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지마비' 극복 치과의사..동기들은 휠체어를 들어올렸다
이규환 분당서울대병원 교수
올해의 장애인 상 수상
“오지게 다쳤네.”
병원에 실려온 이규환(41) 씨를 본 의사의 첫 마디였다. 지난 2002년 다이빙을 하다가 목을 다친 그는 신경과 운동 기능과 관련된 5번, 6번 경수 손상으로 중증장애인이 됐다. 치대 본과 3학년 시절이다. 키 188cm에 운동을 좋아하던 그는 하루아침에 전동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는 신세가 됐다.
모두 포기하라고 했지만 수술 1년 만에 이 씨는 다시 학교로 복학했다. 복학 첫날 뭘 해야 할지 몰라 휠체어를 탄 채 계단 앞에 그냥 앉아 있을 때, 손을 내밀어 준 건 동기와 선·후배였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휠체어를 들고 계단 위로 올려준 그들의 도움 덕에 이 씨는 다시 공부할 수 있었다고 했다. 오전 9시부터 자정까지 앉아서 공부하다가 하반신에 욕창이 생겨 수술을 받아가며 공부를 마쳤다. 끝 없는 노력 끝에 이씨는 세계 최초의 중증 장애인 치과의사가 됐다.
고난은 끝이 없었다. 날카롭고 위험한 치과 도구를 직접 쥘 수 없던 이 씨는 자신에 팔에 끼워 쓸 수 있는 도구를 개발해냈다. 전담 위생사의 도움을 받아 진료하며 병원을 개업했다. 그렇게 개업한 병원을 찾은 첫 환자는 병원 문을 열고 휠체어에 앉은 이씨를 보자마자 “병신이 진료를 하네”라는 막말을 내뱉고 문을 닫아버렸다고 한다. 이씨는 "당시가 잊혀지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10명이 방문하면 7명은 진료를 받지 않고 그냥 돌아갔다.
그래도 이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다른 의사는 30분이면 끝내는 스케일링도 이씨는 1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러나 그는 환자에게 “시간이 두 배 걸리는 대신 제가 세계에서 가장 꼼꼼하게 해드릴게요”라며 진심을 다했다. 그렇게 하나둘 단골 환자가 늘었다. 그는 지금 분당서울대병원 건강증진센터에서 검사, 상담, 판독, 예방 클리닉을 담당하는 교수로 일하고 있다.
이 교수는 20일 장애인의 날을 기념해 보건복지부가 연 기념식에서 ‘올해의 장애인 상’을 받았다. 이 상은 지난 1996년 9월 우리나라가 제1회 루스벨트 국제장애인상(故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을 기리기 위해 루스벨트 재단과 세계장애인위원회가 공동 제정한 상)을 수상한 것을 계기로 장애를 훌륭하게 극복한 장애인을 발굴해 주는 상이다.
이 교수 외에 금정구의원과 부산광역시의원으로 뽑힌 김남희(58) 씨와 장애인 자립센터를 설립한 고관철(53) 성동느티나무장애인자립생활센터장도 함께 수상했다.
이 교수는 “장애인도 모든 일을 할 수 있다. 다만, 비장애인보다 10배의 노력을 할 각오만 있으면 된다”고 말했다. 비장애인에게는 ‘따뜻한 시선’을 부탁했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에는 따뜻한 사람이 많다. 비장애인을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모르겠다면‘무얼 도와드릴까요?’라고 물어봐 줘도 된다. 장애인이 도움을 거절한다면 자연스럽게 지나가도 좋다. 그런 자연스러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휠체어를 타고 복학한 첫날, 모두 ‘어떻게 하지?’라는 눈으로 날 봤다. 그러다 몇 명이 나서 내 휠체어를 번쩍 들고 계단을 올랐다”며 “처음엔 냉대받고 욕을 먹을 수도 있다. 그래도 무턱대고 한 발 내디디면 누군가는 손을 내밀어 준다. 많은 장애인이 용기를 내 밖으로 한 발 내딛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복지부는 이날 장애인복지를 위해 헌신하고 장애인과 함께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움직여온 총 68명의 유공자에게 정부포상을 안겼다. 이날 기념식은 “같은 길을 걷다, 같이 길을 찾다”의 슬로건* 아래, 장애인 인권헌장 낭독, 기념공연 및 동영상 상영 등을 진행했다.
권덕철 복지부 장관은 “올해 장애인 권익보장과 실질적인 서비스 확충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며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더불어 사회와 소통하고 자립하여 살아갈 수 있는 최적의 정책이 마련될 수 있도록 장애인단체에서도 많은 조언과 참여를 해달라”고 강조했다.
이태윤 기자 lee.tae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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