다. 오늘날 동서양의 문화와 마음이 다른 것도 각 환경이 다르고 그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중요하게 지켜온 규범과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가령, 농업이나 어업을 통해 먹을 것을 얻어온 동양에서는 협업이 생존에 중요했고 그에 따라 집단주의적 문화가 발달했다. 반면에 목축업을 주로 했던 서양문화는 개인주의적 문화가 발달했다.

그렇다면 인류가 경험한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일까? 인류학자, 역사학자들이 그동안 인류가 겪은 여러 변화를 이야기했지만, 필자는 가장 큰 변화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만일 100년마다 한 번씩 지구에 와서 지구의 생명체를 조사하는 외계인(ET)이 있다면, 현재 인류가 과연 과거 15만 년 동안 조사했던 그 호모사피엔스가 맞는지 깜짝 놀랄 것이다. 그 이유는 인류가 그동안 모든 대륙에서 평균 수명 40세를 넘지 못했는데 이제는 그 두 배를 훌쩍 넘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현 인류는 어릴 때부터 예방 접종을 통해 선천적인 것에 더해 획득된 면역체계를 갖추고 있다. 각종 치료제와 의료기술의 발전은 우리의 수명을 연장해 놓았다. 최근 유전자 가위 개발 등 인간의 생명과 관련된 과학 기술 역시 과거 호모사피엔스와는 다른 그야말로 새로운 인류 탄생의 서막을 알리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과거의 인류가 아니다. 우리의 핏속에는 과거 호모사피엔스에게 없었던 다양한 항체가 준비돼 있어(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백신을 접종한 분들은 하나 더 추가됨), 이미 100년 전 우리 조상과는 생물학적으로도 다른 몸을 갖고 있다. 인간의 수명이 늘어난 이 엄청난 변화가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을까?

얼마 전 통계청은 2020년 대한민국 총 출생아 수가 27만 명을 조금 넘어 1970년 통계 작성 이래 최저를 기록했고,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도 0.84명으로 2018년 1명 미만으로 떨어진 이후 급격하게 하락하고 있는 것으로 발표했다. 이는 세계 최저, 역대 최저이며, 사망자 수가 출생아 수보다 커 자연 인구감소가 시작됐다고도 한다. 정부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해 다양한 출산 장려 대책을 내놓고는 있지만 백약이 무효한 상태다. 왜 그럴까?

한편으로는 젊은 세대에게,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는 이유를 물으면 결혼하기 힘들고 아기 낳아 키우기 힘든 환경 등을 이야기한다. 물론 맞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진짜 이유는 훨씬 더 깊숙한 곳에 숨어 있다. 집 마련하기 힘들고 아이들 키우기 힘들어서 결혼 안 하고 아이를 낳지 않는다면, 과거 보릿고개를 겪으며 고생했던 우리 조상이나 혹은 6·25전쟁을 겪으며 방 한 칸 마련하기 힘겹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 급급했던 불과 몇십 년 전에는 지금보다 출생률이 더 낮았어야 했다. “나 때는 말이야”로 젊은 층에게 훈수 두려는 얘기는 아니다. 우리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행동의 원인에 대해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내는 재능을 갖고 있다. 이성적이고 문화적인 예쁜 포장지로, 마음과 행동을 움직이는 본능적이고 생물학적 기저 원인을 감추는 것이다.

진화적 관점에서 보자면, 인간은 개인 수준부터 가족, 사회, 민족 혹은 전체 인류라는 다양한 수준에서, 각 수준의 생존과 번식이라는 최종 목적에 무엇이 부합되고 무엇이 이를 위협하는지 매우 민감하도록 진화됐다. 개인적인 이유로 혹은 경제적인 이유로 결혼을 꺼리거나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판단할 수 있지만, 집단 전체로 봤을 때는 지금의 저출산이 그렇게까지 큰 위협은 아니라는 집단적 사고가 형성됐기 때문일 수 있다. 즉, 집단의 생존을 위한 전략 가운데 저출산이라는 집단 마인드가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쥐의 경우, 넓은 공간에서 먹이가 풍부할 때에는 번식을 왕성하게 하지만, 제한된 공간에서 한정된 자원에 개체 수가 많아지면 동성 성행동을 보이는 비율이 증가하고 이를 통해 번식이 조절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제한된 공간과 먹이라는 환경에서 계속된 번식은 종족 전체를 파멸로 이끌 수도 있기 때문이다. 쥐들에게 동성애(同性愛)에 대한 별도의 문화적 포장지는 필요 없다. 단지 동성애적인 유전 형질을 많이 가진 개체가 상황에 따라 쉽게 발현될 뿐이다.

과거, 영아 사망률도 높고 인구가 적었던 시절에는 종족의 번식을 위해 자식을 많이 낳는 것은 선이요, 그렇지 못한 것은 악이었다. 자식을 낳을 수 없는 동성애 역시 큰 죄악으로 여겼다. 하지만, 이제는 동성 결혼을 법으로 인정하는 국가가 늘어나고 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종의 생존을 위한 기준도 변할 수 있으며 우리의 포장지(문화나 제도)도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다. 문제는 이런 의식적 사고나 관념, 문화의 포장이 급격한 환경 변화의 속도를 미처 따라가지 못해 적시에 대처하지 못하거나 소수의 인권에 고통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결국, 인류의 수명 연장과 더불어 우리가 직면한 다양한 환경의 변화(지구온난화, 자원의 고갈과 분배, 세계화, 소셜미디어와 인공지능 발전, 노동 구조와 가정 구조의 변화, 유전자 가위를 비롯한 생명 윤리와 관련된 다양한 문제)가 우리의 출생률 하락뿐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행동에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주는지를 이해하고 대처하는 것이 필요하다. 환경은 급격하게 바뀌는데, 발상이나 제도·문화의 변화가 그 뒤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면 그 집단은 도태될 것이기 때문이다.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 용어설명

진화 심리학(Evolutionary Psychology) : 인간의 행동과 마음을 진화적 관점에서 이해하고 설명하는 심리학의 분야. 진화 심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생존에 유리한 마음과 행동이 살아남아 후대에 전달되고 그렇지 않은 마음은 도태되거나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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