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격'이다[광화문]
나는 가격이다. 때때로 임금, 임대료, 공시지가, 금리, 보험료 등으로 불린다. 정치인들은 지지와 인기를 얻기 위해 나를 자주 손댄다. 건들수록 탈이 날 때가 많은데 말이다.
사람들은 '임금=가격'이라는 걸 잘 모른다. 임금은 노동서비스의 가격이다. 최저임금제는 국가가 노사의 임금 결정과정에 개입해 최소한의 가격을 보장하도록 하는 것이다.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 등을 고려하지 않고 최저임금을 확 올리면 사용자는 비싼 값을 지불하지 않는다. 고용이 억제되고 실업자가 늘어난다. 2018년 최저임금을 16.4% 높인 뒤 최저임금 적용 대상자의 취업률이 약 4.1~4.6%포인트 감소(한국경제연구원 기준)했다. 아르바이트 등 저임금 일자리가 없어지고 키오스크(무인정보단말기) 등으로 대체됐다. 나를 함부로 매만진 부작용이 두드러지자 최저임금 인상률은 2020년 2.9%, 2021년 1.5%로 둔화했다.
전월세 등과 같은 임대료도 가격이다. 임대료 상한제를 하면 당장 저소득층의 주거비를 안정시킬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정반대다. 유지·보수비나 세금 등 임대인의 지출부담이 커지는 등 집을 빌려줘서 얻는 이익이 은행금리보다 낮다면 임대사업을 포기한다. 임대주택의 수가 주는 것이다. 임대주택이 희소해지면 어느 시점에 임대료는 급등한다. 전월세 인상폭을 5%로 제한하고 '2+2년 계약제'를 도입하면 전세가 5만5800가구 감소하고 전세의 월세전환이 심화할 것이라는 보고서(2015년 국토교통부 용역)도 있었다. 그 결론처럼 이른바 '임대차3법'에 따른 전월세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의 영향으로 전세매물의 씨가 말랐다. 전세의 월세전환과 전월세가격의 동반 상승이 현실에서 구현됐다.
공시지가가 가격이라는 것은 명칭에서도 드러난다. 억지로 올리니 결과가 참혹하다. 세금을 더 부과해 집에 대한 수요를 줄이겠다는 의도로 공시지가를 높였다. 역설적으로 집값은 더 뛰었다. 공시지가는 땅값인데 역시 땅값을 의미하는 택지비가 낮아질 리 없다. 최저임금을 인상했으니 건축비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인건비가 더 들어간다. 택지비와 건축비를 끌어올려놓고 집값을 잡을 수는 없다. 산수가 안 되거나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오히려 정부 스스로 '분양가상한제'에 반하는 짓을 한 것이다. 물론 분양가상한제가 완전히 무력화된 것은 아니다. 분양가상한제는 재건축을 위축시켜 미래 공급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집을 부족하게 만들어 가격이 폭등할 토양을 만든 것은 정부인 셈이다.
금리는 돈의 가격이다. 오는 7월부터 법정최고금리가 24%에서 20%로 내려간다. 금융회사는 돈 떼일 것을 염두에 두고 돈 빌리는 가격을 매긴다. 이를 인위적으로 떨구면 대출을 해줄 수 없다. 저축은행과 카드회사에서 돈을 빌릴 수 있던 사람들은 대부업체로, 대부업체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불법 사금융으로 갈 것이다. 금융당국이 보수적으로 추산한 게 31만6000명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저축은행에서 떨려난 이들이 대부업체로 가면 더 높은 금리를 물어야 하고 한도도 준다. 같은 금액을 꾸려면 2개 이상 대부업체를 이용해야 한다. '다중채무자'가 양산된다.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 전월세·분양가상한제, 최고금리 인하 등이 선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것이다. 공시지가 인상은 투기꾼을 때려잡는 정의로운 행위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렇지만 가격이 시장에서 형성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나를 함부로 통제하면서 정부가 매기는 세금과 국민연금보험료, 건강보험료 등 정부가 부과하는 공공가격만 통제하지 않는다. 이런 게 영어 신조어인 'naeronambul'(내로남불) 아닌가? 제아무리 착한 정책을 펴려 했다고 해도 경제가 돌아가는 이치를 알지 못하니 대형 사고를 친다. 저소득자와 세입자 또는 무주택자, 저신용자를 죽이게 된다. 그래 놓고선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르고, 무슨 일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정치인과 정부의 무지와 무능과 무책임은 동의어다. 알고도 그랬다면 '사악'한 것이다. 만신창이가 된 가격 입장에서 한 말씀 올렸다. 끝으로 나의 주제곡을 들려 드린다. "Let it be."(내버려 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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