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 못 받은 '아프간 구원자'..미군 20년 '선한 전쟁'의 허상
[경향신문]
2001년 9월11일, 알카에다에 의해 납치된 비행기 두 대가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으로 돌진했다. 110층짜리 건물이 무너지면서 세계 경제의 심장부는 하루아침에 공포의 도가니로 변했고, 3000여명이 실종되거나 사망했다.
당시 미 대통령이었던 조지 W 부시는 즉시 가차없는 보복을 천명했다. 그는 불과 나흘 뒤 오사마 빈 라덴이 숨어 있는 아프가니스탄에 지상군을 투입하기로 결정한다. 아프간 탈레반 정부가 빈 라덴의 신병 인도를 끝내 거부하자, 부시 정부는 그해 10월7일 탈레반 주요 거점에 50기의 토마호크 미사일을 발사했다. 미국의 최장기 전쟁으로 기록될 아프간 전쟁의 서막이었다.
■ 아무도 예상치 못한 최장기 전쟁
부시, 9·11 테러 두 달 만에
탈레반 정권 붕괴에 성공
빈 라덴 사살엔 실패했지만
국가 재건사업에 첫 직선제
여성 참정권 향상 등 성과
이 전쟁이 무려 20년 동안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빈 라덴을 은닉해 준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는 고작 두 달밖에 걸리지 않았다. 전쟁 시작 한 달 만인 2001년 11월13일 아프간 수도 카불이 함락됐고, 그해 12월6일에는 탈레반의 성지인 남부 칸다하르까지 손에 넣었다. 하지만 미국은 토마호크 미사일로 아프간의 산악지대를 초토화시키고도 정작 목표물인 빈 라덴을 사살하는 데는 실패했다. 빈 라덴은 물론 알카에다와 탈레반의 주요 지도자들이 모두 파키스탄 국경으로 빠져나간 후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프간 전쟁에 아무런 성과가 없었단 뜻은 아니다. 탈레반 정권 붕괴 후 미국이 아프간 국가 재건사업을 시작하면서, 2004년 뜨거운 열기 속에 사상 첫 직선제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다. 당시 유권자로 등록한 1053만명 중 여성의 비율은 무려 41.4%에 달했다. 여성의 교육과 경제활동을 금지하고 부르카 착용을 강제했던 탈레반 정권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이듬해 열린 총선에서 선출된 여성 하원 의원은 전체 의석의 28%를 차지했다. 이는 2004년 개정 헌법이 보장한 여성할당제 기준을 6석 초과한 것이었다.
아프간 재건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판단한 미국은 병력을 이라크로 집중하기 시작한다. 당시 이라크 전쟁에 15만명의 미군이 투입된 반면, 아프간에 남아있는 병력은 1만~2만명 수준이었다. 그러나 2006년부터 전열을 가다듬은 탈레반이 반격을 가해왔다. 대규모 전투로는 미국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탈레반은 게릴라전과 자살폭탄 테러로 전술을 바꿨다. 이 전략은 크게 주효했다. 자살폭탄은 해가 갈수록 점점 정교해지면서 한번에 수십명의 목숨을 앗아갈 만큼 살상력이 강해졌다.
결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수천명의 병력을 아프간에 추가 파병할 수밖에 없었다. 아프간 투입 미군은 2011년 11만명으로 정점을 찍는다. 하지만 이미 아프간 전쟁은 베트남 전쟁과 똑같은 수렁에 빠지고 있었다. 게릴라전 국면으로 돌입한 이상 미군은 아무리 병력을 투입해도 아프간 지형을 잘 알고 있는 탈레반을 이길 수 없었다.
오바마는 수렁에서 발을 뺄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2011년 미국 외교의 무게중심을 중동에서 아시아로 옮기는 ‘피봇 투 아시아’ 전략을 발표하고, 아프간 출구 전략을 가동했다. 2014년에는 “이제 책임있는 종전을 맞이할 때가 됐다”며 종전선언까지 했다. 아프간 정부군에게 병권을 이양하면서 단계적 철군을 시작해 2016년에는 아프간 파병 미군을 ‘0’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탈레반의 공격 앞에 정부군과 민간인이 속수무책으로 죽어가는 상황에서, ‘책임’과 ‘종전’을 거론하기에는 일러도 너무 이른 때였다. 결국 오바마는 이듬해 철군 계획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정권을 지나 조 바이든 대통령에 이르러서야 종전선언 7년 만에 완전 철군 계획을 확정하게 된다.
■ 최장기 전쟁의 어마어마한 대가
미국, 이라크로 병력 집중에
전열 가다듬은 탈레반 반격
오바마 ‘종전 선언’ 했지만
민간인 등 희생에 속수무책
7년 뒤 바이든이 “완전 철군”
바이든의 계획대로 5월1일부터 철수를 시작해 9·11 테러 20주년이 되는 오는 9월11일까지 완전 철군이 이뤄지면, 아프간 전쟁은 베트남 전쟁 10년과 이라크 전쟁 9년을 뛰어넘는 미국의 역대 최장기 전쟁으로 종지부를 찍게 된다. 그동안 미국이 이 전쟁에 쏟아부은 인적·물적 비용은 어마어마하다. 미국의 전쟁 비용을 추적하고 있는 미 브라운 대학 부설 왓슨연구소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 20년 동안 미국이 아프간 전쟁에 쓴 예산은 전투 비용, 참전군인 치료 비용, 채권 이자 등을 모두 포함해 2조2610억달러(약 2524조4000억원)에 달한다. 한국의 1년 국내총생산(GDP·약 1조5500억달러)보다 많은 돈을 아프간 전쟁에만 쏟아부은 것이다. 모두 미국 시민들이 세금으로 부담해야 하는 돈이다.
전투 중 사망한 미군은 2442명이며, 후유증을 앓고 있는 참전 군인까지 포함하면 인적 피해는 더 크다. 미 재향군인회에 따르면, 2001년 이후 외상성 뇌손상 진단을 받은 아프간·이라크전 참전 군인은 35만명에 달한다. 하루 평균 20명의 참전 군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는데, 이 중 65%가 아프간·이라크전 참전 군인이다.
하지만 희생자의 절대다수는 비무장 시민과 어린이 등 아프간 현지 민간인들이다. 유엔 통계에 따르면 민간인 인명 피해는 오바마가 종전선언을 한 2014년부터 오히려 늘어나기 시작해 최근까지 해마다 1만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미첼 바첼레트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아프간은 여전히 세계에서 민간인에게 가장 위험한 장소 중 하나”라고 말했다.
탈레반은 현재 아프간 영토의 절반 가까이를 탈환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미군이 완전히 철군하면 탈레반은 더욱 빠르게 세를 확장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테러리스트를 척결하고 탈레반으로부터 주민들을 해방시키겠다던 미국의 “선한” 전쟁은 도대체 왜 이토록 엄청난 자원을 쏟아붓고도 실패로 끝나게 되고 만 것일까.
■ 실패로 끝난 미국의 “선한” 전쟁
미군 등에 의한 민간인 사망
아프간 내 반미 감정 폭발
탈레반 오히려 더 힘 얻어
전문가, 9월 미군 철군 땐
군대 붕괴·알카에다 부활 등
아프간에 더 큰 혼란 우려
실패의 원인 중 하나는 ‘선한 구원자’ 역할을 자처한 미국이 정작 아프간 내에서 크게 환영받지 못했다는 사실에 있다. 탈레반이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반격하기 시작한 때는 미군과 나토의 공습으로 현지 민간인 사망이 계속되면서 반미 감정이 점증하던 때와 맞물린다.
2006년 5월 미군 차량이 아프간 시민 5명을 치어 사망케 하자, 카불에서는 대규모 반미 시위가 일어났다. 고의가 아닌 교통사고였지만, 억눌려 온 반미 감정이 폭발하면서 시위는 걷잡을 수 없이 격렬해졌다. 미군과 아프간 경찰이 시위 진압 과정에서 실탄을 발사해 14명이 사망하고 9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망자에는 일곱 살짜리 소년도 포함돼 있었다.
2011년에도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한 극우 목사가 코란을 불태운 사실이 전해지자 반미 시위가 일어나 유엔 직원 8명을 포함해 11명이 사망했다. 거세지는 반미 감정 속에 아프간 정부군은 ‘외국인을 위해 싸우는 꼭두각시’라는 이미지에 갇히게 됐고, “외세를 물리치자”는 탈레반의 목소리는 점점 더 힘을 얻기 시작했다.
게다가 미국이 약 1430억달러(약 160조원)를 쏟아부은 아프간 재건사업도 진척이 더디기만 했다. 지난해 10월 발간된 미 의회 보고서는 최소 190억달러 이상이 행방조차 묘연했다고 지적했다. 이는 미국을 등에 업고 대통령에 당선된 하미드 카르자이 정권과 그들에게 우호적인 일부 군벌들이 상당 부분을 착복했기 때문이다. 2013년 뉴욕타임스는 내부고발자의 말을 인용해 미 중앙정보국(CIA)이 지난 십수년 동안 매달 카르자이 측에 현찰로 가득 채워진 여행가방을 전달해 왔다고 폭로했다. 알자지라는 “아프가니스탄은 수많은 족장들의 자치에 의해 다스려지는 나라인데, 미국은 이를 무시한 채 (서구식) 중앙집권정부를 세운 후 카르자이를 대통령 자리에 앉히고, 그에게 모든 돈을 쏟아붓는 형태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고 비판했다. 미국의 관료들은 “아프간 정부가 부패하는 데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한 것은 바로 미국이었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무엇보다 아프간 전쟁은 애초부터 9·11 테러에 대한 복수를 위해 즉흥적으로 시작된 것인 만큼, 목적과 계획이 분명치 않았다는 문제가 있다. 9·11 테러 발생 후 한 달도 되지 않아 대대적인 공습이 시작됐지만, 정작 아프간은 목표물인 빈 라덴이 빠져나가고 없는 빈 껍데기뿐이었다. 베트남 전쟁 때처럼 게릴라전화되어 가면서 탈레반을 상대로 군사적 승리를 거두기 불가능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미 정권은 ‘승전선언’을 위해 탈레반과의 정치적 협상을 거부하며 버티다가 이미 주도권을 탈레반에 빼앗긴 후인 지난해 2월에야 평화협정을 맺었다.
전문가들은 바이든 행정부의 발표대로 오는 9월까지 완전 철군을 마치면 아프간이 더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안보 전문가 데이비드 앤들먼은 CNN 온라인판 칼럼을 통해 “아프간전을 시작한 이유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면서 “원래 있던 테러 위협도 거의 없애지 못한 데다 미군의 개입 이후 생겨난 다른 위협들도 해결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스티븐 비들 컬럼비아대 교수도 “미군이 철수하면 알카에다가 아프간에서 다시 자리 잡을 수 있다”면서 “미국이 육성해온 아프간군이 붕괴해 1990년대보다 더 심각한 내전의 수렁에 빠질 수 있다”고 AP통신에 말했다. 1980년대에 미국과 유럽이 아프간을 침공한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무장 게릴라 조직인 무자헤딘을 도우며 군사훈련을 시켰다가 아프간에 극도의 혼란이 빚어졌던 상황이 다시 재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은 1989년 소련을 아프간에서 철군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이후 아프간에서는 극심한 혼란이 빚어졌고 이 틈을 타 탈레반이 정권을 잡았다. 이는 알카에다가 아프간 내에 터전을 마련할 수 있는 토양이 됐다. 미군이 완전 철군하고 난 후 이 같은 역사가 다시 반복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결국 아프간은 책임지지 않는 외세의 개입으로 잘못 끼워진 단추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된 셈이다.
정유진 기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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