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부세 9억, 서민 역차별..집값↑ 대출한도↓ 현금부자만 웃었다
[편집자주] 종합부동산세 기준을 손봐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돼 왔지만 정부가 '9억원'을 고집한 이유는 '9억원'이 단순히 세금 부과 기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9억원은 정부가 내심(?) 정한 집값의 마지노선이다. 그래서 종부세 뿐만 아니라 대출, 분양, 심지어 중개보수도 9억원이 기준이다. 9억원 변경이 갖는 의미를 짚어본다.
정부가 종합부동산세 9억원 기준을 상향하기로 사실상 방향을 정하면서 '9억원'에 걸려 있는 각종 규제 조치도 함께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9억원'에 집착하는 사이 종부세 등 세제 뿐 아니라 대출, 중개보수, 주택연금, 아파트 분양보증까지 곳곳에서 정책의도와는 다른 시장 왜곡현상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대출한도는 줄었는데 집값은 급등했다는 게 문제다. 2017년까지만해도 서울에서 시가 9억원이 넘는 아파트 비중은 21.9%(부동산114)였다. 2018년에도 31% 수준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서울에서 9억원을 넘는 아파트 비중은 49.6%까지 늘었다. 사실상 9억원은 서울 아파트 값의 평균값이 됐다는 얘기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3월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평균은 9억700만원이다. 강북 종로의 평균 아파트 매매가는 10억4600만원, 용산은 14억3000만원, 마포는 10억3600만원이다. 서초구는 평균 18억원, 강남구는 평균가가 17억원을 넘어섰다. 서울시내 25개 구 가운데 10개 구의 아파트 평균 매매가가 9억원을 넘는다. 강남3구는 아예 주담대 금지 상한선을 넘었다.
결국 현금이 넉넉한 현금부자가 아닌 이상 서울에서 대출을 받아 내집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가 갈수록 줄고 있는 셈이다. 여당이 LTV 한도를 10% 상향해 주는 우대범위를 확대하겠다고 밝혔지만 대출액이 '찔끔' 느는데 그쳐, 대출한도 기준인 9억원·15억원을 건드리지 않는 한 무주택자에게 체감도 높은 규제완화가 되기 어려울 것이란 비판이 제기된다.
2016년엔 그랬을 수 있지만 5년 새 상황은 크게 변했다. HUG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서울 아파트 전용 84㎡ 분양가는 7억2013만원으로 집계됐다. 2016년과 비교하면 10% 가까이 오른 셈이다. 분양가 9억원 초과 주택은 더이상 강남 재건축 만의 얘기가 아니다.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은 소형 분양가조차 9억원을 넘길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강동구 표준지 공시지가가 올해 12.82% 상승하면서 업계는 3.3㎡ 당 최소 3700만원 수준의 분양가를 예상한다. 전용 59㎡ 기준 단순계산하면 8억8800만원, 발코니 확장비를 비롯 층과 향에 따라 9억원을 초과할 수 있다.
정부가 추진 중인 공공재개발 사업은 참여 독려를 위해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하지 않기로 해 문제가 더 심각하다. 상한제를 적용하지 않은 동작구 흑석2구역의 예상분양가는 전용 59㎡ 9억원, 전용 84㎡ 13억원 선이다. 중도금 대출이 안나오면 자금 여력이 없는 실수요자들은 청약 기회조차 잃게 되고 청약 시장은 현금부자들의 잔치가 된다.
'둔촌주공' 고분양가 논란이 일자 정부는 당초 상한제 취지가 훼손됐다며 실수요자를 위한 제도 개선을 예고했다. 하지만 실수요자의 진입장벽을 낮추면서도 공급을 저해하지 않는 균형점을 찾기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땅값, 기본형 건축비, 가산비 등으로 산정되는 가격을 무리하게 제한하면 조합과 건설사는 공급을 미룰 가능성이 높다. 이미 강남 주요 재건축들은 이런 이유로 후분양을 확정지은 상태다.
시세 9억원은 중개보수(중개수수료·복비)를 낼 때 최고요율을 적용하는 기준 금액이기도 하다. 중개보수는 매매와 전세 모두 주택가격에다 0.4~0.9%의 중개보수 요율을 곱해 정한다. 최고요율인 0.9%(이내에서 협의 가능)를 적용하는 '고가주택' 기준은 시세 9억원이다. 예컨대 10억원자리 아파트를 매수했다면 중개보수로 900만원을 내야 하는 셈이다.
중개보수 최고요율을 적용하는 고가주택 기준은 2014년 중개보수 요율체계 개편을 하면서 정했다. 직전까지는 15년간 6억원을 적용해 왔다가 당시 "주택 시세가 올라 요율을 조정한다"는 취지에 따라 3억원 더 올려 잡았다. 문제는 그로부터 7년이 지난 현재까지 고가주택 기준이 여전히 9억원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부동산원 통계를 보면 2014년 12월 기준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4억6283만원이었다. 현재(3월 기준)는 8억7687만원으로 7년간 2배 가까이 올랐다. 이에 따라 서울 아파트를 매수하는 사람의 절반 가량은 최고요율을 적용한 중개보수를 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집값 부담도 만만치 않은데 부대비용인 중개보수가 수백만원에서 1000만원을 넘다보니, 불만이 폭발할 수 밖에 없다.
이에 따라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 3월 고가주택 기준을 12억원으로 올리는 권고안을 국토교통부에 권고했고, 국토부는 6월~7월경에 중개보수 요율체계 변경안을 내놓겠다고 약속한 상태다. 권익위 안이 받아 들여진다면 10억 아파트의 중개보수는 900만원에서 550만원으로 낮아질 수 있다.
신혼부부나 생애최초 무주택자가 받을 수 있는 아파트 특별공급 분양권도 대상 주택 기준이 분양가 9억원이다. 정부는 청년층의 '패닉바잉'을 막기 위해 이들에 대한 특별공급 비중을 확대하는 추세지만 정작 분양가 9억원 이하 아파트 분양은 갈수록 줄고 있다. 아무리 특공 비중을 늘려도 나올 수 있는 물량은 제한적이라는 얘기다. 특별공급 기준인 분양가격 9억원을 올리지 않는 한 청년들의 '갈증'이 해소되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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