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묵은 갈등 '실버·공동배송'으로 풀자
"단지에서 모아 전달하는 공동배송 체계 절실"
[이데일리 정병묵 기자] “뿌리 깊은 주민-택배기사 간 갈등을 없애려면 공동배송 시스템 도입을 고려해 볼 만 합니다.”
물류·교통 전문가 김용진(사진) 인하대 아태물류학부 교수는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대규모 아파트 단지 주민과 택배기사 간 분쟁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며 구조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며 “이번에 문제가 된 A아파트 사례가 재발하지 않으려면 택배가 고객 손에 전달되는 ‘말단배송’ 단계를 전문화하는 공동배송 체계를 확립하는 것이 해결법”이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저상차량에서 허리를 숙인 채 수많은 물건을 나르는 것은 상당한 격무로 기사들의 심각한 건강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며 “하지만 후진하는 택배차에 아이가 치이는 사고가 발생하는 등 단지 내 안전사고 위험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양쪽의 주장 모두 일리가 있다고 봤다.
김 교수는 이번에 문제가 된 A아파트처럼 대규모 단지의 경우, 현재 일부 택배사가 운영하고 있는 ‘실버택배’ 방식을 택배사들이 함께 활용하는 모델을 제안했다. 예를 들어, 단지 내 지정된 곳에 A·B·C사 택배차량이 물건을 놓고 가면 실버기사들이 집집마다 갖다 주는 것이다. 한 날 한 가구에서 3사의 택배를 각각 수령하는 경우, 택배기사 3명이 단지에 트럭을 대고 물건을 들고 아파트를 각각 오르내려야 한다. 그럴 필요 없이 실버기사가 단지 내에서 한 가구에 갈 물량을 모아 갖다 주면 된다는 것이다. ‘실버택배를 활용한 공동배송’ 시스템이다.
실제 유사한 방식으로 해법을 찾은 아파트 단지도 있다. 세종시 보람동 호려울마을 10단지는 2016년 입주 후 A아파트처럼 주민-기사 간 갈등이 극심했지만 ‘전동 카트’를 통해 문제를 해결했다. 기사들이 단지에 진입하지 않고도 전동 카트를 이용해 힘들 덜 들이고 물건을 배송할 수 있는 것이다. 서울 강남구 한 아파트에서는 기사들이 단지 내에서 ‘끌대’로 물건을 나르며 불만을 표하고 있으니 그보다는 나은 해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전동 카트 활용은 택배기사들마다 생각이 달라 저항이 있을 수 있기에 본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김 교수는 “단지 내 배송 전담 인력이 있으면 A·B·C사 기사들은 주민들과 신경전을 벌일 필요가 없다”며 “기사들의 영업권 때문에 단지 내 전담 인력을 두기가 힘들 수 있는데, 사회적기업 형태로 노인층을 고용한다면 정부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물론 실버기사들과 일정 부분 수익을 공유해야겠지만 택배 물동량이 폭증하고 있기 때문에, 손이 많이 가는 말단배송 작업을 분업화함으로써 (택배기사들이) 얻는 게 더 클 것”이라며 “기사의 영업권·건강권을 보장하고 주민 안전을 지키면서 노인 일자리 창출 효과까지 얻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차량이 지상에 진입할 수 없는 공원형 단지가 계속 지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말단배송 시스템 구축은 ‘미래 택배’ 시스템를 위한 선결 조건이라고 김 교수는 강조했다.
김 교수는 “국토교통부에서 현재 ‘로봇배송’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르면 10년 내에 상용화될 지도 모른다. 아파트 단지 내 한 터미널에서 각 가정으로 물건이 배송되는 자동화 시스템이 가능해질 것”이라면서 “특히 3기 신도시를 비롯한 신규 개발 단지는 이러한 미래 물류 인프라 기술을 감안해 구축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김용진 교수
△서울대 토목공학과 도시공학전공 학·석사 △미국 텍사스대 오스틴캠퍼스 교통공학 박사 △교통개발연구원 동북아물류경제센터 책임연구원
정병묵 (honnezo@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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