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적 울리고 곳곳서 추월..택시 시속 50km로 달려봤더니 [르포]

김승한 2021. 4. 20. 21:5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운전자들 의견 엇갈려
일부선 "체증 늘 것" 염려도
아이 가진 부모들은 환영
전국 도로의 제한 속도를 낮추는 '안전속도 5030'이 시행 3일째인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종각사거리에 안전속도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안전속도 5030 안내문. [사진 = 김승한 기자]
19일 오전 11시, 서울 탑골공원 인근 종로2가 사거리. 광화문으로 이어지는 왕복 6차선 도로를 달리는 차량은 대체적으로 서행 중이었다. 지난 17일부터 시행된 속도 '50km 제한'을 의식한 듯 했다.

전국 일반도로를 달리는 차량 속도를 시속 50km로 제한하는 이른바 '5030 정책'이 시행된 지 3일째인 이날 직접 택시를 탔다. 기사에게 경복궁역을 지나 독립문까지 정확히 50km를 유지해 가달라고 부탁했다. 이왕이면 큰 도로로 가달라는 말도 덧붙였다.

◆ 대부분 50km로 운행...일부 차량 곳곳서 과속

이른 시간이라 이날 대부분 거리에는 차량이 많지 않고 한적했다. 하지만 차량이 적다는 것은 그 만큼 빠르게 달릴 수도 있다는 의미. 대부분의 차량은 우리와 비슷한 속도에 맞춰 움직였지만, 택시를 타기 전 체감할 수 없었던 과속 차량이 곳곳에 보였다.

일부 차량은 답답한 듯 기자가 탄 차량을 추월하기도 했다. 대략 60~70km 속도로 달리는 듯 보였다. 광화문 삼거리에서 독립문으로 향하는 사직로 상황은 더 심각했다. 50km를 유지해 가다보니 뒷편 차량이 경적을 울리기도 했다.

기자를 태운 택시기사는 "저 차(경적을 울린 차량)는 50km 제한이 시행된 것도 모르는 사람일 것"이라며 "사실 주변에 모르는 사람도 많다. 우리는 회사에서 교육을 해서 잘 인지하고 있지만 일반 시민들은 모르는 사람도 태반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솔직히 말하는 거지만 50km는 우리(택시기사)들에게 아주 비효율적인 정책이다. 너무 느리게 운전을 하다보니 차로를 바꾸는 것조차 쉽지 않을 정도"라고 토로했다.

종로3가 인근. [사진 = 김승한 기자]
실제 이날 만난 택시기사 대부분은 해당 정책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종로3가 대로변에 정차해 있는 택시기사 김모씨는 "속도를 너무 낮춰 오히려 교통체증을 유발했다. 특히 출근 시간의 경우 안 그래도 많이 막히는데 오늘 지옥이더라"고 말했다.

15년째 택시기사를 하고 있는 양모씨는 "택시기사를 하다보면 항상 시간에 쫓긴다. 굉장히 급하다. 주말에 콜 받아서 달려가는데, 속도를 지키다 보니 손님들은 늦게 도착한다고 불만을 늘어놓았다. 안 기다리고 취소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생각없이 운전하다 50km 속도를 넘어 급정거 하는 차도 많더라. 이로 인한 사고도 빈번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 "세금 걷는 의도" vs "사고 줄어들 것"

일반 시민들도 비효율적이라며 불만을 쏟아냈다. 직장인 김모씨는 "어린이 보호구역 등에 적용되는 30km 제한은 이해가 가지만, 50㎞ 제한은 사실 이해가 안 된다"며 "선진국 사례만 빗대어 무조건 적용하는 것이 아닌 어떤 사고를 예방한다는 것인지, 왜 속도를 줄여야 하는지 등 국민들이 납득이 가도록 세부적인 설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속도로처럼 달리다 잠깐 멈추고 하는 식이 되지 않을까. 버린 세금 걷으려는 의도로 밖에 안 보인다"고 말했다.

반면 제한 속도를 낮춘 것에 환영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서울 구로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염모씨는 "차량 속도를 낮추는 정책에 무조건 환영한다"며 "초등학생 자녀가 있는데 차들이 횡단보도에서도 멈추지 않고 달리는 경우가 많아 항상 불안했다"고 말했다.

종각역 사거리. [사진 = 김승한 기자]
경찰도 제한 속도를 낮춰도 차량 흐름엔 문제가 없다며 시민들의 적응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날 광화문 사거리에서 만난 한 경찰은 "주행속도 제한에 따른 교통정체 현상은 크게 나타나지 않았다"며 "시민들 입장에선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교통사고는 크게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정부 역시 이번 정책으로 사망자가 크게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앞서 시범 운영한 서울과 부산의 경우 서울 종로구에서는 보행자 교통사고 중상자가 30% 감소했고, 부산 영도구에서는 보행자 교통사고 사망자가 37.5% 줄었다.

한편 도로 속도 하향 정책은 유엔 권고사항으로 OECD 31개 국가에서 이미 시행 중이다. 경찰 등에 따르면 네덜란드·스위스·호주 등에서 속도 하향 정책으로 교통사고 사망자가 10~25% 감소했다.

[김승한 매경닷컴 기자 winone@mk.co.kr]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