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41년간 외면한 사북항쟁 폭력, 이젠 국가가 사과해야

2021. 4. 20.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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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980년 4월 일어난 사북항쟁은 ‘일한 만큼 임금을 받고 인권을 존중받고 싶다’는 광부들의 요구로 시작됐다. 당시 사북 탄광 농성자들과 그들의 가족이 탄광 주변에 모여 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정선지역사회연구소가 1980년 사북항쟁 당시 국가폭력의 실상을 밝힌 조사 보고서를 20일 공개했다. 사북항쟁은 그해 4월 강원 사북의 탄광 노동자와 가족 4000여명이 어용노조와 열악한 노동조건에 항의하며 총파업을 벌인 사건이다. 당시 신군부의 계엄사령부는 부녀자가 포함된 주민 수백명을 폭도로 몰아 무차별 연행하고 고문을 자행했다. 공권력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야만적인 폭력사태였다. 연구소는 이번 조사가 사북항쟁을 국가폭력에 초점을 맞춰 종합 분석한 첫 시도라고 밝혔다. 발생 41년 만에 국가폭력 사태를 재조명할 기회가 마련된 만큼 진상 규명과 사과, 피해자 구제 등 후속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보고서는 사북항쟁의 본질을 국가가 주도한 조직적 폭력이라고 결론지었다. 지난해 7월부터 9개월 동안 수천 쪽의 문건과 50여명의 증언 내용을 정리해 이를 뒷받침했다. 피해자들이 증언한 고문 실태는 끔찍했다. 남녀 구분 없이 수십명씩 빽빽하게 들어찬 경찰서 임시 조사실에서 무자비한 구타가 벌어졌다. 물고문에 성고문까지 했다고 한다. 유신정권이 무너지고 신군부가 득세하는 과정에서 저질러진 공권력의 민낯이 드러난 것이다. 그간 간헐적인 증언이 있었지만 제대로 된 피해 조사는 없었다. 연구소가 보고서와 함께 최초 공개한 피해자 150여명의 명단을 토대로 정부당국이 직권조사에 나서야 한다.

당시 공권력은 항쟁을 촉발하고도 이를 노노 갈등으로 빚어진 난동 또는 사적인 보복으로 사태를 호도하며 뒤로 숨었다. 공권력의 압도적인 힘에 피해자들은 피해 사실을 수십년간 침묵하도록 강요받았다. 심지어 피해자들끼리 손가락질하며 공동체를 파괴하도록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렇게 무책임하게 국가폭력이 자행됐음에도 지금껏 공식 사과나 구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2008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사북사건 합동수사단의 가혹 행위를 인정하고 국가의 사과, 피해 보상, 명예회복 조치 등을 권고했지만 거기서 그쳤다. 연구소는 이번 보고서를 2기 진실화해위와 인권위, 유엔 등에 보고하고 정부의 공식 사과를 요구할 계획이다. 이번에는 반드시 진실 규명과 국가의 공식 사과가 있어야 한다. 이날 보고서가 국가 차원의 재조사로 이어지고, 정부가 법·제도 장치를 서둘러 마련해 모든 피해자 구제와 명예회복에 나서는 계기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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