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으로] 법과 제도만으로는 산업재해를 막을 수 없다

2021. 4. 20.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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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8월 2일, 포항제철 제3기 발전송풍설비 공사가 한창인 현장에 박태준 포항제철 사장과 임직원, 외국인 기술감독자, 근로자 등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 자리에서 박 사장은 공정률 80%에 달했던 발전송풍설비를 폭파했다. 현장에서 부실 공사 정황이 발견돼 안전사고가 우려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완공을 코앞에 둔 설비가 ‘안전’을 이유로 원점으로 돌아갔을 때 현장 관계자들의 가슴에는 무엇이 새겨졌을까.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영일만의 신화’는 이처럼 안전과 품질에 완벽을 추구했던 박태준 사장의 리더십으로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사업주·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 조치 의무가 대폭 강화된 중대재해처벌법이 내년 1월 본격 시행을 앞두고 있다. 전부 개정 산안법이 시행된 지 2년 만에 더욱 강화된 내용으로 시행을 앞둔 중대재해법으로 인해 산업 현장의 안전보건관리 관행에 일대 변화가 예고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기업들의 발걸음도 분주해지고 있다.

주요 대기업들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시스템에 산업안전 우선 경영방침을 포함해 발표하고 있으며, 이를 뒷받침할 조직 구성에도 나서고 있다. 모 그룹 계열사에서는 CEO 수준의 권한을 부여받은 최고안전환경책임자(CSEO)를 신설하기도 했다.

또 기술력과 전국 네트워크를 갖춘 우리 협회 등 민간재해예방기관에 컨설팅을 요청하며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으며, 법률 자문을 위해 로펌의 문을 두드리기도 한다.

왜 그럴까. 바로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 주요 요인이라고 본다. 안전보건 조치 소홀로 사망사고 발생 시 ‘1년 이상의 징역’ ‘최대 50억원 벌금’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법의 목적은 처벌에 있지 않다. 이 법을 계기로 기업 경영자들이 안전 비용을 ‘낭비’가 아니라 ‘투자’로 인식해 달라는 것이다.

포스코의 ‘3기 발전송풍설비 폭파 사건’처럼 안전하지 않으면 작업하지 않도록 하는 분위기가 산업 현장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처벌이 목적이 아닌 만큼 정부는 중대재해 발생 시 안전경영 시스템 구축 등 기업의 실질적인 재해예방 노력이 있었는지를 종합적으로 평가해 행정적 제재나 처벌 수위를 다르게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기업도 처벌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투자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업이 안전에 소홀함이 있었을 경우에는 법 집행을 엄정하게 해야 한다.

또 사망사고의 81%가 발생하는 50인 미만 사업장, 특히 이 가운데 법 적용에서 제외되는 5인 미만 사업장(35.4%)은 대부분이 비용 문제로 안전 시스템 마련에 어려움이 있는 점을 고려해 이들 기업에 대한 예산 지원을 대폭 확대할 필요가 있다.

기업들을 위한 안전 서비스 지원 수준 향상을 위해서 전문 안전기술단체의 육성에도 적극 관심을 둬야 한다.

그리고 산업안전보건청 신설 시 각 부처에 흩어져 있는 산재예방 기능을 집중시켜 범 정부 차원의 정책이 수립 시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노동자들 역시 안전수칙을 준수하고 안전활동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기업도 처벌 회피보다는 안전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실질적인 재해예방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민간 재해예방기관에서는 서비스 품질을 저하하고 있는 저가 수주경쟁을 지양하고, 사업장에 수준 높은 안전기술과 지도·조언이 제공될 수 있도록 역량 강화에 앞장서야 한다.

우리나라는 산업재해율과 사망만인율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 회원국 중 최하위 수준으로, 안전에 관한 한 후진국이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선진국 위상에 걸맞게 안전 분야의 위상도 획기적으로 제고시킬 필요가 있다.

노·사·민·정 모두 하나의 목표를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 그래야만 안전선진국도 될 수 있고, 중대재해법이 의도한 소기의 목적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박종선 대한산업안전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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