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종강 칼럼] 청년에게 끊임없이 배운다
[하종강 칼럼]
줄잡아 식민지 40년, 분단 70년, 군사정부 30년이라는 왜곡된 역사 속에서 나라를 통째로 팔아먹은 사람들과 그에 맞섰던 사람들에 대한 평가조차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는 나라에서 나타나는 비극적 현상이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메이저 언론사’ 기자가 전화를 했다. “페미니즘과 신입사원 채용 문제에 대해 몇 가지 물어봐도 될까요?” 내가 오히려 반문했다. “그 문제를 지금 60대 후반의 남성인 저에게 물어보시는 겁니까?” 기자는 이미 여러 사람을 거쳤는지 “몇 사람에게 물어봤는데 모두 하종강 교수님을 추천했습니다”라고 한다. 물론 나 듣기 좋으라고 지레 한 말일 수도 있다.
여성에게 가산점이나 할당제가 적용되는 것에 대해 20대 남성들이 ‘역차별’이라고 반발하는 현상에 대한 질문이겠거니 짐작하고 심드렁하게 대했는데, 의외로 간단한 문제였다.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채용을 거부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느냐”고 묻는다. 당연히 잘못된 일이라 생각하지만 기사에 인용하지는 말아달라고 했다. 기자가 뜨악해하며 그 이유를 묻는다. “인용 기사에 표기된 제 나이를 보고 독자들은 ‘이 기자가 정신이 있나? 페미니즘과 관련된 문제를 60대 중반의 한국 남성에게 물어보다니…’ 그런 느낌을 받게 될 테고, 기사 전반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겁니다. 솔직히 저도 제 판단을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다른 젊은 학자를 추천했다. 다행히 기자는 “좋은 걸 깨닫게 해주셔서 고맙다”면서 대화를 끝냈다.
괜한 손사래가 아니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대학 수업을 벌써 세 학기째 온라인으로 진행하고 있다. 노동아카데미는 대면 수업 할 수 있는 상황을 기다리다가 결국 한 학기를 건너뛰었고 지금 두 학기째 온라인 강의로만 진행하고 있다. 수강생은 세배나 늘었고 전국 각지는 물론 해외에서도 수강신청을 하는 등 전화위복이 됐다. 그러나 자치회 운영도 어렵고 신영복 선생님께서 생전에 전파해주신 ‘땅탁구’를 해볼 수 있는 체육대회나 ‘역사기행’은 꿈도 꿀 수 없다. 어서 빨리 코로나19 상황이 종식되고 대면 수업을 할 수 있는 날만 기다리고 있는 것이 나 같은 사람들의 자세다.
젊은 사람들은 역시 달랐다. 온라인으로 자치회를 꾸리고, 체육대회도 랜선으로 치르고, 역사기행도 가상체험으로 해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보자고 한다. 내 머리에서는 나올 수 없는 발상이다. 각자 좋아하는 주류를 모니터 옆에 마련해놓고 덕담을 나누며 건배를 하는 ‘랜선 뒤풀이’는 이미 많은 곳에서 정착됐다. 지난 학기 노동대학에서 ‘랜선 뒤풀이’를 하기로 약속한 날, 지방에서 급히 올라오면서 그 지역 특산품이라는 ‘○○한다 말하지 못한 아들의 진심’이라는 긴 이름의 인삼주를 큰맘 먹고 마련했다. 시간 맞춰 모니터 앞에 앉아 자랑스럽게 술병을 들어 보였을 때, 한 수강생이 지적했다. “매우 가부장적인 이름이군요.” 역시 사람은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대기업 사무직 노조를 준비하는 사람들로부터 연락이 왔다. 2천명 가까이 모였다면서 “노동조합 드라마 <송곳>의 실제 주인공”과 노조 설립 및 활동에 관한 자문계약을 체결하자고 한다. 고마운 제안이지만 나는 공인노무사가 아니어서 그런 계약 체결은 어렵다고 답하며 다른 공인노무사를 추천했다. 최근 대기업에 별도의 사무직 노조 설립을 주도하는 청년 직장인들을 ‘엠제트(MZ)세대’라고 부르며 그 특징을 “능력에 따라 대우받는 공정함을 추구한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연령의 한계를 느끼면서도 조심스럽게 생각을 말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은 우선 그 능력을 공정하게 평가하는 것이 불가능한 사회다. “직장 상사에게 입바른 소리를 곧잘 하지만 업무 능력은 뛰어난 부하 직원에게 좋은 평가 점수를 줄 자신이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그렇다”고 답하는 관리자들이 많지만, 반대로 “직장 상사에게 입바른 소리를 곧잘 하지만 업무 능력은 뛰어난 경우 관리자에게 좋은 평가 점수를 받을 자신이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대부분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줄잡아 식민지 40년, 분단 70년, 군사정부 30년이라는 왜곡된 역사 속에서 나라를 통째로 팔아먹은 사람들과 그에 맞섰던 사람들에 대한 평가조차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는 나라에서 나타나는 비극적 현상이다.
둘째, 그 ‘능력’을 갖추게 된 배경이 결코 공평하지 않다. 부모의 경제적 지원을 받으며 취업 준비에만 전념할 수 있는 청년들이 있는가 하면, 자신이 직접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며 짬짬이 취업 준비를 해야 하는 청년들도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다른 세대가 해결해주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공정’이란 공평하고 정의롭다는 뜻이다.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일을 자신의 삶으로 선택하는 청년들도 주변에 적잖이 있다는 것으로 희망의 불씨를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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