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후악당' 오명 벗으려면

2021. 4. 20.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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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숙 前환경부장관·KIST 책임연구원·기후변화센터 이사장
유영숙 前환경부장관·KIST 책임연구원·기후변화센터 이사장

올해 서울의 벚꽃이 100년 만에 가장 빨리 피었다. 일본의 벚꽃 절정 시기도 1200년 만에 가장 빨랐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이를 반기기보다 우려하는 기사들이 더 많았다. 때 이른 봄꽃 소식에 마냥 즐거워할 수만 없었던 건 기후변화의 시간표가 점점 더 빨라지고 있음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년 같으면 봄이 한창이어야 할 4월이지만 이미 여름의 입구에 들어선 느낌이다. 지난해 여름에는 눅눅한 장마가 54일간 지속됐다. 그에 앞서서는 기록적인 폭염에 시달렸다. 또 어떤 역대급 기상이변이 찾아올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2021년은 파리협정에 따른 신기후체제의 원년이다.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는 전 세계 197개국이 모인 가운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가 개최됐다. 기후변화를 막을 범지구적 공동행동을 논의하는 자리였지만 자국의 산업 위축에 대한 불만으로 의견은 좀처럼 모아지지 않았다. 난항이 거듭되던 회의는 "우리가 차선책으로 택할 행성은 없다(There is no Plan B, because we do not have a Planet B)"는 유엔사무총장의 강한 압박에 마침내 극적으로 최종 합의문 채택에 이른다.

지구의 평균기온 상승을 1.5℃ 이하로 제한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파리협정이 탄생한 것이다. 이 목표는 곧 다시 상향 조정됐다. 기후변화의 양상이 당초 예상보다 훨씬 더 빠르고 심각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를 배출한 만큼 흡수해야 하는 탄소중립(net-zero)의 의무가 부과됐다.

하지만 강도 높은 국제사회의 결의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이 2019년 다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비록 지난해 에너지분야에서 이산화탄소(CO2) 배출량이 전년 대비 20억톤(t) 가량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코로나19 영향으로 교통과 생산활동이 위축돼 나타난 일시적 현상일 수 있다. 부끄럽게도 우리나라 역시 이런 상황 악화에 일조하고 있다. 한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전 세계 7위, OECD 회원국 중에는 네 번째로 높다. 특히 국가별 기후변화 대응 성적을 나타내는 '2020 기후변화대응지수'에서는 이산화탄소 배출량 증가율 1위를 기록해 '기후악당'이란 전 세계적 비판에 직면하게 됐다.

국가 이미지가 추락하면 우리의 생명줄인 수출도 타격을 받는다. 한국의 최대 수출시장인 EU와 미국은 수입품을 대상으로 탄소를 얼마나 배출했는지 따져 비용을 부과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사실상의 추가 관세다. 기후악당의 오명을 벗는 일은 국가적 위신과 경제적 유불리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다음 세대의 미래를 위해서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문제다. 기후변화에 큰 책임이 없는 후손들이 죄과를 대신 치르며 자연재해가 일상이 된 끔찍한 환경에서 살아가도록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때마침 찾아온 지구의 날(매년 4월 22일, 환경부는 올해의 경우 4월 22일부터 28일까지 일주간을 기후변화주간으로 정하고 다양한 행사를 벌일 예정이다. 올해 행사 주제는 '지구를 되살리자')을 기해 기후악당의 오명을 벗으려 절치부심하고 있을 정책입안자들에게 몇 가지 고언을 더하고 싶다.

첫째,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지금보다 더 높여 보다 진정성 있는 탄소중립 의지를 국제사회에 보여줘야 한다. 둘째, 구체적 로드맵 없는 2050 탄소중립 선언은 한낮 말에 그칠 수밖에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치밀하고 실제적인 중·단기 이산화탄소 감축 전략이다. 지금이라도 과학기술에 입각한 아이디어들을 총동원해 정책의 실효성을 재검토해야 한다.

끝으로 2050년 탄소중립 실현까지 관련 정책의 지속가능성이 담보되기 위해서는 부처 간 협력이 더없이 중요하다. 특히 경제활동을 촉진하고 규제하는 각종 정책들이 국가의 장기 목표에 부합되도록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더이상 공허한 정치적 수사에 그치는 달콤한 약속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지구를 위한 결단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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