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난타'와 '점프'.. 비언어극 어디갔나
‘난타’도 없고 ‘점프’도 없다. 공연 시장에서 ‘비언어극(nonverbal performance)’이 실종됐다. 미국 브로드웨이에도 진출한 주방 코미디 ‘난타’와 무술 코미디 ‘점프’,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사랑하면 춤을 춰라’ 같은 비보이 쇼, 미술 퍼포먼스로 호응을 얻은 ‘페인터즈’···. 대사가 없는 비언어극은 수십 편이 공연할 만큼 흔했는데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코로나 사태로 지난해 3월부터 문을 닫았다. ‘난타’는 관객의 80% 이상이 외국인 관광객이라서 해외여행 길이 열려야 공연을 재개할 수 있다. 당장은 뾰족한 수가 없다. 버티면서 기다릴 뿐이다.”
1997년 초연한 ‘난타’로 세계 58국에서 1442만 관객을 모은 송승환 PMC프러덕션 회장의 말이다. 그런데 공연 시장에서 비언어극들은 감염병이 돌기 전부터 휘청거리고 있었다. 비언어극 실종 사건의 배후로 전문가들은 세 가지를 지목한다. 출혈 경쟁, 중국 한한령(限韓令), 그리고 코로나.
◇출혈 경쟁에 울고
한때는 한류(韓流) 관광 콘텐츠 중 하나였다. 한국관광공사가 2006년부터 ‘코리아 인 모션(Korea in Motion)’이라는 페스티벌을 개최해 비언어극을 육성할 정도였다. “무대에서 말[言]을 걷어내자 해외시장에서 경쟁력이 커졌다”는 평가도 받았다.
하지만 2012년 한국에 오는 외국인 관광객이 1000만명을 돌파하면서 지형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한국공연관광협회 회장을 지낸 최광일 두비컴 대표는 “외국인 관광객을 시장으로 보고 비언어극을 무조건 만들어내다 보니 공급 과잉으로 저가 경쟁이 벌어졌다. 작품 수준이 낮아지면서 국내 관객을 잃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몇 년 전부터 값싼 비언어극이 범람했다. 면세점들이 중국인 단체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공연 관람권을 미끼 상품으로 제공하면서 단가를 낮추는 출혈 경쟁이 벌어졌다. 4만~6만원짜리 티켓을 5000원에 판매할 정도였다.
◇중국의 사드 보복에 얻어맞고
2016년 주한미군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를 도입하자 중국은 한류금지령(한한령)으로 보복했다. 비언어극 시장이 피폭됐다. 외국인 관객 가운데 중국인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동극장 박진완 팀장은 “파이가 큰 중국 시장을 놓고 치열하게 다투던 때였다”며 “비언어극 제작사들이 중국 리스크를 줄이려고 동남아 시장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코로나가 터졌다”고 했다.
‘점프’ 연출가 최철기는 중국과 논의하던 ‘셰프’ 상설 공연이 계약 직전에 무산됐다. 그는 “중국과 합작할 경우 ‘마지막 돈은 못 받는다는 생각으로 일을 하라’는 불문율이 있다”며 “중국 자본과 시장은 탐나지만 속거나 돈을 떼이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지난 3일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회담하고 “코로나 상황이 안정되는 대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을 추진하기로 했다. 문화 콘텐츠 분야의 협력 활성화를 위한 중국 측 협조를 당부했다”고 밝혔다. 한한령 해제 요청에 대해 왕이 부장은 “지속적으로 소통하자”며 원론적 입장만 밝혔다.
◇코로나가 치명타
코로나는 비언어극 시장에 치명타를 날렸다. 국제선 하늘길이 막혔고 ‘학단(학교 단체관람)’이 멈췄다. 현재 서울에는 비언어극이 한 편도 없다. ‘인피니티 플라잉’이 경주에서 지자체 지원을 받아 상설 공연 중이지만 관객이 적어 악전고투하고 있다.
‘난타’는 이달 초 제주 전용관만 다시 열었다. 내국인을 대상으로 주 4회 공연한다. 송승환 회장은 “관객과 상호작용이 중요한 ‘난타’를 너무 오래 중단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아서 재개했다”며 “한·중·일 3국만이라도 관광객 왕래가 가능해지는 날이 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광일 대표는 “비언어극을 한 편 만들려면 몇 년이 걸리는데 무너지는 건 몇 개월”이라며 “관광 상품으로 회복되려면 외국인 관광객이 인천공항에 내리기 시작할 때부터 6개월은 필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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