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위기 '사장 임명동의제'..4년도 못 간 SBS의 약속

김효실 2021. 4. 20.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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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방송 위해 구성원이 임명동의..노사, 2017년 합의 뒤 단협에 명시
사쪽, 노조의 대주주 고발 이유로 삭제 요구..언론단체 "방송사 공적 책무 어긋나"

2016년 광장은 촛불로 가득했다. 한국 사회의 갖은 ‘적폐’ 청산을 요구하는 거리의 외침 가운데는 “언론도 공범”이라는 팻말도 존재했다. 당시 <한국방송>(KBS), <문화방송>(MBC) 같은 공영방송 언론인들이 방송 독립성·공공성을 되찾기 위한 파업 투쟁에 나선 일은 널리 알려졌다. 같은 시기 민영방송 <에스비에스>(SBS) 구성원들이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입맛에 맞춘 대주주의 보도 개입에 맞선 사실은 상대적으로 덜 조명받았지만, 이들은 한국 방송 역사에 각인될 제도적 성과물을 남기는 데 성공했다. 바로 노사 및 대주주 3자가 대표이사 사장을 포함한 보도·편성·시사교양 최고책임자에 대한 구성원 임명동의제(이하 사장 임명동의제)에 합의한 것이다. 이는 방송사 사상 첫 시도로, 방송계 내 소유―경영 분리 원칙 및 방송 독립성에 대한 제도적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최근 에스비에스 사쪽이 사장 임명동의제를 없애려고 하면서 노조와 갈등을 빚고 있다. 이를 둘러싸고 에스비에스 안팎에서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에스비에스 사쪽, 단협 해지 통고 강행

사장 임명동의제는 2017년 10월13일 노사와 대주주가 합의를 이룬 뒤 2018년 노사 단체협약(단협)에 명시됐다. 2017년과 2019년 두차례 시행됐고, 올해 말 세번째 시행을 앞둔 상황이었다. 갈등은 지난 1월 노사가 단협 개정교섭을 하는 과정에서 사쪽이 “임명동의제 조항을 삭제하자”고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사쪽은 ‘10·13 합의’가 윤창현 전 노조위원장이 대주주·경영진 등을 검찰에 고발하면서 파기됐다는 이유를 들었다. “시중의 정치선거판처럼” “인기투표식으로 검증하는” 문제점도 지적했다.

하지만 노조는 “사장 임명동의제가 단협에 명시된 제도인 만큼 10·13 합의와 별도로 논의되어야” 하며, “전 조항을 삭제하는 대신 수정·보완 차원의 협의를 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실제 노조는 지난달 열린 아홉번째 협상에서 사쪽이 말하는 ‘정치적 분란’을 막을 새 조항을 제시했지만, 사쪽이 거부했다. 사쪽은 지난 2일 아예 단협 해지를 통고한 상황이다. 법률상 사쪽이 해지를 통고해도 6개월의 유예기간이 주어져, 당장 단협의 효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한국기자협회, 언론개혁시민연대 등 언론시민단체들은 에스비에스 사쪽과 대주주가 노조와의 합의를 넘어 시청자 시민들과의 ‘사회적 약속’으로 사장 임명동의제를 제시한 만큼, 제도 폐기와 대책 마련에 대한 설명 책무를 제대로 이행해야 한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10·13 합의문에는 “위 합의문은 2017년도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재허가 심사위원회에 제출해 성실한 이행을 사회적으로 약속하고 보증한다”고 명시돼 있다. 김동찬 언론연대 사무처장은 “합의 파기 원인에 대해 노사 주장이 엇갈리는 건 노사가 따져야 할 문제다. 하지만 스스로 약속한 사항을 충분한 근거 제시와 대안 없이 일방적으로 없앤다면 방송사의 공적 책무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말했다. 사쪽이 “사장 임명동의제가 아니어도 본부장 중간평가제, 노사 동수 편성위원회 등으로 공정방송을 지킬 수 있다”고 설명한 것과 관련해, 김 사무처장은 “사장 임명동의제 도입 전에도 해당 제도들은 존재했지만, 방송 독립성 침해를 막지 못했다. 사장 임명동의제를 도입하게 된 역사적 맥락을 충분히 살펴서 대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방이라도 방송 공공성·독립성 지켜야”

에스비에스 사쪽은 2017년 방통위의 재허가 심사 과정에서 “사장 임명동의제를 충실히 운영하겠다”는 계획을 제출했다. 방통위는 지난해 에스비에스에 조건부 재허가를 의결할 때도 ‘방송의 공적책임·공정성’ 항목과 관련해 “2017년 방통위 재허가 심사위원회에 제출한 노사 합의사항을 성실히 이행할 것”이라는 권고를 덧붙였다. 방통위 역할론이 대두하는 이유다.

민방의 대표 격인 에스비에스 사례를 면밀히 파악해, 30여년 동안 별다른 변화가 없었던 민방의 소유―경영 분리 원칙과 관련한 규제 체계 전반을 손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동원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전문위원은 “에스비에스는 물론, 지역에서 독점적으로 공공재인 전파를 사용하는 민방들도 단순한 민간사업자가 아니라 공적 책무를 가진다. 그런데도 사주의 지역 내 영향력, 정치적 영향력을 쌓기 위한 ‘명함’처럼 쓰이며 방송 공공성·독립성을 침해받는 게 현실”이라며 “사장이 방송사의 미래를 위한 큰 그림을 그리는 전문경영인이 아니라 사주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밖에 못 하는 관행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은 “‘사장을 뺀 보도·시사교양 부문에만 임명동의를 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지만, 미디어 환경 변화로 실시간 방송에서 수익을 창출하는 시대는 끝났다. 콘텐츠와 관련한 다양한 수익 창출 전략을 고민하는 경영진을 감시할 필요가 더 커졌다”고 덧붙였다.

10·13 합의에 참여했던 에스비에스 대주주인 티와이홀딩스 관계자는 20일 <한겨레>에 “노조에서 임명동의제 시행 관련 조항과 대주주의 이사임면권 존중 등 10·13 합의 사항들을 여러차례 위반하여 합의를 파기했다”며 “단협상의 임명동의제는 노사 문제로, 티와이홀딩스는 일절 관여하지 않고 있고 관여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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