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팬텀' 크리스틴으로 돌아온 소프라노 임선혜 "마지막 '팬텀', 매순간이 애틋한 무대" [인터뷰]

선명수 기자 2021. 4. 20.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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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세계적인 소프라노 임선혜는 지난달 17일부터 서울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팬텀>에서 ‘크리스틴 다에’를 연기하고 있다. 이번 시즌이 임선혜가 세 번째로 참여하는 공연이자 그의 마지막 <팬텀> 무대다. EMK엔터테인먼트 제공


2015년 첫 선을 보인 뮤지컬 <팬텀>에 세계적인 소프라노 임선혜(45)가 합류한다는 소식은 그 자체로 화제가 됐다. <팬텀>은 ‘고음악의 디바’로 불리며 세계 클래식 무대에서 바쁘게 활동하던 그의 첫 뮤지컬 무대이기도 했다. 임선혜가 연기하는 ‘크리스틴 다에’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번 시즌이 임선혜가 세 번째로 참여하는 공연이자 그의 마지막 <팬텀> 무대다. 지난달 17일 막을 올린 <팬텀>에서 오페라 극장의 새로운 디바, ‘크리스틴 다에’로 돌아온 임선혜를 최근 서울 압구정동에서 만났다.

2015년 초연이 낯섦과 설렘이 교차했던 ‘도전’의 무대였다면, 이번 시즌 <팬텀>은 그에게 “모든 무대가 기억하고 싶은 애틋한 시간”이라고 했다. “세 번째 공연이지만 전 연습에 모두 참여한 게 이번이 처음이에요. 코로나19로 해외 일정들이 취소되면서 이번엔 상견례부터 드레스 리허설까지 모두 함께 할 수 있었는데, (출연진들이) 서로 조심하자고 다독이며 함께 공연을 만들어온 그 시간들이 너무 좋았어요. 또 40대에 ‘사랑스럽다’라는 말을 듣기가 쉽나요.(웃음) 관객들의 그런 응원에 용기를 얻고 공연하고 있습니다.”

<팬텀>은 그에게 “상업예술에 대한 경험과 공부가 된 작품”이라고 했다. “순수예술만 했던 성악가로서 좋은 경험이었어요. 동시대 관객들이 원하는 것을 파악해 치열하게 무대를 만들어가는 모습에서 많이 배웠습니다. 이젠 후배들에게도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특히 크리스틴 다에는 성악가 출신이 잘할 수 있는 역할이에요. 음악에서 장르 구분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을 수 있었던 경험을 나누고 싶어요.” 그렇다고 뮤지컬 무대를 아예 떠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레너드 번스타인의 작품은 기회가 닿는다면 꼭 해보고 싶다”고 했다.

뮤지컬 <팬텀>에서 오페라 극장의 새로운 디바, ‘크리스틴 다에’를 연기 중인 소프라노 임선혜. EMK엔터테인먼트 제공


이미 클래식 고음악에서 단단한 입지를 굳혔지만, 임선혜는 그 자리에만 머물러 있는 성악가는 아니다. 뮤지컬 뿐만 아니라 드라마 OST, 가곡 등 다양한 장르 음악에 도전해 왔다. 올해 테너 존노와 함께 동요 음반 <고향의 봄>을 발매했고, 지난 3월엔 브리튼이 랭보의 시에 곡을 붙인 가곡 ‘일뤼미나시옹’을 서울시향과 함께 선보였다. “감사하게도 기회가 많이 왔는데, 누군가가 제 목소리를 이러저러한 음악에 써보고 싶다는 상상력을 펼칠 수 있다면 정말 기쁘고 행복한 일이죠. 새로운 장르 음악을 제안받으면 ‘내가 해도 되나?’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드는데, 그럴 때마다 주변의 신뢰하는 분들께 많이 여쭤봐요. 서울대 1학년 때부터 가르쳐주신 박노경 교수님께 많이 상의드리는데, <팬텀>도 선생님이랑 전곡을 다 해보고 결정한 작품이에요. 성악의 테크닉을 잃어버리면 제 본업을 못하게 되니, 그걸 가져가는 범위 내에서 작품의 스타일에 맞추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뮤지컬이나 OST 작업은 클래식 음악만 했을 때 닿을 수 없었던 관객들에게 저를 소개할 수 있는 플랫폼이니 너무 좋은 일이죠.”

언젠가 도전하고 싶은 음악은 재즈다. “바로크와 재즈는 공통점이 많아요. 일단 둘다 즉흥 연주를 하죠. 기본 화성진행 위에 즉흥 꾸밈음을 내는 것이 바로크에도 있는데, 그것 때문에 바로크 음악이 화려다고 합니다. 또 음악의 그루브랄까요, 바로크도 재즈도 춤 같은 음악이죠. 슈베르트 음악으로 춤을 출 순 없지만, 재즈도 바로크도 흐르는 듯한 춤을 출 수 있어요. 앙드레 프레빈처럼 외국 클래식 음악가들이 정말 멋진 재즈 음반을 낼 때가 있는데, 저도 언젠간 클래식한 재즈 음반을 만들어 보고 싶어요.”

뮤지컬 <팬텀>에서 오페라 극장의 새로운 디바, ‘크리스틴 다에’를 연기 중인 소프라노 임선혜. EMK엔터테인먼트 제공


그가 독일계 체코 작곡가 어빈 슐호프의 가곡 전곡을 녹음한 <어빈 슐호프 가곡집>은 최근 독일음반비평가상을 수상하는 등 호평받았다. “20세기 음악이고 독일어 가사의 곡인데 자국민도 아닌 저에게 제안을 줘서 고마웠죠. 가곡을 좋아하지만 보통 자국민을 시키기 때문에 많이 할 기회는 없었거든요. 남들이 한 번도 안 해본, 제가 처음 하는 녹음이고 ‘레퍼런스’가 없다 보니 책임감과 사명감도 컸어요. 묻혀 있다가 나온 노래들은 제가 못하면 다시 사장될 수 있잖아요. 작업할 때 피아니스트와 굉장히 많이 논의하고 연구하면서 레코딩을 했어요. 물론 이렇게 앨범이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희귀템’이라 할 수 있는 1900년대 잊혀진 예술 가곡이기 때문일 거예요. 저에게도 예술가곡 장르에 대해 발판을 넓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임선혜는 코로나19가 세계를 강타한 지난해 유럽무대 데뷔 20주년을 맞았다. 그는 예기치 못했던 팬데믹의 나날을 “리셋의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공연하는 사람으로서 존재 자체에 대한 위기감을 많이 느꼈어요. 클래식은 공간을 울리는 예술이기 때문에 마이크를 쓰지 않아요. 뮤지컬이나 다른 분야와 달리 음향 기기를 써야하는 스트리밍에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영상 콘텐츠에 대한 아이디어도 부족했죠. 함부로 도전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관객없이 노래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알게 됐어요.”

EMK엔터테인먼트 제공


예정됐던 해외 공연이 줄줄이 취소되고, 지난해 한국에 들어와 있는 동안 ‘독일 아버지’와 다름 없던 은사님이 세상을 떠났다. 자녀가 없는 그의 상주 역할을 임선혜가 했고, 장례를 치르기 위해 지난해 12월 공연을 마치자마자 독일로 향했다. 그런 상실의 시간을 통과하며 그는 “모든 순간을 감사하게, 잘 살아내야겠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 잃게된 후에야 알게 된 것들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요. 무대에서 바라보면 띄어앉기로 비어 있는 객석의 형상이 지금 이 시대의 현주소를 얘기해주는 것 같아요. 저는 천주교 신자라 무대에 오를 때마다 보통 하는 기도가 있어요. 이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을 축복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거기에 요새 한 가지를 덧붙이는데, 여기 모인 이들에게 진정한 위로가 되는 음악을 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요. 사실 누구한테 감히 위로를 한다고 음악을 하겠어요. 이제껏 그 말이 되게 건방지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젠 그걸 제일 원하게 되더라고요.”

앞으로 계속 듣고 싶은 말은, 노래를 잘한다는 얘기보다는 ‘나아졌다’라는 말이다. 그와 많은 음반작업을 함께한 음반사 하모니아 문디 대표는 그에게 언제나 “넌 늘 좋아지고 있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렇게 많은 일을 주면서도 잘했다는 소리는 한 번도 못들었는데, 처음엔 그 말이 칭찬이란 생각을 못했어요. 그래서 잘했다는 건가? 계속 고민했죠. 그런데 어느덧 데뷔 20주년을 맞고 나니까, 앞으로 그런 칭찬을 더 들을 수 있을까를 매일 고민하게 됩니다. 잘한다는 말보다 더 나아졌다는 말을 계속 들으며 노래하고 싶어요.”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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