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의 왕을 흥분시키는 '신비의 묘약'의 정체는?

정지섭 기자 2021. 4. 21.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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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동물원] 코끼리똥만 보면 달려들어 파고드는 사자
동물원, 정기적으로 신선한 코끼리똥 공급해 스트레스 풀어줘
알고보면 냄새도 덜 나는 '풀덩어리'
코끼리의 소화효소가 사자를 흥분시키는 '묘약'의 성분

지난 2월 경기도 과천 서울대공원 동물원 사자우리. 이른 아침 우리 곳곳에 전날 없던 덩어리들이 쌓여있습니다. 짙은 갈색의 거대한 덩어리들은 가까이서 들여다보니 온통 짚풀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이 덩어리들은 전날 코끼리들이 생산한 신선한 똥인데, 사육사들이 직접 옮겨온 것입니다. 기지개를 켜며 야외 방사장으로 나온 사자들이 냄새를 맡고 똥더미를 향해 몰려갑니다. 위풍당당한 갈기를 흩날리는 숫사자, 날렵한 몸매의 암사자들은 너나할것없이 강아지들이 눈밭에서 뒹굴 듯 똥더미를 파고듭니다.

온몸에 코끼리똥을 분칠하듯 바르며 행복해하는 녀석, 똥속에 얼굴을 파묻고 그르릉 소리를 내는 녀석, 분홍색 혓바닥을 내밀고 아이스크림 핥듯 할짝이는 녀석…. 윗입술을 까뒤집고 이빨을 내미는 녀석들의 표정은 그야말로 쾌락과 황홀경입니다. 1년에 서너 차례 서울대공원 사자우리에서 펼쳐지는 진풍경입니다.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한 무리의 숫사자들이 코끼리똥에 얼굴을 부비며 즐거워하고 있다. 가운데 사자의 눈빛이 황홀경에 빠져있다. /Alamy

사자들이 코끼리똥에 열광한다는 것은 전세계 주요 동물원사이에서 공공연하게 공유되는 사실입니다. 정확히 말해서 코끼리똥에서 풍기는 냄새에 푹 빠진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사자가 아닌 다른 아프리카 맹수들도 코끼리똥에 사족을 못쓸까요? 혹은 다른 초식동물의 배설물에도 사자는 열광할까요? 둘 다 아니라는 사실이 일선 동물원의 실험으로 증명됐습니다.

과천 서울대공원에서는 하이에나나 재규어 등 맹수들에게도 코끼리 배설물을 가져다줘봤지만 반응은 뜨뜻미지근했습니다. 또 사자들에게 코끼리똥이 아닌 코뿔소, 기린의 똥을 가져다봤더니 정말 똥 보듯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코끼리똥에는 사자들을 극도로 흥분시키는 특별한 무엇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서울대공원 동물원 제3아프리카관 오현택 사육사는 “초식동물에게 먹이는 건초는 ‘알팔파’와 ‘티모시’ 등 종류가 동일하다”며 “코끼리가 이를 먹고 소화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특별한 효소가 사자를 유달리 자극시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숫사자 한마리가 코끼리똥을 먹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코끼리가 건초를 소화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특수한 효소가 사자를 흥분시키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Alamy

그런데 코끼리똥이라고 해서 냄새가 지독하다는 편견을 가져선 안됩니다. 일선 동물원 관계자들이 표현하는 코끼리 똥냄새는 ‘오래되고 좀 묵은 풀 냄새’라고 합니다. 동물원에 갔을 때 코를 찌르는 강렬한 냄새는 대부분 고기를 먹는 육식동물의 배설물에서 풍기는 냄새입니다.

위풍당당한 백수의 왕 사자들이 코끼리똥 범벅이 된 꼴을 상상하려니 웃음도 나오지만, 그런 광경은 실제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코끼리똥은 수분이 촉촉하고, 그 안에는 소화되지 않고 나온 건초더미가 그대로 있기 때문에 조금 시간이 지나면 굳어서 바로 후두둑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코끼리똥은 사자들의 행동을 풍부하게 해주고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순기능으로 재활용되고 있습니다. ‘흥분’이라고 해서 정말 향정신성 물질이 있다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새끼 사자들이 코끼리똥에서 편안하게 쉬고 있다. 사자들은 암수노소할 것 없이 코끼리똥에 탐닉하는 모습을 보인다. /Alamy

일각에서는 코끼리똥의 성분에는 사자들을 성적으로 흥분시키는 최음효과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다만 우리나라 주요 동물원에서 사육하는 사자들은 너무나 왕성한 번식력 때문에 일찌감치 중성화 수술등을 통해 가족 계획이 돼있는 경우가 많아 실제로 그 효과가 있는지는 확인이 되지 않았다고 하네요.

일각에선 혹시나 코끼리똥에 있을지도 모를 미생물이 사자에게 병을 옮기는게 아니냐는 걱정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동물원에서는 코끼리들을 상대로 꼼꼼히 병균검사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냥 똥이 아니라 건강하고 신선한 똥이 공급되는 것이죠.

야생에서 코끼리와 사자가 맞닥뜨리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쓰러뜨릴 수 없는 강적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거든요. 무리에서 떨어진 새끼나 병든 코끼리를 사자 여러마리가 덮쳐 간신히 쓰러뜨리는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런 관계와는 별개로 코끼리가 풀을 섭취해 생산해낸 배설물이 사자에게 활력(?)을 주는 묘한 공생의 관계가 성립된 것입니다. 이 또한 라이온킹에서 숱하게 회자되는 진리인 ‘Circle of Life(생명의 순환)’의 하나인 셈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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