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슈퍼리그' 출범 땐..더 이상 '축구 동화'는 없다

황민국 기자 2021. 4. 20.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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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생태계 파괴"..대혼란 빠진 '꿈의 무대' 유럽 축구

[경향신문]

토트넘 등 빅클럽 20개 팀만 참가
미 JP모건이 6조7천억 자금 투입
참가만 해도 2000억원 상금 보장
성적 따른 승강 없이 폐쇄적 운영
FIFA·UEFA “A매치 출전 금지”
선수·팬들·각국 정부까지 “반대”
일부 팀들도 ‘불참 선언’ 고민 중

축구 선수들에게 ‘꿈의 무대’라는 유럽 축구가 흔들리고 있다. 일부 빅클럽들이 뭉친 유러피언 슈퍼리그(ESL)가 출범을 선언하면서 생태계 전체가 대혼란에 빠져들었다.

슈퍼리그는 20일 현재 12개팀의 참가가 확정됐다. 영국에선 손흥민의 소속팀 토트넘을 비롯해 리버풀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맨체스터 시티, 첼시, 아스널까지 가장 많은 6개팀이 이름을 올렸다. 스페인에선 레알 마드리드·바르셀로나·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이탈리아에서는 유벤투스·AC밀란·인터밀란이 참가하기로 했다. 여기에 세 팀을 더해 15개팀으로 창립한 뒤 해마다 다섯 팀을 선정해 총 20개팀으로 시즌을 치른다는 게 슈퍼리그 측이 공개한 밑그림이다.

슈퍼리그의 출범은 기존 유럽 축구 시스템을 파괴한다는 측면에서 우려가 크다. 승강제가 존재하는 유럽 축구는 동유럽의 작은 클럽도 언젠가 최고의 자리에 도전할 수 있는 ‘열린 체제’를 바탕으로 성장해왔다. 거꾸로 말한다면 빅클럽도 바닥으로 추락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반면 슈퍼리그는 한 번 들어오면 수익을 보장하는 북미식 폐쇄적인 체제를 꾀하면서 자신들만의 낙원을 원하고 있다.

호날두와 메시

공교롭게도 슈퍼리그 출범에 필요한 자본을 조달하는 주체도 미국계 은행인 JP모건이다. JP모건은 슈퍼리그를 위해 60억달러(약 6조7000억원)를 준비할 계획인데, 슈퍼리그에 참가만 해도 해마다 2000억원 이상의 상금을 보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로 재정 압박을 경험한 빅클럽들엔 거부하기 어려운 매력적인 조건이다.

자연히 슈퍼리그에 참가하는 팀들을 제외하면 반대 목소리가 클 수밖에 없다. 먼저 국제축구연맹(FIFA)과 유럽축구연맹(UEFA)이 슈퍼리그에 참가하는 팀들의 소속 선수들의 A매치 출전 금지와 함께 주관 대회 실격 처리까지 언급하며 각을 세우고 있다. UEFA는 챔피언스리그 개편안을 통해 보상을 늘리겠다는 당근과 함께 슈퍼리그 출범을 막고 있다. FIFA와의 갈등 속에 슈퍼리그가 출범했을 때 대표팀 출전이 막히는 빅클럽 소속 선수들도 난감하긴 마찬가지다.

선수와 팬들이 직접 이번 사태에 대응하는 것도 눈길을 끈다. 리즈 선수들은 20일 리버풀과의 대결에 앞서 “축구는 팬들을 위한 것” “정당하게 얻어내라”는 문구가 적힌 셔츠를 입은 채 몸을 풀었다. 리즈 팬들은 아예 리버풀 버스를 향해 뛰어들었다. 이런 상황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리버풀의 제임스 밀너는 “나도 슈퍼리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슈퍼리그가 성사되지 않기를 바란다”며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정치권이 슈퍼리그 출범을 적극 반대하는 것도 부담스럽다. 올리버 다우든 영국 문화부 장관은 “슈퍼리그 출범을 막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도 “슈퍼리그는 연대와 스포츠의 가치를 위협한다”며 비판 대열에 합류했다.

이런 분위기 탓인지 슈퍼리그에 추가로 합류할 것으로 예상됐던 팀들은 공식적으로 불참을 선언하거나 고민에 빠졌다. 칼 하인츠 루메니게 바이에른 뮌헨(독일) 회장이 도르트문트에 이어 “우리는 슈퍼리그에 참가하지 않는다”고 밝힌 것이 대표적이다. 프랑스의 파리 생제르맹도 슈퍼리그 참가를 제안받았지만 불참 쪽으로 기울고 있다.

슈퍼리그가 대세로 굳어진다면 축구 팬들이 환호했던 축구 동화는 사라진다. 슈퍼리그의 초대 수장을 맡은 플로렌티노 페레스 레알 마드리드 회장도 “빅클럽들이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많은 돈을 선수 영입에 투자해 앞으로 20년 동안 축구계를 지킬 것”이라고 이상향을 밝혔지만 반대 여론은 부담스럽다. 유럽 축구 내 반대 여론에도 슈퍼리그 출범 강행 의사를 분명히 하는 빅클럽과의 갈등은 현재로서는 쉽게 봉합되지 않을 분위기다.

황민국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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