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나라 여행, 그리고 결혼식 [우정이야기]

2021. 4. 21.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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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1979년은 유엔이 지정한 ‘세계 아동의 해’였다. 유네스코가 세계 아동의 해를 맞아 전 세계 4~12세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서기 2000년의 나의 생활’이란 주제로 그림을 공모했다. 전 세계 85개국이 국내 공모전을 열었고, 10개 그림을 선정해 프랑스 파리에 있는 유네스코 본부로 보냈다. 난민캠프에서도 어린이들의 그림을 보냈다. 그렇게 모인 850여점 중 ‘세계 어린이들의 꿈을 대표하는 그림’으로 최종 선정된 건 딱 10개의 그림이었다. 서울의 사당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한 어린이가 그린 ‘달나라 여행’이 여기에 포함됐다. 당시 우정당국은 ‘달나라 여행’을 담은 우표를 발행하면서 이렇게 소개했다.

유네스코가 1979년 전세계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서기 2000년의 나의 생활’ 그림 공모전에서 수상한 작품들. 한국 어린이의 ‘달나라 여행’(위)과 키프로스 어린이의 ‘결혼식’(아래)
“아이는 다음과 같은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다 한다. 서기 2000년이 되면 무얼 하면 좋을까? 근사한 일을 해야 할 텐데… 로켓을 타고 싶다. 휙 날아 우주 구경을 하면 좋겠다. 로켓을 타고 여행을 한다면 누구랑 같이 갈까? 혼자 가면 심심할 테니…. 그때쯤이면 여자친구도 생길 테니 그 애랑 가면 좋겠다. 그 애는 달나라 공주, 나는 우주의 왕자. 어디를 갈까? 아름다운 무지개 속을 날아간다. 그리고 멀리멀리 구경하고 싶다. 로켓을 타고 해님도 만나고 별나라, 달나라 모두 구경하자. 내가 탄 로켓은 우리나라 과학자들이 만든 것. 어디든지 다 간다.”

당시 어린이가 꿈꿨던 미래보다 21년이 더 흘렀지만, 우리나라 과학자들이 만든 로켓으로 떠나는 달나라 여행은 ‘먼 미래’다. 다만 조금 더 가까워졌다. 국산 기술로 만든 최초의 발사체인 로켓 ‘누리호’는 오는 10월 시험 발사될 예정이다. 발사에 성공하면 한국은 미국, 러시아, 유럽, 중국, 일본, 인도 등에 이어 세계 7번째로 독자 우주발사체 기술을 확보한 나라가 된다. 미국에선 이미 우주 관광이 시작됐다.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가 지난해 5월 민간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유인 우주선을 쏘아올리더니, 본격적으로 우주 관광 상품을 팔기 시작했다. 300~400㎞ 상공에 떠 있는 국제우주정거장(ISS)으로 10일 동안 떠나는 우주 관광 티켓이 5500만달러(약 613억원)에 달한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가 설립한 ‘블루오리진’과 버진그룹의 리처드 브랜슨이 만든 ‘버진 갤럭틱’도 우주 관광을 준비하고 있다.

당시 유네스코 공모전에 출품된 그림들은 대체로 대동소이했다. 프로펠러를 등에 메고 하늘을 날거나, 자동차가 하늘을 나는 식이다. 어린이들은 자신이 살게 될 미래의 과학기술을 동경하며 그림을 그린 것 같다. 그런데 키프로스의 11세 어린이가 그린 그림은 좀 달랐다. 아이는 자신의 결혼식을 상상하며 그렸다. 교회당 앞에 모인 많은 사람이 부부를 축하하며 축배를 들었다. 그 앞에선 전통 의복을 입은 것으로 보이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춤을 추고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다. 그 그림을 보고 있으니, 과학이 발전한 미래에도 우리의 일상과 행복 그리고 불행마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중해의 섬나라 키프로스는 그리스계 주민과 터키계 주민들의 갈등이 있던 곳으로, 1974년 터키 군대가 키프로스섬 북부를 침공하면서 수천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당시 그런 상황이 아이에게도 영향을 준 건 아닐까. 그 아이도 이제 중년이 됐다. 그는 어린시절 꿈꿨던 대로 결혼식을 치렀을까. 혹시 어린 자녀가 있지는 않을까. 그 아이는 어떤 2050년을 그리고 있을까.

이재덕 뉴콘텐츠팀 기자 du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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