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환 "'빽'도 없던 배우 지망생, 재능 부족했지만 미련하게 살아남았죠"[EN:인터뷰]

황혜진 2021. 4. 20.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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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엔 황혜진 기자]

'빽'(Back) 없던 연기 지망생이 숱한 도전을 거듭한 끝에 자타 공인 국민 배우로 거듭났다. 데뷔 57년 차에 접어든 배우 박인환 이야기다.

박인환은 4월 19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뉴스엔과 만나 tvN 월화드라마 '나빌레라'(극본 이은미/연출 한동화) 촬영 비화를 공개했다.

3월 22일 첫 방송된 '나빌레라'는 나이 일흔에 발레를 시작한 주인공 심덕출(박인환 분)과 스물셋 꿈 앞에서 방황하는 발레리노 이채록(송강 분)의 성장을 다루는 작품이다. 2016년 첫 연재를 시작한 이래 별점 만점, 평점 10점을 기록하며 웹툰 마니아들을 사로잡은 카카오페이지 다음 웹툰 '나빌레라'(HUN, 지민)를 원작으로 한다.

종영까지는 3회를 남겨둔 상황. 30여 년 만에 주연으로 나선 박인환은 흠잡을 데 없는 호연으로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고 있다.

박인환은 극 중 우편집배원 출신 70세 심덕출로 분해 열연을 펼치고 있다. 그에게 '나빌레라'라는 작품은 도전 그 자체였다. 1945년 생, 올해 일흔여섯이자 데뷔 57년 차 배우가 된 그는 일흔의 열정맨 심덕출을 한 치의 부족함 없이 구현했다. 박인환이 아닌 심덕출은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마음껏 표현하는 데 주저하지 않고, 꿈을 이루기 위해 몸매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발레복을 착용하고 뻣뻣한 몸을 열심히 움직이는 심덕출의 고군분투는 이를 지켜보는 시청자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슬럼프를 겪으며 방황하던 스물셋 발레 유망주 이채록(송강 분) 역시 그런 심덕출과 함께하며 유의미한 변화를 겪는다.

박인환은 '나빌레라'가 품은 메시지에 대해 "요즘 젊은이들이 살기 쉽지 않은 것 같다. 특히 코로나19 때문에 단절돼 있기도 하고, 사회 자체가 너무 힘들기도 하니까 서로 소통하고 위로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여유가 있어야 할 수 있는 건데 서로 한 번 더 이야기해주고 보듬어주고 감싸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연기했다"며 "이 나이에 부딪힐 수 있는 게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무리를 해보자는 마음으로 발레 드라마에 도전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사 중 위로가 되는 말이 많았다. 사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 제일 싫어하는 시간이 도덕, 윤리 시간 아닌가. 학교에서 들었던 이야기인데 요즘 드라마에서 그런 이야기로 시청자들을 가르치려고 하면 싫을 수도 있다. 거부감 들지 않게 전달하려고 노력했다"며 "연출 덕도 많이 봤다고 생각한다. 카메라 감독 출신이라고 했는데 영상미가 끝내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감독과도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찍었다. 작품이 어떨 때는 문학적이라는 느낌이 들더라"고 덧붙였다.

"어떨 때는 짓궂게 하기도 했고 때로는 장난스럽게 하기도 했어요. 채록이한테도 농담식으로 장난식으로 이야기를 했죠. 극 중에서 어리광을 부리는 연기도 채록이가 아니라 제가 했어요.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렇게 교감해가는 과정을 통해 젊은이들이 '저런 노인네가 있나?'라고 생각한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노인이라는 게 피하고 싶은, 대화가 안 통하는 꼰대처럼 보일 수도 있잖아요. 그렇지 않고 같이 대화하고 교감하는 할아버지가 되려고 노력했죠."

상대역 송강과의 호흡에도 만족감을 드러냈다. 박인환은 "요즘 드라마가 젊은 층 위주로 돌아가지 않나. '나빌레라' 전까지 난 송강이 그렇게 유명한지 몰랐다. 넷플릭스에 나왔다고 하더라. 송강이 레슨을 받고 촬영할 때도 레슨을 받았더라. 점점 더 연기가 좋아졌고 잘 받아들인다. 비주얼은 뭐 말할 것도 없고. 훤칠하고 얼굴도 주먹만 하고 피부색도 좋아서 화면 보이면 그냥 좋다"고 칭찬했다.

박인환의 알츠하이머 연기는 현실적이라는 반응을 얻었다. 박인환은 "알츠하이머라는 게 사람 못 알아보고 가족 못 알아보고 하는 건데 나도 알츠하이머에 대해 이야기만 들었다. 언뜻 보면 티가 안 난다. 정신이 깜빡 갔다가 돌아오고 하기도 한다고 하더라. 연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특별하게 티를 내지 말자고, 건망증처럼 연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요즘 인구 4명 중 1명이 노인이라고 하더라고요. 고령화라는 문제가 특별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사회적으로 여러 가지 파생되는 게 있잖아요. 그런 걸 드라마로 만들면 시대의 거울이 된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차원이 됐든 노인에 대한 이야기를 드라마에서 다루며 조명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죠."

박인환은 '나빌레라'를 통해 '쁘띠 인환'(작고 소중한 박인환), '덕며든다'(덕출+스며든다) 등 애칭을 얻었다. 시청률이 다소 아쉽게 다가웠지만 시청자들의 호평에 신이 났다는 그는 "원래 댓글을 안 보는데 이번에는 댓글 보는 재미가 있더라. 우리 딸도 드라마를 보고 잘한 것 같다고 하더라. 내가 연극을 오랫동안 해와서 연극적인 부분이 있다. 좀 과장된 느낌이 있는데 그런 부분이 '나빌레라'에서는 하나도 안 보였다고, 좋았다고 하더라. 나도 항상 내 연기에 대해 고프고 아쉽고 부족하게 느껴졌는데 '나빌레라'를 보면서 나도 눈물이 나더라. 아내는 본인이 출연해놓고 왜 본인이 우냐고 하더라"며 웃었다.

이어 "'나빌레라'는 꿈과 도전에 대한 드라마다. 하고 싶은 것에 도전하는 것, 1등도 중요하지만 도전하는 과정, 완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어도 해보고 싶은 걸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중앙대학교에서 연극영화를 전공한 박인환은 1965년 드라마 '긴 귀항 항로'로 정식 데뷔했다. 우리네 아버지 상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꼽히는 배우다.

"1964년 연극영화과에 입학했어요. 재주도 없고 '빽'도 없는 사람이었죠. 당시 연기과에는 재능 많은 사람이 많았고, '빽'도 있어야 했던 시절이었어요. 그냥 한 번 해보겠다고 했죠. 그렇게 시작한 게 지금 여기까지 온 거예요.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어요. 중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기도 했고 밥벌이를 해야 하니까 경영학과로 전과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죠. 그래야 은행 같은 곳에 취직해 돈을 벌 수 있으니까."

지난 57년을 돌이켜봤을 때 목표한 대로 잘 걸어온 것 같냐는 기자의 물음에 박인환은 "연기를 하고 싶어 연극영화과에 들어갔지만 살아남기 힘들었다. 당시에는 한 클래스에 한 명 살아남기가 힘들었다. 그게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를 알았다. 다들 휴학하고 사업하러 나가고. 난 그냥 굳세게 가겠다고 결심하고 포기를 못한 채 계속 해온 거다. 제일 어려웠던 게 경제적인 부분이었다. 연극을 하다가 결혼을 했는데 아이가 생기니까 삶이 현실적이 됐다. 시간강사를 한 달 동안 하면 20만 원을 벌었는데 당시 20만 원이면 쌀값과 연탄 값이다. 그러다 다시 연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연기를 하다 보면 재능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재능도 재능이지만 저처럼 미련한 사람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부족하니까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죠. 남들이 2~3번 할 때 전 5번을 했어요. 그래도 한 번 할 때마다 찾아지는 게 있더라고요. 그렇게 더 열심히 하다 보니까 여기까지 왔어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나빌레라'도 저한테 찾아온 행운이니까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사진=tvN ‘나빌레라’ 제공)

뉴스엔 황혜진 bloss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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