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제? 해열제?"..점자 표기 없는 의약품
[앵커]
시각 장애인들에게는 '점자'가 세상을 보는 창구입니다.
하지만 의약품이나 생활필수품조차도 점자 표기가 제대로 안 돼 있어 누군가의 도움 없이 혼자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엄윤주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27년 전 시력을 잃은 이차용 씨.
갈증이 나는 한여름에도 혼자서 편의점이나 마트 가는 건 망설여집니다.
원하는 음료를 찾기 힘들어서입니다.
"탄산으로 나오고, 요 뒤에 건 뭔지를 모르겠네."
지난 2008년부터 음료 업체들이 자율적으로 캔 음료에 점자를 새기기 시작했지만, '음료' 혹은 '탄산'으로만 표시했습니다.
사이다인지 콜라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는 겁니다.
[이차용 / 중증 시각장애인 : 나는 콜라를 좋아하는데 사이다를 먹을 수도 있고, 그리고 다른 거를 먹을 수밖에 없는 단순히 음료로만 되어 있으니까 그런 것들이 선택의 여지가 없는 거죠.]
그나마 점자 표기가 되어 있으면 다행입니다.
대형 마트에서 팔고 있는 맥주들입니다.
이렇게 종류도 여러 가지인데요.
하지만 보시는 것처럼 상단에 점자 표기가 아예 되어 있지 않은 것들도 많습니다.
약국에서도 난감하긴 마찬가지입니다.
두통약과 소화제, 해열제 등등 포장지 대부분 점자 표기가 아예 없습니다.
"이게 무슨 알약 같은데, 알약 같아."
약사들이 약 종류와 복약 방법을 일일이 설명해준다 해도 다른 사람 도움 없이는 먹을 수 없습니다.
[윤여진 / 약사 : 점자 표기된 걸 본 게 거의 기억에 안 남을 정도로…. 주의사항이 뭐가 있고 어떤 걸 조심해야 하는지 아니면 기타 등등의 사안들을 점자로 표기해서 자세히 읽을 수 있도록.]
지난해 6월 식약처가 조사한 전체 의약품 44,751개 가운데 점자가 표기된 제품은 단 94개,
0.2%도 안 되는 수치입니다.
점자로 약 이름은 표시돼 있다 해도 유통기한이나 효능, 주의사항 같은 핵심 정보는 적혀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차용 / 중증 시각장애인 : 이 약을 잘못 선택해서 먹거나 급하면 약을 먹어야 하는데 집에서 그런 경우에는 오남용이나 진짜 약을 잘못 먹어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는 소지가 있죠.]
식약처가 고시한 의약품 관련 규정에서 점자 표기는 필수가 아닌 권장사항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의약품 제조업체들은 적잖은 돈이 들어가는 문제라며 표기 확대에 난색입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관계자 : 정부 정책이 바뀔 때마다 새롭게 세팅이 되어서 거기에 따라서 산업계에서 대응할 때마다 비용이 그때그때 새롭게 산정이 돼서.]
식료품 같은 생활필수품은 권고마저도 없습니다.
[김철환 / 장애벽허무는사람들 활동가 : 해외에서도 의약품 관련된 점자 표기는 의무화되고 있어서 우리나라도 그렇게 가야 한다고 보고 있거든요. 이런 문제가 오래전부터 나왔어요.]
장애인의 날이 제정된 건 1981년, 올해로 41번째를 맞았습니다.
그러나 시각장애인들에게 제품을 선택할 권리가 온전히 주어지지 않은 현실은 여전히 과거에 멈춰 있습니다.
YTN 엄윤주[eomyj1012@ytn.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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