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사골 같은 깊은 매력의 오페라" 이회수·김태웅 연출가

2021. 4. 21.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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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시작되자 테너 김지민이 무대로 걸어나와 자신을 소개한다.

'서푼짜리 오페라'의 이회수 연출가는 "그동안 오페라는 고전의 당위성을 가지고 높은 음악성을 가진 작품으로 존재해왔다면, 소극장 오페라의 작품들은 대중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선 입문작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춘향탈옥'의 김태웅 연출가는 "재밌겠다 싶어 만들어 놓고도 오페라의 기준에서 '너무 나갔나' 싶어 성악가들의 반응을 살피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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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찬 성악가·방대한 대사에 안무까지..
'서푼짜리 오페라'·'춘향탈옥'의 파격적인 실험과 도전
지루한 오페라 편견 깨고 "재밌는 오페라 만들기"
"지금은 오페라의 전성기를 만들어가는 때"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1. 배경은 2021년의 런던. 공연이 시작되자 테너 김지민이 무대로 걸어나와 자신을 소개한다. “안녕하세요. 전 피첨이에요.” 그 뒤로 또 다른 배우, 아니 성악가의 등장. 메조 소프라노 신민정은 자신을 ‘피첨의 아내’라고 소개한다. 공연 시작 13분이 지나서야 첫 곡의 등장. 음악이 시작되면 성악가들은 바빠진다. 뮤지컬 배우처럼 무수히 많은 대사를 연기하고, 노래를 하고, 안무까지 더한다. “내 딸이 집을 나갔다”며 심각한 대사를 주고받는 피첨 부부는 난데없이 탱고를 춘다. ‘서푼짜리 오페라’다.

#2. 춘향을 너무 사랑해 식음을 전폐한 변사또가 춘향을 옥에 가둔다. 날마다 춘향을 위해 시 한 편을 써서 바치지만, 춘향은 탈옥을 감행. 춘향과 몽룡의 사랑은 재기발랄하고, 변사또는 졸지에 스토킹남이 됐다. 익히 알려진 고전을 익살스럽게 비튼 ‘춘향탈옥’. 원전과는 달리 춘향은 “자신의 사랑은 스스로 쟁취하는 진취적인 여성상”이 됐다. 방자와 향단도 저마다의 사랑을 한다. 두 사람은 사랑스러운 안무로 ‘촌스러우면 어떠냐’를 이중창으로 선보인다. 낯설었던 오페라가 귀에 착 달라붙는 음악으로 돌아왔다.

마이크를 찬 성악가들, 줄줄이 이어지는 대사, 역동적인 안무와 다양한 장르의 음악까지…. 오페라의 ‘편견’은 완전히 깨졌다. 어렵고 지루했던 장르라는 선입견이 사라졌다. 성악가들의 어색한 연기도 옛말. 성악 발성 탓에 알아들을 수 없는 가사가 주는 불편함도 없었다. “그게 포인트였어요. 오페라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봤을 때 오페라는 불친절한 장르거든요. 익숙한 멜로디로 친근하게 다가서고, 오페라에 흥미를 가질 수 있는 호기심을 주는 작품을 하고 싶었어요.”(‘춘향탈옥’ 김태웅 연출)

어렵고 지루한 장르로 여겨진 오페라의 편견을 깬 새로운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의 마지막 작품으로 무대에 오르는 ‘춘향탈옥’의 김태웅 연출가는 “오페라에 흥미를 가질 수 있는 호기심을 주는 작품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예술의전당 제공]

오는 25일까지 열리는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의 선정작인 ‘서푼짜리 오페라’와 ‘춘향탈옥’(4월 24일~5월 16일까지·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은 두 연출가의 실험과 도전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최근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두 사람은 “재밌는 오페라를 만들고 싶었다”고 입을 모았다.

‘오페라 고수’들의 입장에선 “이게 오페라야?”라는 질문을 던질 만큼 무대는 파격적이다. ‘서푼짜리 오페라’의 이회수 연출가는 “그동안 오페라는 고전의 당위성을 가지고 높은 음악성을 가진 작품으로 존재해왔다면, 소극장 오페라의 작품들은 대중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선 입문작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준비 과정은 쉽지 않았다. 기존의 오페라와 달리 노래와 함께 연기의 비중도 높아 성악가들의 어려움이 컸다. ‘춘향탈옥’의 김태웅 연출가는 “재밌겠다 싶어 만들어 놓고도 오페라의 기준에서 ‘너무 나갔나’ 싶어 성악가들의 반응을 살피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오페라의 출연자들을 배우가 아닌 오페라 가수라 하는 것은 음악으로 진검승부를 보기 때문이에요.”(이회수) “성악가는 연기자가 아니기에 연기가 익숙하지 않은데 욕심을 많이 냈어요. 연기까지 잘하면 좋겠더라고요. 방대한 양의 대사에 안무까지 요구하다 보니 (성악가들이) 어려운 점들이 많았어요.”(김태웅) “배우가 아닌데도 성악가들은 최선을 다해 배우인양 연기를 해줬어요.”(이회수)

쉴 새 없이 대사를 쏟은 뒤 곧바로 노래를 이어 부르고, 춤까지 춘다. 이 연출가는 “성악가에겐 연기의 발성과 노래의 발성은 전혀 다르기 때문에 대사에서 노래로 자연스럽게 전환하는 과정에 공을 많이 들였다”고 했다. 성악가들의 노고가 적지 않았다. 급기야 ‘서푼짜리 오페라’에선 주옥같은 대사가 쏟아졌다. 주인공 메키 메서 역을 맡은 테너 조철희의 한 마디. “힘들어 못해먹겠네. 개런티는 쥐꼬리만큼 주면서 연기에 노래에 안무까지. 내가 이회수 연출이랑 작품 하면 사람이 아니다. 어? 저기 이회수 연출 아니야?” 관객들이 일제히 뒤를 돌아본다. 작품과 현실을 오가는 절묘한 줄다리기에 객석에선 웃음이 터졌다. “일부러 넣은 대사 한 줄”은 ‘서푼짜리 오페라’의 도전을 관객에게 가장 쉽게 설명한 한 장면이 됐다.

이회수 연출가는 방대한 대사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녹이는 파격적인 시도의 ‘서푼짜리 오페라’로 관객과 만나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 연출가는 “오페라는 인스턴트처럼 강렬하진 않아도, 순하면서 중독되는 맛이 있다”며 새로운 시도의 작품들을 통해 관객도 “오페라의 매력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예술의전당 제공]

두 연출가의 실험엔 이유가 있다. 오페라의 진입장벽을 낮추고, 오페라의 매력을 알리기 위한 시도였다. 김 연출가는 “성악이 가장 대중적으로 표현된 ‘팬텀싱어’라는 프로그램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을 보면, 그간 성악과 오페라를 접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매력을 몰랐던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건과 토대가 만들어진다면 충분히 오페라의 진가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뮤지컬과 오페라의 매력은 달라요. 라면이 맛있는 이유와 사골국물이 맛있는 이유가 다른 것처럼요. 라면도 사골국도 먹어야 하듯이 중독의 차이가 있어요. 오페라는 인스턴트처럼 강렬하진 않아도, 순하면서 중독되는 맛이 있어요. 한 번 보고 좋을 순 없지만, 오페라에도 뮤지컬처럼 피를 끓게 하는 요소들이 있어요. 다만 시간이 걸릴 뿐이죠.” (이회수)

“그동안 오페라는 어려운 장르였잖아요. 더 높은 작품성을 가진 오페라로 나아가는 첫 단계에 우리 같은 작품이 있다면 진입하기 쉬울 거라 생각한 거예요. 연습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성악가의 아리아를 넋 놓고 듣게 될 때가 있어요. 가끔 내가 무슨 복이 있어 아침저녁으로 이런 음악을 듣나 싶어요. 제가 느낀 것만큼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달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김태웅)

소극장을 무대로 자유로운 창작의 날개를 편 오페라들은 ‘변화의 시기’를 맞은 한국 오페라의 모습을 보여준다. 엄격한 기준이 정해둔 ‘오페라의 정의’를 내려놓고, 보다 자유로운 시도가 곳곳에서 일고 있다.

김 연출가는 “지금은 대한민국 오페라의 전성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소프라노가 있고”(김태웅), “한국의 원톱 성악가들이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며 “좋은 지휘자와 연출가가 끊임없이 나오는 환경”(이회수)이 마련되고 있다. “전성기를 향해 가는 길” 위에서 우리 오페라는 새 역사를 적어가고 있다.

“이제는 슬슬 우리 이야기를 할 때도 되지 않았나 싶어요. 1970~80년대의 이야기, 우리 사회의 이야기요. 서양사람들의 말, 복식, 노래에서 주는 이질감이 오페라가 주는 부담감을 높였다면 그 간극을 좁히는 과정에 우리 이야기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거기에서부터 시작하면 (관객들도) 더 많은 오페라로 나아가는 다음 단계로 쉽게 넘어갈 수 있을 거예요.” (김태웅)

“사실 오페라의 대중화는 쉽지 않아요. 지금은 드라마도 짤로 보고, 더 자극적인 것을 원하는 시대이니까요. 클래식이 점점 멀어지는 것도 어쩌면 당연할 수 있어요. 그렇기에 새로운 시도를 하는 작품들이 꾸준히 나와 내실을 기해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같은 시도가 이어진다면 유럽을 능가하는 작품이 나오고, 이를 통해 입문의 시간이 쌓이면 정서적 편안함을 주는 오페라의 매력이 전달되리라 생각해요.”(이회수)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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