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돌아갈래, 백신 맞으러 내고향 미국으로”

뉴욕/정시행 특파원 2021. 4. 21. 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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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 미국인 900만명 접종귀국 행렬
미 펜실베이니아주 랜스데일의 한 코로나 백신 접종소 앞에서 지난 18일 사람들이 접종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미국은 현재 미 성인의 절반이 백신을 1차례 이상 맞았으며, 4명 중 1명은 2차 접종까지 완료한 것으로 집계됐다. /로이터 연합

미국 내 코로나 백신 보급이 대폭 확대하면서 해외에 거주하는 미국인들이 백신 접종을 위해 일시 또는 영구 귀국하는 경우가 급증하고 있다. 많은 국가에서 백신 접종이 지체되거나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가 만든 백신의 품질이 문제가 되자 미국으로의 ‘백신 투어’ 행렬이 늘고 있는데, 그 최대 수요층은 바로 해외에 사는 미국 국민이란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CNN 등은 19일(현지 시각) 해외 거주 미 국민 900만명 중 상당수가 백신 접종을 위해 이미 고국을 다녀갔거나 귀국을 계획 중이라고 보도했다. 많은 미국인이 ‘하루라도 빨리 백신을 맞을 수만 있다면 장거리 여행에 따른 비용 등 여러 위험을 무릅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미국이 최악의 코로나 사태로 한창 들끓을 때 스페인으로 건너간 애리조나주 출신의 60대 은퇴자 부부는 “스페인은 아직도 70세 이상만 백신을 놔준다. 지난 몇 달간 고향의 친지들이 너무 부러웠다”면서 “다음 달 비행기를 세 번 갈아타고 애리조나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에서 일하는 30대 미국 여성도 “접종률이 1% 정도인 일본에서 나 같은 외국인은 언제 맞을지 기약이 전혀 없다”며 “이달 말부터 5주간 ‘백신 휴가’를 내고 고향인 뉴멕시코에 다녀오는 비행기표를 예약했다”고 했다.

백신 보급률이 높은 편인 영국에 거주하는 미국인 중에서도 아직 접종 차례가 오지 않은 20~30대 젊은 층이나, 영국산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거부감이 높은 이들이 미국에서 화이자·모더나 백신을 맞기 위해 대서양을 3주 간격(백신 2차 접종 간격)으로 두 차례 건너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독일에서 석사 과정을 밟으며 일하던 30대 미국 남성이 베를린 공항에서 고향인 캘리포니아로 일시 귀국하는 모습. /CNN

국가·도시별로 조직된 미 재외국민의 페이스북 모임방에는 요즘 ‘백신 귀국’ 관련 정보 교환이 한창이라고 한다. 최대 화제는 체류 중인 국가의 백신 보급 상황을 좀 더 기다려야 할지, 미국에서 백신을 맞고 체류국으로 돌아올 경우 자가 격리를 얼마나 해야 하는지 등이다. 미국 일부 주의 보건 당국이나 CVS 등 대형 약국의 백신 예약 온라인 사이트는 외국에서 접속되지 않는 경우가 있어, 예약을 미국 내 친지에게 부탁해야 하는지 등을 묻고 있다고 한다.

이런 모임방에선 막상 누군가 “미국서 백신 맞고 왔다”고 하면 “남들은 못 가는데 혼자 가는 건 새치기 아니냐” “아직 봉쇄 기간인데 왜 국경을 들락거리느냐”는 등의 언짢은 반응도 나온다고 한다.

미국 뉴저지주에서 지난 19일 17세 여성이 화이자 백신을 맞고 있다. 미국은 19일부터 16세 이상 모든 성인에게 접종 자격을 부여, 집단 면역의 길을 독려하고 있다. /AP 연합

이 때문에 ‘백신 질투'라는 말도 유행하고 있다. 미국 내에서는 올 초부터 이 용어가 화제가 됐다. 지난 2~3월 미국에서도 백신 보급이 지체되면서 고령자순으로 접종을 했는데 70대 남편은 백신을 맞고 친구들과 놀러 다니는데 60대인 아내는 백신을 못 맞아 집 안에 갇혀있는 등 ‘백신 질투’가 미국 가정까지 침투했었다.

최근 ‘백신 질투'는 미국 국민이면서도 모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월간 애틀랜틱에 따르면 체류지를 쉽게 이탈해선 안 되는 미 언론사 특파원과 기업 주재원들, 항공편이 마땅치 않은 나라에 사는 미 국민들 사이에서 특히 박탈감이 크다는 것이다. 미국은 해외 체류자에게도 납세 의무를 부과하고 투표권도 주는데, 생명에 직결된 코로나 백신 접근권은 왜 보장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들은 미국에 거주하지 않던 외국 부유층이 미국으로 백신 관광 가는 것을 보며 분노한다고 한다.

워싱턴 DC에 소재한 ‘재외미국인연합’은 최근 “해외 주둔 미군·외교관뿐 아니라 민간인에게도 백신을 이송해 각국 대사관에서 접종하게 해달라”고 백악관과 의회에 요구했다. 그러나 당국은 “미국 내에서 충분히 접종이 완료된 뒤 남는 백신을 순차적으로 각국에 보급할 계획이니 그때 맞으라”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뉴욕타임스는 19일 “쿠바에 있는 미 해군기지 내 관타나모 수용소에 있는 수감자들에게도 모더나 백신을 접종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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