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우 서울시립대 자연과학연구소 연구원 "과학에도 철학적 성찰이 필요하다" [2050 과학오디세이]

2021. 4. 21.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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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과학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판단 내리는 시점이 있다. 충분하다는 생각이 있는 모든 곳이 철학이 가능한 지점이다. 기후위기가 왜 중요한 질문이 되었는지, 이것을 짚어보면 될 것 같다.



필명은 베트남 갑오징어. 한국이 베트남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을 때 잡음이 일었던 품목 중 하나다. 〈거대도시 서울 철도〉를 출판한 철도 덕후. 집필에 7년이 걸렸고, 분량만 552쪽이다. 전 세계에 깔린 철도망을 해부하듯 썼다. 철도에 들어가는 재정과 자율주행차 시대의 도래처럼 교통시스템 전반을 파헤쳤다. 가격(2만7000원)이 만만치 않지만, 책은 2쇄를 찍었다. 이쯤 되면 ‘성덕(성공한 덕후의 줄임말)’이다. 도시와 문화, 공간을 탐색한 〈확장도시 인천〉의 공저자이기도 하다.

전현우 서울시립대 자연과학연구소 연구원의 본업은 과학철학이다. 교통, 도시를 연구하는 학자 같지만 과학철학 전공자다. 전현우 연구원은 “국내에 과학철학자라고 불릴 만한 연구자는 두 자릿수 정도”라고 했다. 그만큼 과학철학을 주전공으로 삼은 이들이 많지 않다. 〈역학의 철학〉, 〈증거기반의학의 철학〉, 〈사고실험〉, 〈숫자에 속아 위험한 선택을 하는 사람들〉처럼 제목부터 철학책임을 알 수 있는 저서 번역에 참여했다.

전현우 연구원을 지난 4월 9일 오후 서울역 인근 한 카페에서 만나 2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추가 인터뷰는 e메일로 진행했다.

-과학철학이라고 하면 과학과 철학의 접목으로 보면 될까.
“철학은 일종의 질문 체계다. 질문을 하려면 대상이 있어야 한다. 질문의 대상이 과학이 되면 과학철학이다. 과학철학은 과학의 거울이다. 거울에 비춰보는 행위는 곧 과학자의 사고방식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우리는 거울 속에 보이는 자신의 얼굴에 무언가 티끌이 묻어 있다면 이것을 뗀다. 이는 과학연구를 더 잘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는 과정과 유사하다.”

-구체적으로 질문을 던질 수 있을까.
“가령 이런 질문이다. 과학을 대체 왜 하는가. 이런 질문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이고, 무언가를 얻기 위해 생각을 어떻게 전개할지 고민하는 작업을 예로 들 수 있다. 사실 과학도 어려운데 과학철학은 과학을 거쳐 철학의 작업까지 해야 한다. 게다가 현장의 과학자들이 자신의 연구를 위해 던지는 질문은 지극히 전문적인 배경 위에 있다. 이 때문에 과학철학에는 약간의 장벽이 있다. 다만 과학이 한발 앞으로 나아갈 때, 즉 과학자들이 새로운 무언가를 알게 될 때 이들은 부분적으로 철학적 질문을 던져 그런 결과를 얻은 것이다.”

-왜 과학철학을 택했나.
“철학자들의 활동이 인문대학이라는 작은 제도 안에 갇혀 있는 느낌을 받았다. 사람들이 철학을 읽기는 하는가? 읽는 사람들에게 정말 중요한 통찰을 주는가? 이게 문제였다. 물론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다양한 요인이 있다. 분업화·전문화된 정교한 과학체계에 개인이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작업을 혼자 하겠다고 덤비는 것 자체가 무모해져 간다. 그렇다고 철학의 중요성이 사라지지는, 또는 사라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지식이 실제로 전진하게 만드는데, 다른 분야에서 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기여한다는 성취감을 포기하고 싶겠는가.”

-한국 과학계에서 과학철학의 위치, 위상은 어느 정도일까.
“사실 과학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필요하다는 생각 자체가 (한국에선) 아직 충분히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철학자들이 좋아하는 문제 중 상당수는 한국의 특수성과 큰 연관이 없는 문제일 수 있다. 예를 들어 과학적 실재론이라는 논쟁이 있다. 우리는 어떤 과학적 이론이 말하는 대로 세계가 존재한다고 믿고, 그리고 그 이론이 제안하는 존재자들이 실재한다고 믿는다. 확보한 증거에 대한 최선의 설명이라는 점에서 올바른 믿음이라는 입장이 과학적 실재론이다. 반면 경험론자들은 믿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논리적 비약은 있다고 주장한다. 과학의 최선은 증거와 이론이 서로 부합한다는 점을 확인하는 것뿐이라고 본다. 이론, 그리고 이론의 존재자가 실재한다는 믿음으로 넘어가는 것은 언제든 결국 논리적 비약이 발생한다는 입장이다. 두 입장은 여전히 팽팽하게 대결한다. 한국 현실과는 무관하게 세계적인 보편성을 띠는 논쟁이다.”

각 출판사 제공


-한국에서 과학철학을 둘러싼 논의가 더 활발해져야 한다는 이유는 무엇일까.
“편재해 있는, 그러나 충분히 묻지 못한 질문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철학이 가장 잘 하는 역할이다. 이것을 구체적으로 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한국어를 쓰는 사람들이 다른 언어권 화자보다 철학적 질문을 정교하게 제기하지 못하는 상황을 줄이는 것, 어떤 부분에서는 더 날카로운 질문을 해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한국에서 (과학)철학연구가 필요한 이유라고 본다.”

-한국 과학기술계에는 어떤 질문을 던져볼 수 있을까.
“지식은 흔히 사소한 지식과 중요한 지식으로 흔히 나뉜다. 여기에는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 선제적으로 담겨 있는데, 의문을 던져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 헌법(제127조 제1항)에는 ‘국가는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 및 인력의 개발을 통하여 국민경제의 발전에 노력하여야 한다’고 적혀 있다. 과학기술은 줄곧 경제 발전의 도구였다. 한때는 경제 발전의 도구인 과학이 중요했던 시대였다. 과학기술 시민사회계에서도 계속 문제 제기를 해왔다. 헌법 개정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이어지고 있다.”

-해외 과학철학계가 구체적 현실에 던진 질문도 소개해줬으면 좋겠다.
“번역했던 책을 언급하고 싶다. 〈역학의 철학〉은 말 그대로 역학을 다룬다. 통계적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설명하려는 게 역학이다. 역학은 인구집단에서 확인할 수 있는 상관관계를 환자 개인의 인과관계로 전환하는데, 이때 논리적 비약 없이는 성립하지 않는 과학이다. 저자는 논리적 비약이 가능한 조건을 꼼꼼히 따지는 작업을 한다. 공해나 위험물 소송에서 역학자들과 법학자들이 논리적 비약을 둘러싼 생각이 다르다. 이들을 대조하는 관점을 제안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서도 역학이 쟁점 중 하나다. 여러 피해자는 “내 몸이 증거”라면서 가습기 살균제 흡입 독성과 인체 피해의 인과관계를 주장한다.
“모든 역학에는 (논리적) 점프(비약)가 있다. 역학의 증거는 인구집단이다. ‘내 몸’은 개별적인 것이다. 우리가 개별적인 사건에서 쓸 수 있는 과학이 무엇이냐고 했을 때, 역학 이외에는 설명할 수 있는 과학은 없다. 정밀 의학이 나와서 (흡입 독성의) 메커니즘을 잘 알게 되면 또 모르겠지만, 현재는 그런 상황은 아니지 않은가. 역학은 ‘논리적 비약이 있으나 이게 최선’이라고 말한다.”

-법원은 역학을 적용하는 데 인색한 것 같다. SK케미칼·애경산업의 가습기 살균제 제품은 살균제와 인체 피해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 1심 법원이 판단했다. 담배와 건강 피해 사이 인과관계도 1심 법원이 인정하지 않았다.
“일부 영미법계에서는 문턱값 같은 개념을 적용한다. 실무 규정에 있다. 예를 들어 위험 노출이 ‘2’가 되었을 때, 그러니까 위험물에 노출됐던 사람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발병률이 2배 이상 넘으면 문턱값을 넘었다고 보는 식이다. 인과관계가 입증이 됐다고 판단한다. 우리 법원은 이런 걸 안 할 텐데, 실무적인 판단을 내려야 한다면 기준이 필요하다. 현재 법원은 ‘충분한 양’보다는 충분히 의심을 제거할 수 있을 정도의 입증을 요구하면서 질적 측면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입증 책임도 피해자들에게 있는 데다가, 이런 상황에선 역학의 강점을 살리기 어렵다.”



-과학철학과 철도는 언뜻 보면 거리가 먼 것 같은데, 언제부터 철도에 관심을 가졌나.
“(집이 있는) 인천에서 서울을 늘 오갔다. 서울지하철 1호선의 일부인 경인선은 왜 이렇게 밖에서만 운행하는 건지 늘 의문을 품었다. 2000년대 중반부터 대중교통의 사회적 가치를 다루는 작업이 국내에 소개됐고, 피부에 와닿는 시스템 변화도 일어났다. 다만 당시 소개된 몇몇 저술들이 너무 추상적이어서 직접 인터넷을 통해 세밀한 데이터를 얻으며 작업을 늘려갔다.”

-과학철학과 철도는 어떤 연결고리 혹은 공통점이 있을까.
“지식의 시스템이나 오늘날 교통시스템은 당연하게 여기면 사실 별다른 필요성을 느끼기 어려운 존재들이다.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또는 성공적이었던 방법을 그대로 쓰면 된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개인 승용차를 교통체계의 중심에 두고,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대중교통 수요는 버스로 때우면 된다.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질문의 결과가 철학과 철도의 존재라고 생각한다. 왜 이런 시스템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적극적인 반성이 없다면 철학과 철도는 확장하기 어렵다. 철도는 다양한 교통수단 가운데 하나일 뿐인데다 고속철도 이전에는 수십년간 적자였다. 왜 이런 이상한 일들을 해야 하는지, 그 정당화 논리를 생각하지 못하면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다는 뜻이다.”

-〈거대도시 서울 철도〉의 부제는 ‘기후위기 시대의 미래 환승법’이다. 실제로 프랑스에서는 단거리 국내선 비행기 운항을 금지하는 법안이 하원을 통과했다.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조치다. 에너지 효율이 높은 철도가 주요 수단으로 부각되는 상황인데.
“이 책을 철학책으로 생각하고 썼다. 철도라는 거울에 비춰보는 작업이었다. 잘살아보겠다는 노력의 집합이 개발일 텐데, 어떤 노력의 방향이 결정적으로 틀린 부분을 보여주는 게 기후변화다. 책에서 ‘두 번째 자동차화’를 언급했다. 두 번째 자동차화란 현재의 자동차화된 교통체계가 동력, 운전 인지체계, 차량의 소유권 변화로 다시 겪게 될 변화를 가리킨다. 자율주행차가 떠오르는 현재 상황을 생각하면 된다. 이런 변화는 기후위기라는 중대한 제약 조건 아래에서 평가되고 조정돼야만 한다. 사실 승용차 통행을 철도로 이전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미 수십년 동안 교통공학계에서 합의한 사항이었다. 이런 합의가 무색하게도 승용차의 지배력은 심화돼 가고 있다.”

-수도권 주요 지역에 경전철이 들어서고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도 공사가 시작됐다.
“수도권에서 처음 경전철이 개통된 것이 2012년이다. 이후 9년간 개통된 경전철 노선이 5개 정도다. 신림선 등 서울 내부 노선 사업 속도는 수요에 비해 그리 빠르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지난 10년간 늘어난 소득, 공급된 택지에 비해 도시철도망 공급은 그렇게 빠르지 않았다. 경전철은 도시철도 중 차량의 규모에 주목한 분류이다. 차량을 작게 만들면 그만큼 시설 투자 비용이 줄고 운영 비용도 줄어든다. 도시철도가 경제성을 키울 수 있는 시스템이 경전철이다. 기후변화 국면에서 경전철은 도시 내부 통행을 탄소 배출량이 적은 수단으로 옮겨오는 시스템 변화의 주역으로 사용돼야 한다. 다만 재정 문제가 있는데, 재정체제는 그동안 의존해온 유류세가 자동차 전기화와 함께 줄어들 예정인 이상 큰 변화가 불가피하다.”

-기후위기 시대에 과학철학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과학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판단 내리는 시점이 있다. 충분하다는 생각이 있는 모든 곳이 철학이 가능한 지점이다. 기후위기가 왜 중요한 질문이 됐는지, 이것을 짚어보면 될 것 같다. 지금까지의 삶, 개발의 방식이 뭔가 총체적으로 잘못됐다는 하나의 증상이다. 기후위기 자체가 인간이 가늠한 모든 것의 가치에 대한 질문을 묵시적으로 내놓고 있는 사태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묵시적인 질문을 명시화해야 하는 시간이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한다.”

글·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사진·이준헌 기자 ifwedo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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