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명칭만 붙일 게 아니라 '진짜 문제' 해결에 역량을" ['변화의 중심' MZ세대]

김승환 2021. 4. 20.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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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세대론 뛰어넘어야
청년세대 내부 자산불평등 '심각' 79%
고용불평등 72%·주거불평등 71% 응답
10명 중 8명 "향후 10년간 더욱 커질 것"
남성보다 여성, 20대보다 30대 더 강해
과거 88만원세대·삼포세대·N포세대
사회경제적 어려움 처한 상황에 기반
최근 연구는 "세대 불평등 실재 않아"
전문가 "MZ세대, 사회 도전과제로"
“20대의 특징을 하나로 단정하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연령대에 따라 20대가 하나의 집단으로 묶일 순 있겠지만 사람마다 다양한 입장을 가지고 있고 여러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단순히 나이가 같다는 이유만으로 하나로 묶어서 규정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20세 대학생 김서하씨)

”성급한 일반화는 조심해야 하는 것 같아요. 소위 밀레니얼 세대는 디지털에 친숙하고, 개인의 이익과 행복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평가가 있지만, 그렇지 않은 개인도 분명 존재하니깐요. 매번 세대별 잣대로 개인을 구분 짓고 평가하는 건 주의해야 한다고 봐요.”(26세 취업준비생 박모씨)

이는 ‘MZ세대’라는 또 하나의 세대론을 경계하는 청년들의 목소리다. 최근 정치권과 시장이 일제히 공정, 젠더, 합리성, 스몰럭셔리(비교적 작은 제품으로 사치를 부리는 것), 공유문화 등 특성을 뭉뚱그려 MZ세대를 호명하고 있는 가운데 거창한 세대론 속에서 정작 청년 개개인이 소외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가 단순히 MZ세대라는 이름으로 청년을 선동하거나 갈등을 조장하는 데 치중할 것이 아니라 세대론 너머 ‘진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역량을 모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청년세대는 ‘하나’가 아니다

실제 많은 청년이 본인 세대를 단일한 집단으로 여기지 않고 있다. 특히 사회경제적으로 심각한 격차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서울 청년 10명 중 7명 이상이 자산·고용·주거 부문에서 청년세대 내부 불평등이 심각하다고 본다는 조사결과가 최근 나오기도 했다.

서울연구원이 지난해 7월 서울에 거주하는 만 20∼39세 청년 1000명 대상으로 진행한 ‘서울 청년 불평등 인식 조사’에 따르면 청년세대 내부 자산 불평등과 관련해 ‘심각하다’(매우 심각하다+약간 심각하다)고 답한 비율은 78.8%나 됐다. 고용 불평등의 경우 71.8%, 주거는 71.0%였다. 소득 또한 69.1%로 70%에 근접한 모습이었다.

이들은 대개 이런 세대 내 불평등이 지난 10년간 더욱 심각해졌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0년간 청년세대 내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더 심화했다고 인식하는 비율이 75.2%였다. 이런 생각은 남성(69.7%)보다 여성(80.5%)이, 20대(73.1%)보다 30대(77.2%)가 더 많이 하는 모습이었다. 

앞으로 10년간도 청년세대 내 불평등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80% 가까운 77.1%가 향후 10년간 청년세대 내부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더 심화할 것이라고 답했다. 마찬가지로 남성(71.3%)보다 여성(82.7%)이, 20대(74.5%)보다 30대(79.6%)가 더 많이 이같이 인식하고 있었다.

◆MZ세대라는 ‘과제’

MZ세대는 청년세대의 ‘첫 이름’이 아니다. 88만원세대(저임금 비정규직으로 일하게 되는 세대), 삼포세대(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하는 세대), N포세대(취업이나 결혼 등 여러 가지를 포기하는 세대), G세대(1988년 서울올림픽 전후로 태어나 국제 감각을 갖추고 자라난 세대) 등이 MZ세대 이전에 있었다. 

이들 중 88만원세대, 삼포세대, N포세대는 청년세대가 기성세대와 비교할 때 이전보다 더 심각한 사회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인식에 기반해 만들어진 이름이다. 그러나 최근 학계에서는 이런 식으로 심화하는 ‘세대 간 불평등’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11월 학술저널 ‘한국사회학’에 게재된 논문 ‘세대 불평등은 증가하였는가? 세대 내, 세대 간 불평등 변화 요인 분석’(김창환·김태호)에 따르면 1999∼2019년 가계동향조사를 개인 단위 노동시장 소득 자료로 전환해 소득 불평등에 영향을 끼치는 세대 간 소득 격차 효과를 분석한 결과 세대 간 불평등이 증가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 연구진은 “25∼59세 핵심노동인구를 분석 대상으로 제한하면 노동시장에서 세대 간 불평등은 증가하지 않는다”며 “전체노동인구를 대상으로 분석할 때 나타나는 세대 간 불평등의 증가는 연령의 분포효과 때문이지 연령층 간 소득격차가 확대됐기 때문이 아니다”고 분석했다. 언뜻 증가한 듯 보이는 세대 간 불평등은 고령인구 증가에 따른 착시라는 설명이다. 

현실에 발 딛지 못한 담론은 그저 소비될 뿐 사회 변화의 동력이 될 수 없다. 청년세대 담론을 분석한 논문 ‘한국 언론과 세대론 전쟁’(방희경·유수미)의 연구진은 “88만원 세대론과 삼포세대론은 ‘잉여’, ‘루저’, ‘찌질이’ 등 용어들과 엮이면서 절망의 시대를 표현하는 자조 섞인 명칭으로 사용된다”며 “특히 삼포세대론에서 불안과 공포만이 느껴지는 건 국가정책의 방향과 비전을 설정하는 과정에서 구체성과 체계성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MZ세대 담론의 경우 특히 젠더 문제를 중심으로 정치권 이해에 따라 대안 없이 소비되는 경향을 보인다고 평가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는 “20대 남성과 여성이 서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하는데 정치권이 서로 대립하게 하고 있다”며 “일부 정치인이 ‘여성주의에 오류가 있다’는 식으로 단정적인 결론을 내버리니까 싸움만 난다”고 말했다. 신경아 한림대 교수(사회학)는 “20대 남성은 군대 문제 등으로 분노하고, 20대 여성은 스토킹이나 강력 사건으로 위협을 느낀다”며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우리 사회는 특정 성별에게 화살을 돌려 이대남과 이대녀가 싸우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MZ세대를 단순히 청년세대를 부르는 이름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새로운 도전 과제”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성세대가 청년세대의 목소리를,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문제 제기로 인식하고 그 해결책을 마련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

◆“청년에게 사회문제 해결의 기회 줘라”

“청년 세대담론의 가장 큰 문제는 청년들을 단순화된 특징으로 묶어 이름 붙이는 그 단계에서 논의가 끝난다는 점입니다. 근본 해결을 모색해야 세대를 분석하는 의미가 있는 건데 아직도 우리 사회는 청년들에게 수없이 많은 명칭을 붙여 이용할 뿐 진짜 문제는 외면하고 있습니다.”

2019년 책 ‘청년팔이 사회’를 쓴 김선기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연구원은 19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MZ세대’를 비롯해 2030청년들을 부르는 세대화된 명칭이 범람하는 현실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세대담론 그 자체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것이 오히려 청년들이 처한 상황을 객관화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지적이다.

김 연구원은 “실제로 현상이 있어서 명칭이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명칭이나 설명 먼저 듣고 그 편견과 일부 맞는 부분이 보이면 정말 그런가 보다 하고 믿게 되는 경우도 많다. 청년 세대론도 마찬가지”라며 세대담론의 명칭이 청년들에 대한 편견을 고착화하는 부작용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원은 2030세대에 특정한 명칭을 붙이는 것보다 그들의 현재 상황을 야기한 진짜 문제 요인을 찾아 해결하는 데 더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세대담론은 불쌍함, 좌절, 불공정에 대한 분노 등 감정적 차원에 머물러 정작 이성적 해결책을 찾는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를테면 ‘88만원 세대’라는 명칭이 유행하면, 청년 수입이 낮아 불쌍하니까 돈 얼마를 쥐여주는 게 아니라 노동시장의 문제와 한국의 튼튼하지 못한 사회 안전망 등 근본 원인을 찾아 해결하려는 논의로 이어져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김 연구원은 과도하게 많이 생산된 청년 세대담론이 부정적 편견을 재생산해 갈등을 부추기는 측면도 있어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최근에 이대남·이대녀 등의 이름을 붙이고 젠더 갈등이 심각하다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이대남은 다 안티페미니스트고 이대녀는 다 페미니스트’라는 식으로 설명하는 자체가 두 집단의 차이를 과장하고 왜곡해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어떤 문제에 대한 청년들의 반응과 생각에는 여러 층위가 있는데 특정한 세대로 이름 붙여지면 개인별 차이는 무시된다. 어떤 특징을 청년들만의 문제로 치부하는 건 부정적 편견을 강화할 뿐”이라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청년 세대담론이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배경으로 청년이 대상화된 현실을 꼽았다. 그는 “청년이라고 뭉뚱그려지는 사람들이 사회의 주체가 아닌 분석대상이고 사회적 발언권이 약하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분석해 명칭을 붙여도 사회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유행하는 듯하다”며 “물론 다른 연령대에 대한 세대화도 있지만 청년들이 유독 쉽게 한 집단으로 묶이고 대상화되는 건 변론 기회도 없고 발언권이나 제도적 보완을 할 주체적 권한도 없는 상황을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청년 세대담론의 한계와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청년을 사회문제에 더 참여시키고 더 많이 말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청년 정치·청년 참여 같은 얘기를 많이 하지만 정작 이들에게 부동산 정책 등 구조적 문제를 어떻게 할지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이나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불쌍한 세대’라며 이름 붙이기만 반복할 게 아니라 청년들이 객관적으로 사회 구조를 들여다보고 그들의 의견을 더 말할 수 있게 해야 청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승환·박지원·장한서 기자 hw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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