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년 전 삼국시대 상장례 문화 담은 금동신발 보물 됐다

김은비 2021. 4. 21.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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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은 고창 봉덕리 1호분과 나주 정촌고분에서 출토된 백제 시대 '금동신발' 2건을 비롯해 '장성 백양사 아미타여래설법도 및 복장유물' 등 총 3건을 21일 보물로 지정했다.

고창 봉덕리 1호분 출토 금동신발은 1500여 년 전 한국 고대인들의 상장례 문화를, 나주 정촌고분 출토 금동신발은 5~6세기 백제 금속공예 기술을 알려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보물 '나주 정촌고분 출토 금동신발'은 삼국 시대 대형 분구묘인 정촌고분의 1호 석실에서 2014년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가 발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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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나주 출토 '금동신발' 2건
"국내 최초 원형 그대로 발굴돼"
'백양사 아미타여래설법도·복장유물'도 보물로

[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문화재청은 고창 봉덕리 1호분과 나주 정촌고분에서 출토된 백제 시대 ‘금동신발’ 2건을 비롯해 ‘장성 백양사 아미타여래설법도 및 복장유물’ 등 총 3건을 21일 보물로 지정했다.

나주 정촌고분 출토 금동신발(사진=문화재청)
고창 봉덕리 1호분 출토 금동신발은 1500여 년 전 한국 고대인들의 상장례 문화를, 나주 정촌고분 출토 금동신발은 5~6세기 백제 금속공예 기술을 알려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둘 다 각각 한 쌍으로 출토된 이들 금동신발들은 모두 백제 5세기에 제작됐다. 삼국 시대 고분 출토 금동신발 중 가장 완전한 형태로 발견된 보기 드문 사례다. ‘금동신발’이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보물 ‘고창 봉덕리 1호분 출토 금동신발’은 전라북도 고창 봉덕리에 자리한 4기의 대형 분구묘(분구를 조성한 다음 그 안에 매장시설을 설치하는 무덤양식) 중 규모가 가장 큰 1호분의 제4호 석실에서 발굴했다.

4호 석실은 전혀 도굴되지 않은 무덤으로, 여기에서 금동신발 한 쌍이 무덤 주인공의 양쪽 발에 신겨져 거의 훼손되지 않은 채 출토됐다.

고창 봉덕리 1호분에서 출토된 금동신발은 현재까지 백제 시대 고분에서 나온 약 19점의 금동신발 중 가장 완벽한 형태다.

나주 정촌고분에서 출토된 금동신발과 비교했을 때 어자무늬(물고기 알 문양) 등 삼국 시대 초기 문양이 확인돼 시기적으로 앞서 제작된 것으로 판단된다.

보물 ‘나주 정촌고분 출토 금동신발’은 삼국 시대 대형 분구묘인 정촌고분의 1호 석실에서 2014년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가 발굴했다. 정촌고분 1호 석실 제3목관에서 발견된 금동신발은 좌우 신발 한 쌍이 거의 훼손되지 않은 채 완벽한 모습으로 출토됐다.

특히 발등 부분에 부착된 용머리 장식은 현존 삼국 시대 금동신발 중 유일한 사례로 주목을 받아 왔다. 국립나주문문화재연구소의 최근 과학적 분석 결과에 따르면 신발의 주인은 40대 여성인 것으로 추정됐다.

금동신발은 형태와 제작기법, 문양 등에서 고창 봉덕리 출토 금동신발과 매우 유사하다. 얇은 금동판 4장으로 바닥판과 좌우 옆면판, 발목깃판을 만들어 서로 작은 못으로 연결하였고 문양을 투각해 세부를 선으로 묘사한 방식 등 고대 금속공예 기법이 잘 반영돼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두 유물은 국내 최초 원형 그대로 발굴된 유물이라는 점에서 고고학과 역사적으로 의미가 크다”며 “같은 시기 중국이나 고구려, 신라의 미술품과 비교해 문양의 기원과 변천, 상징적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 지금까지 알려진 삼국 시대 금동신발과 비교하여 백제 공예문화의 독자성을 밝힐 수 있는 원천유물이라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 또한 매우 높다”고 평가했다.

장성 백양사 아미타여래설법도(본존불 세부)(사진=문화재청)
이번에 함께 지정된 보물 ‘장성 백양사 아미타여래설법도 및 복장유물’은 호남을 대표하는 고찰 백양사에서 300년 넘게 전래된 불교문화재다. 1994년 9월 도난됐으나, 2006년 9월 지금의 제자리로 환수됐다.

본존 아미타불이 여러 제자들에게 불교의 교리를 설법하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1775년(영조 51) 백양사 극락전 아미타불상을 중수하면서 새롭게 조성한 불화다.

본존인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8대 보살과 6위의 제자, 사천왕, 2위의 팔부중(불법을 수호하는 8명의 신)을 배치했다. 안정되고 짜임새 있는 구도, 간결한 필치와 중후한 색감, 원만한 인물 표현 등 수화승 색민의 화풍을 잘 반영하고 있는 조선 후기 대표적 불화다.

불화의 조성시기, 참여자 명단 등을 알려주는 발원문과 복장낭(불화를 조성한 뒤 불경 등 복장품을 넣는 주머니) 등 복장유물 6건도 온전하게 잘 남아 있다.

김은비 (demeter@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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