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가 되는 힘, 문해력
다행히 지금 이사 온 곳에는 없지만 전에 살던 곳 엘리베이터에는 광고가 나오는 작은 화면이 있었다. 둘째를 하원시키고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탈 때면 작정이나 한듯 똑같은 햄버거 광고가 송출됐다. 반복적인 광고가 아이의 뇌리에 박혔나 보다. 임계점에 도달이나 한 듯 햄버거를 먹고 싶다고 성화다. 이내 못 이겨 주문할 수밖에 없었다. 알 수 없는 그 무언가가 필터링 없이 생활 곳곳에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는 것 같다. 정신을 빼앗긴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다.
스마트폰을 장시간 사용할 경우 인간의 뇌에서 생각 중추를 담당하는 회백질의 크기가 줄어든다는 보고가 있다. 아이들이 자극적인 것만 집중하는 '팝콘 브레인'이 되지 않을 것을 당부한다. 맛깔스러운 햄버거 광고를 보는 순간 인지기능은 떨어지고, 그 자극에 집중하게 되는 원리와 같다. 뭘 보여 달라는 아이들의 요구에 늘 각을 세우는 것은 일상이 돼 버렸다. 그렇다고 아이들의 눈을 가릴 순 없는 노릇이다. 화려함에 속지 않고, 내면의 의도와 세상의 본질을 간파하는 힘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밀려왔다. 세상이 발전하면서 추가된 부모의 필수과제가 생긴 것이다. 그것은 바로 아이들에게 '문해력(Literacy)'을 가르치는 일이다.
◇ 문해력, 부자로 가는 길
우리 집의 가훈으로 하고 싶은 말이 생겼다. "문해력이 있으면 부자가 되지만 없으면 가난해진다"는 문구다. 독서토론을 가르치고 있는 제자들에게도 심어주고 있는 하나의 신념이다. 실제로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 16~65세 성인 대상)에 따르면 높은 수준의 문해력(상위 11.8%)을 갖춘 사람은 낮은 문해력(최하위 3.3%)을 가진 사람보다 평균 시급이 60% 이상 높고, 문해력 낮은 사람은 실업자 될 확률이 2배 이상 높아진다고 보고했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실질 문맹률이 75%인 나라다. 10명 중 7명이 글을 읽어도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만 15세를 대상으로 하는 국제합업성취도평가(PISA) 읽기 영역에서 2006년 세계 1위를 기록한 우리나라는 최근 2018년 6위를 차지했다. 높은 수준의 학업성취도를 자랑하지만 낮아지고 있는 원인에 대해서 전문가들은 '독서 부족'을 그 원인으로 꼽고 있다. 국민의 96%가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우리나라는 시나브로 책과 거리두기를 펼치고 있는 셈이다. 심각한 학습격차나 낮아진 문해력을 모두 코로나 탓으로 돌리기에는 어패가 있다.
◇ 문해력을 키우는 힘, 질문(質問)
문(文)은 '글월 문'으로 문자화 된 것 체계를 가진 것을 의미한다. 세상의 모든 문화(文化)된 것을 말한다. 문화란 '자연에 인간의 힘을 가해 만들어진 어떠한 것'이다. 여기에는 글이나 그림, 사물, 인간의 습성, 감정, 태도 등이 포함된다. 문은 외향이나 겉으로 드러나는 것을 의미한다. 내면으로 들어가면 보이는 것이 본질(本質)이다. 노자는 항아리를 쓸모 있게 만드는 것은 도공이 빚은 흙이 아니라 빈 공간이라고 말했다. 공자도 일찍이 이것을 간파했다. 옹야편에서 문질빈빈(文質彬彬)을 말했다. 문(文)이라는 겉과 질(質)이라는 내면이 조화로워야 군자답다고 한 것이다. 화려함에 눈이 멀어 그것의 본질을 묻지 않는다면 문해력의 힘은 자라지 않는다. 눈 앞에 일어나는 현상을 과감하게 해체하는 질문을 던져야만 본질을 볼 수 있는 안목이 생긴다. 지금 당장 신문의 오피니언 지면에 기자들이 쓴 기사를 보자. 현상을 날카롭게 해체한 새로운 관점이 얼마나 신선하게 다가오는지 말이다. 그런 부류의 글들은 쓴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것이라고 표현해도 좋다.
문해력의 해(解)는 칼(刀)로 소(牛)의 뿔(角)을 뽑아 풀어 헤치는 것으로 표현할 수 있다. 가르치고 있는 한 제자는 소가 성난 뿔로 달려오면 칼로 찔러야 한다는 독특한 해석을 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우리의 신념을 무너뜨리거나 공격해오는 거대한 정보들을 날카로운 논증으로 간파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본질을 보기 위한 문해력은 질문에서 나오고, 세상의 숨겨진 의도를 풀어내는 생각의 힘이라 할 수 있다. 엘리베이터의 광고판에서부터 최근 이슈 되고 있는 가스 라이팅과 같은 심리적 지배현상까지 지금 당장 우리에게 문해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문해력'은 생존을 위한 힘이 틀림없다.
본질을 묻지 않는 삶은 너무나도 초라한 삶이며 실존에 접근하는 티켓을 구할 수 없다. 문해력의 칼날이 무딘 나머지 아이들에게 날아드는 어떠한 문양도 해체할 수 없다. 오히려 그것에 낙인찍혀 바람에 따라 휩쓸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당장 아이들의 문해력을 키우기 위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자. 너무나도 쉬운 일이다. "네 생각은 어떠니?" "왜 그렇게 생각하니?"라고 물으며 아이들의 독특한 관점을 칭찬하면 된다.
◇ 세상에 의문 가지기
둘째의 햄버거 사건을 계기로 아이들은 광고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광고의 노출이 소비행동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다. 그러자 스스로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지금 아이들의 손에 들려있는 물건들이 과연 자유의지로 구입한 것인지? 어떤 정보의 노출로 산 것인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첫째가 즐겨보는 '라임 튜브'나 '흔한 남매' 등의 채널에서 다루는 소재들이 집에 있다. 시크릿 쥬쥬 요술봉이라던가 흔한 남매 물병이라던가 시나브로 교묘하게 젖어든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 모양이다. 나의 교육으로 문해력의 맛을 본 첫째는 세상이 의문투성이가 돼 버렸다. 쏟아지는 질문에 진중하게 답변을 해주는 것도 여가 귀찮은 일이지만 세상에 의문을 가지는 안목을 만드는 시간이라 나도 자료를 찾아가며 충분히 공을 들인다. 그러면서 나도 배우게 된다.
지금 우리가 듣고, 배운 것들이 얼마나 왜곡돼 있는지 알아차리게 하고, 세상에 의문을 가지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알아차림을 시작으로 문해력의 토양을 만들기 바란다. 요즘 제자들에게 이런 말도 서슴없이 한다. 부모를 포함해서 학교 선생님의 말씀까지 의구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이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어른들이 가르쳐준 것들 속에는 모순과 왜곡, 편견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거기서 깨달음과 배움의 즐거움을 느끼게 하고, 세상을 보는 아이들의 독특한 관점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칼럼니스트 문선종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유치원 교사와 결혼해 두 딸아이의 바보가 됐다. 아이들을 좋아해 대학생 시절 비영리민간단체를 시작으로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이르기까지 지난 16년 동안 아동상담 및 교육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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