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시선] 방역정치화 논란 키운 '기모란 카드'
전문가 식견, 정파적 이익에 휘둘릴 우려 높아
청와대에 방역기획관이 신설되었다. 질병관리본부를 질병관리청으로 승격한 이후 나온 정부의 두 번째 코로나 대응 조직인 셈이다. 코로나19보다 치사율과 전염률에서 더 센 변종들이 꼬리를 물고 나타나고 감염병 시대로의 진입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나오는 상황에서 방역기획관의 신설은 오히려 늦은 감이 없지 않다. 물론 질병관리청이 있는 상황에서 방역기획관의 신설은 ‘옥상옥’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그러나 코로나에 대한 신속한 대응과 안정적인 정책 추진을 위해서는 최고결정권자의 관여가 중요하다는 점에서 그 필요성이 작지 않다.
청와대의 기모란 방역기획관 임명을 두고 정치권이 뜨겁다. 백신이 급하지 않다는 취지의 과거 발언이 발목을 잡았다. 야당은 대통령의 지명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선진국들의 백신확보 전쟁이 한창일 때 자기 학문 분야를 배신하면서까지 정권을 대변했다고 비판한다. 예방의학자로서 기 기획관의 전문성은 2015년 대한예방의학회 메르스 대책위원장에 이은 코로나19 대책위원장, 그리고 정부의 생활방역위원회 위원의 활동경력으로 입증된다. 지난 2월에 도입된 생활방역과 새로운 거리두기 체계의 초안도 잡았다고 한다. 넘치면 넘쳤지 모자라지는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전문적 식견의 많고 적음이 아니다. 방역기획관으로 차고 넘치는 전문적 식견을 정파에 휘둘리지 않고 얼마나 충실하게 실천할 수 있는가이다. 그런데 그녀의 과거의 행적은 이 충실성을 신뢰할 수 없게 만들었다.
미국과 영국이 “마스크 없는 일상생활”로 돌아가고 있다고 한다. 아워월드인데이터(ourworldindata)에 따르면 4월 16일 기준 미국은 전체 인구의 38.2%가 코로나19 백신 1회 접종을 마쳤고 영국은 미국보다 10%포인트나 높은 48.2%라고 한다. 방역 실패로 연일 코로나 확진자가 수천 명이 넘던 나라들이 빠른 백신접종으로 위기를 넘어가고 있다.
반면 방역에 성공했던 우리나라나 대만, 호주, 뉴질랜드 등은 접종률이 5%를 넘지 못했다. 우리는 전체 인구의 2.95%가 1회 접종을 마쳤다. 그래도 대만, 호주, 뉴질랜드는 콜드 스폿(cold spot) 32개 국가에 포함되어 28일 이상 확진자수가 5명 미만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반해 우리는 확진자수가 연일 600명선을 넘고 있다. 결과적으로 방역도 백신도 위태롭다.
만약 기 기획관이 ‘그때’ 코로나19 대책위원장으로서 정부와 대통령에게 시급하게 백신 확보에 나서야 한다고 강력하게 요청했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적어도 지금보다는 좀 더 나은 상황이지 않았을까 싶다. 아직도 그때의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만약 그때의 판단이 정치적 고려가 없는 전문가적 식견에 충실한 판단이고 발언이었다면 국민이 신뢰할 수 있도록 본인이 직접 진정성 있는 해명을 해주길 바란다. 그렇지 않았다면,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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