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년 동안 매일 결혼식 올리는 노부부

이선화 기자 2021. 4. 20.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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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드·메'에 대관료까지 완전 무료 '신신예식장'

"신신예식장이요? 우리 동네 자랑거리죠"

마산역 앞에서 택시를 타고 '신신예식장'으로 가달라고 말하자, 기사님은 단번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산에서 가장 오래된 예식장인데 전국 각지에서 손님이 온다면서 말입니다. 아는 동생도 이 곳에서 식을 올렸다고 하더군요. 도착해 내리려는데 기사님이 묻습니다. "근데 아직도 영업 해요?"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위치한 신신예식장.

간판집, 인쇄사 등이 즐비한 동네 골목. 예식장은 커녕 인적도 드물어 보입니다.
그런데 길 한 가운데 눈길을 사로잡는 3층짜리 건물이 하나 있습니다. 진한 분홍색, 초록색, 주황색…층마다 자기 주장이 강한 '신신예식장' 건물입니다. '예약 접수중'이란 문구가 적힌 색바랜 안내판이 입구에 놓여있습니다.

"어서 오세요. 신신예식장입니다. 환영합니다."

살균소독제를 분무하며 계단 손잡이를 닦던 아흔 한 살 백낙삼 대표가 취재진을 발견하고는 반갑게 인사를 건넵니다. 백 대표는 전화를 받을 때에도 늘 "예 안녕하세요 신신예식장입니다"로 "여보세요"를 대신합니다. 백 대표가 신신예식장이고, 신신예식장이 백 대표인, 뭐 그런 셈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백 대표는 지난 54년 간 하루도 빠짐없이 신신예식장을 운영해왔습니다.

신신예식장의 옛 전경. '예식장 무료제공'이라고 적혀있다. 〈사진 = '신신예식장' 클 출판사 제공〉

듣기만 해도 어쩐지 신나는 느낌이 드는 이름 '신신예식장'.
백 대표가 일했던 서울 한강 인근의 '신신보트장'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가난했던 젊은 시절 돈을 벌기 위해 사진사로 처음 일을 했던 곳입니다. 백 대표는 이때 '신신'이란 어감이 좋아 나중에 어떤 사업을 하든 이름으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합니다. 그런데 마침 새 시작을 하는 예식장이니 '신신(新新)'이란 의미도 딱 맞게 됐다는 설명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번 돈으로 1967년, 예식장을 문을 열었습니다. 처음부터 '스·드·메'(스튜디오 촬영·드레스·메이크업)에 대관료까지 '완전 무료'를 내걸었습니다. 돈을 모으느라 31살까지 결혼을 못 했던 백 대표는, 자신처럼 가난한 사람들이 걱정 없이 결혼식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합니다. 진행과 주례는 백 대표가, 드레스와 부케, 폐백 등은 최 이사가 맡고, 메이크업은 재능 기부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대신 사진값만 받았는데, 지금은 이것도 받지 않고 최소한의 운영비인 70만원만 받는다고 합니다. 이마저도 사정이 좋지 않은 손님들에겐 안 받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요. 당연히 물음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돈이 계속 나갈텐데, 어떻게 운영하시나요?"

신신예식장의 사훈이 걸려있다. 〈사진 = '신신에식장' 클 출판사 제공〉

뒤늦게 전해오는 마음…'보이스피싱' 오해한 적도

백 대표와 최 이사는 "충분하다"고 말합니다. 앞서 식을 올렸던 사람들이 지불한 돈, 10만원, 20만원씩 들어오는 후원금, 부부가 저축해둔 돈. 큰 돈은 아니지만 새 출발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엔 부족하지 않다는 겁니다. 가끔은 오래 전 결혼했던 사람들이 "그땐 사정이 좋지 않아 미처 돈을 못 냈지만, 뒤늦게라도 갚고 싶다"며 돈을 보내오는 경우도 있다 하고요.

이와 얽힌 '웃픈' 에피소드도 들려주었는데요. 지난해 백 대표에게 "1977년에 여기서 도움을 받아 결혼한 사람인데, 지금은 일이 잘 풀려 보답하고 싶다"며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왔다고 합니다. '눈물 나게' 고마운 마음에 계좌번호를 적어 보냈는데, 주위에서 "43년 동안 안 잊고 있다가 지금 보낼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 보이스피싱 아니냐"라고 물었다는 겁니다. 갑자기 걱정이 된 부부는 주말 내내 밤잠을 설치다 아침에 은행으로 달려가 통장에 있던 돈을 모두 인출했다고 하는데요. 다행히 바로 '입금 되었다'는 문자를 받았다고 합니다.

백낙삼 대표와 최필순 이사가 일하는 모습. 〈사진 = '신신예식장' 클 출판사 제공〉

"100살까지는 할 수 있지 않겠나…"

백 대표가 보여준 달력엔 이번 달에도 스무 건이 넘는 예약이 잡혀있었습니다.
하루 17쌍씩 식을 올리던 때에 비하면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많은 건수입니다. 전국은 물론 아르헨티나, 미국 등 세계 각지에서도 문의가 끊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 예식장같은 게 하나 있어야 서민들 도와가며 살죠." (최필순 이사)

"제가 91살 아닙니까. 앞으로 9년을 더 해야하는 겁니다." (백낙삼 대표)

부부의 손길과 반 세기의 역사가 묻어있는 신신예식장. 백 대표는 대대로 물려주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지만, 최 이사는 "자녀들 생각 먼저 들어보아야 한다"고 만류하며 웃었습니다. 다만 당장은 손을 놓지 않겠다는 데에는 뜻을 같이 했습니다.

◆ 관련 리포트
노부부의 무료예식장…"돈 없어 못 한다 하면 같이 울지요"
→ 기사 바로가기 : https://n.news.naver.com/article/437/0000264236?ntype=RAN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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