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영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과학기술정책이 과학적이지 않다" [2050 과학오디세이]

2021. 4. 21.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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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김소영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는 5의 배수를 꺼린다. ‘OO 양성 5만명’, ‘OO 지원 1000억원’처럼 숫자가 딱 떨어지는 정책 목표치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본다. 김소영 교수는 웃으며 “10만 양병설의 폐해”라고 했다. 과학적이지 않은 과학기술정책을 꼬집은 비유다. 그는 “8만6000명도 아니고 늘 10만명, 1000억원처럼 근거 없는 목표치가 나오는 게 과학기술계의 문제”라고 말했다.



김소영 교수는 과학기술정책을 다루는 사회과학자다. 주 전공은 정치학이다. 학생운동을 하다 갈 곳이 마땅치 않아 국내 대학원에 진학했다. 이후 풀브라이트 장학생에 선발돼 미국에 다녀온 뒤 과학기술정책 학자가 됐다. 한국 과학기술정책 분과에는 학자군이 넓지 않다. 어림잡아 100명 정도다. 과학기술정책 전반을 다루기 때문에 김 교수의 연구 분야만 보더라도 원자력 정책, 과학기술예산, 대학원생 인권, 여성 과학자 처우처럼 다양하다.

과학기술을 다루면서도 휴대전화를 쓰지 않는다. 2011년 우면산 산사태 때, 인근 연구소 회의가 취소됐지만 연락을 받지 못해 혼자만 발을 동동 구른 적도 있다. 김소영 교수는 “고상한 이유는 없다. 그냥 바빠서 그렇다(웃음). 처음에는 총장님, 학장님도 휴대전화 쓰라는 얘기를 많이 했지만, 이제는 오히려 다들 부러워한다”고 말했다. 김소영 교수를 지난 4월 7일 오후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만나 2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추가 인터뷰는 e메일로 이뤄졌다.

-과학기술정책 분과를 간단히 소개하면.

“크게 두가지 측면이 있다고 보면 된다. 과학기술을 진흥하고 과학기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 분야로 기능을 한다. 반대로 사회의 정책적인 문제에 과학기술을 활용하는 것도 과학기술정책 분야로 묶인다.”

-과학기술정책이라고 하면 뭔가 정부 주도로 이뤄지는 과학 진흥의 느낌이 있다.

“박정희 시대 때 과학기술 진흥을 목표로 한 뒤 50여년이 지났다. 그때만 해도 가장 똑똑한 인재들이 경제기획원(현 기획재정부)에 가서 기획·조정·예산 다 틀어쥐고 플랜을 짰다. 지금은 정부가 과연 똑똑하다고 할 수 있을까? 자원의 선택과 집중은 필요한데, 정부 주도의 선택이 과연 현명한 선택일까? 정부가 방향을 잡는다 해서 과학기술이 발전하는 시대도 아니다. 정부의 역할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지, 그렇다고 또 민간에 그냥 맡겨버리면 되는 것도 아니다. 신기술일수록 정책이 기술을 더 못 따라가는데 정부는 더 기민하게 정책적으로 대응해야 할 역할을 해줘야 한다.”

-직접 만나본 과학기술 분야 관료들은 어떤가.

“맨날 나오는 지적이지만 너무 자주 바뀐다. 전문 분야라는 게 없다. 그런데 또 공무원들이 똑똑해서, 공무원의 복지부동이 정책 안정성에 기여하는 측면도 있다. 창조경제나 4차 산업혁명이나 사실 조금씩만 바꾸면 비슷해진다. 문재인 정부의 그린뉴딜도 이명박 정부에서 했던 것과 어떤 면에서 보면 비슷하다.”

-여전히 올해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만 27조4000억원 규모다.

“정부 연구개발 예산 중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배정된 예산이 17조5000억원이다. 여전히 예전에 했던 것처럼 정부가 5개년 계획을 짜고, 법을 만들어 예산 투입 근거를 만들고. 일종의 게임이다. 선수들은 다 안다. 기초과학이나 불확실성이 큰 기술에 투자해본 적이 거의 없다. 정부 지원도 단순히 예산을 넣는 형태 외에 새로운 정책 툴을 써본 경험도 없다. 기껏해야 보조금이나 조세 지원 정도다.”

-과학기술정책의 고도화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카이스트만 해도 그렇다. 한때 일정 성적에 미달하면 장학금 지급을 하지 않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학생들이 늘어나 논란이 됐다. 또 다른 문제는 학생들이 학점을 받기 쉬운 과목만 찾아 듣는 데에서 발생했다. 역설적으로 공부를 덜 하게 되고, 덜 배우게 되는 거다. 정책은 n차 효과를 생각해야 한다. 과학기술 지원 정책도 마찬가지로 단순히 예산 투입, 보조금 지원의 관점에서만 접근할 때는 지났다.”

출판사 제공
-지난해 7월부터 8개월간 정부의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 위원장도 맡았다. 실제 정책 조정·집행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일 것 같은데.

“욕 많이 먹었다, 그 자리에서(웃음). 최장기 난제이고 미해결 국책과제다. 재검토하면서 들여다보니 장기가 아니라 초장기 과제더라.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시간 지표를 넘어가는 사회 집단적 문제다. 그런데 여러 쪽에서 다들 빨리빨리 하자는 목소리가 크다. 언뜻 보면 기술문제인 것 같지만 정책문제다. 기술역량은 커지면서 점차 해결될 가능성이 있는데, 정책역량은 갈 길이 먼 상황이다. 탈핵을 주장하는 시민사회계가 주장하는 재검토가 맹탕이라는 비판은 뼈아프지만, n차 검토가 필요하다. 오래 걸리더라도, 어떻게 풀어낼지 고차방정식을 고민해야 한다. 테이크 앤 기브(Take and give)보다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로 접근해 먼저 내주는 협상 방식도 필요한데, 그런 부분이아직 부족하지 않나 싶다.”

-과학기술정책이 목표치만 거창하다는 지적을 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경제성장률 추산을 보면 2.8%처럼 소수점 단위로 나온다. 그런데 과학기술정책을 보면 여성 박사 1000명 육성, 여성 비중 25% 달성, 기초과학 예산 2배 증가처럼 디테일이 없다. 목표치를 감으로 잡는 거다. 과학을 진행하는 정책에서 과학을 안 쓴다. 미국만 봐도 최근 기조가 과학정책의 과학화다. 요새 유행하는 증거기반 정책이라도 결이 비슷하다. 특히 과학에서 쓰는 국가 예산, 그러니까 쓰는 세금의 규모가 커지는데 그러면 책무성도 더 커지는 것 아닌가. 세금을 쓸 때는 명확한 근거를 갖고 써야 한다.”

-과학자를 늘리겠다는 목표도 비과학적으로 잡혀 있는 것인가.

“굉장히 공급 위주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AI) 인재가 모자란다고 하면 1만명 키우자는 식이다. 8600명도 아니고 1만명이다. 명확한 근거 없이 그냥 인재를 많이 키우자는 거다. 한국에서 얼마나 과학자가 필요한지, 현재는 부족한 것인지 따져본 적이 있을까. 과학기술인력 종사자는 2007년 연구를 기준으로 169만명이었다. 이후에는 아마 제대로 된 통계와 분석이 없는 것으로 안다. 현재도 비정규직 연구원들 문제는 계속 이슈가 되고 있다. 고용의 질 문제다.”

-정보기술(IT) 기업들을 중심으로 과학기술 인재가 없다는 불만이 나오기도 하는데.

“이른바 ‘미스매치’ 이야기는 오래됐다. 양측의 이야기가 엇갈린다. 기업은 인재가 없다고 하고, 대학에서는 무슨 대학이 직업훈련소냐고 푸념한다. 각자의 입장에서 일리가 있는 말이다. 다만 이런 점은 있다. 과기부에서 AI 대학원 사업을 하는데, 이 때문에 대학에서는 최근에 AI 관련 학과를 만드는 곳이 있다. 예전부터 AI를 다뤘던 학과 이름에 AI를 넣는 사례들이 있다고 들었다. 기업 입장에서야 AI 인재를 대학이 바로바로 배출해주면 좋지만, 대학 입장에서 보면 AI 이후에 포스트 AI 시대가 올 수도 있다. 대학처럼 파도가 막 쳐도 큰 물건은 그대로 있는 곳이 어쩌면 시대 변화에 더 안정적으로 대응할 수도 있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에는 4차 산업혁명 선도기반 구축이 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유령〉(이하 유령)이라는 책에 공저자로 참여했고, 카이스트 한국4차산업혁명정책센터장도 맡고 있다. 4차 산업혁명 논의는 어디까지 왔나.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는 이미 온갖 군데에서 여러 목적으로 가져다 쓰고 있다. 그 행위 자체가 또 다른 실재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이미 다가온 미래라고 볼 수도 있겠다. 디지털 영역에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확실한데, 정권의 슬로건으로서 4차 산업혁명 담론은 얼마나 오래갈지 의문이긴 하다(김소영 교수는 〈유령〉에서 4차 산업혁명은 창의력과 융합, 비판적 사고처럼 한국 사회의 풀리지 않는 정치·경제적 문제를 되짚는 계기를 제공한다고 썼다).”

-4차 산업혁명 담론과 맞물려 타다, 배달의 민족 같은 플랫폼 기업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혁신으로 볼 수 있냐는 논쟁도 있다.

“혁신은 맞다. 굉장히 작은 것도 혁신이다. 기존의 것보다 잘하는 것도 혁신이다. 작은 프로세스를 바꾸는 것도 혁신이다. 저는 플랫폼 기업의 활동을 혁신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새로운 혁신으로 발생하는 제도의 공백을 채워나가야 하는 과제가 생긴다. 다수의 플랫폼 기업은 개개인을 자영업자로 보고, 노동법의 구애를 받지 않으려 한다. 정부가 복지 강화처럼 제도로 새로운 혁신에서 위험에 내몰린 사람들을 구제해야 한다.”

2020년 11월 열린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 전국 의견수렴 결과 설명 및 정책 토론회. 오른쪽 세 번째가 김소영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 제공


-미국은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미국 과학기술정책실(OSTP)에 신임 과학정책 주요 책임자로 여성인 알론드라 넬슨을 임명했다. 과학기술과 사회적 불평등을 연구했던 사회학자다.

“우리도 관점을 바꿀 때가 됐다. 가난했을 때는 과학기술에 투자해 미래를 만들자는 식의 합의가 있었다. 이제는 과학기술의 과잉도 고민해보는 시대가 됐다. 가끔은 부자를 위한 과학이 아닌지 생각도 해보게 된다. 이제는 빈자를 위한 과학이 중요해진 것 같다. 알게 모르게 과학기술 발전으로 불평등이 심화된 사례들이 누적돼 있다. 혁신성장이나 4차 산업의 그림자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플랫폼 기업의 노동자를 예로 들 수 있다. 과학기술계 내의 불평등 문제도 많다. 포닥(박사후연구원)이나 비정규직 연구원, 청년 과학자 처우, 여성 과학기술인, 지방대 이공계 문제가 있다.”

-대학원생 인권, 대체복무 형태인 이공계 전문 연구요원 축소에도 목소리를 내고 직접 연구를 진행했던데.

“현장이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다. 어쩌면 학생운동을 했던 시절의 버릇, 그러니까 연구실 바깥 일이 더 궁금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웃음).”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중장기정책위원장도 맡고 있다. 과학기술계에서 여성으로 지내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제 사례는 예외적이다. 애가 셋인데 친정어머니가 계속 같이 살면서 돌봐주셨다. 남편 도움도 컸다. 카이스트는 2001년 전체 교원 중 여성 과학자 비율이 3%였는데, 2020년에는 11%로 늘긴 했다. 그래도 여전히 현실은 녹록지 않다. 여전히 과학은 남자가 하는 것이라는 편견이 과학기술계에 남아 있다. 여성이 적다 보니 여성이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짙다.”

-여성 과학자를 지원하는 제도는 없나.

“여성과학기술인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여성 과학자 육성 및 시행 기본계획 같은 건 다 있다. 지금이 벌써 4차다. 그런데 여전히 늘지 않는 이유는 막 오라고 꼬셔도 살아남기가 어려운 구조다. 어차피 승진이 어렵고, 보직을 받기도 어려운데 커리어 전망이 없다고 본다. 똑똑하니까 알고 떠난다. 이제는 조금 뒤집어봐야 한다. 선발보다 중간에 지속가능한 연구를 보장해줘야 하고, 미래의 비전도 제시해줘야 한다. 과학자 수를 늘리는 데 집중하기보단 계속 남을 수 있게 내실을 다져야 한다. 사실 여성 과학기술인 문제는 한국 과학기술인 문제의 단면이기도 하다.”

-여성 과학자를 떠나지 않도록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면 어떤 게 있을까.

“여성이 생리적으로 출산을 할 가능성이 높은 시기와 아카데믹한 영역에서 막 속도를 내 연구할 때가 겹친다. 육아가 부부의 공동 책임이지만 신체적으로는 일단 여성이 다 감당하는 측면이 크다. 여성들을 과학기술계에서 떠나지 않게 하려면 육아휴직을 둘러싼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육아휴직을 했을 때 대체인력이 필요한데 과학기술계는 대체인력 채용 시스템이 미비하다. 2018년 고용노동부 조사를 보면 과학기술계에서 육아휴직이나 임신기 단축 근로제 활용이 어려운 이유로 대체인력을 구하기 어렵다고 응답한 이들이 34.5%였다. 다른 업종이 0~19%에 분포돼 있는 것에 비해 월등히 높다.”

-과학기술계의 만만치 않은 업무량도 걸림돌일 것 같은데.

“재밌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정부가 출연한 연구원들은 대부분 직장 어린이집이 다 있다. 친한 분들이 싸웠는데, 한 분은 직장 어린이집을 밤 9~10시까지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구가 오후 6시에 일률적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 주장의 근거였다. 다른 한 분은 그걸 우리가 요구하고 있으니까 문제라고 반박했다. 우리도 저녁 6시까지만 일하고 저녁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받아쳤다. 옛날에는 불 꺼지지 않는 연구소 같은 게 먹혔다. 그런데 이제는 멍때리는 시간도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일-가정 양립이 아닌 일-생활 균형을 이야기할 시기다. 무자비한 주 7일 연구개발 체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문제의식이 있다.”

글·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사진·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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