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호 군사전문기자의 국방이야기]'대화 지상주의'로는 北 전술핵 못 막는다
두 도시를 잿더미로 만든 원폭의 위력은 각각 15, 20kt(킬로톤) 정도다. 1kt이 TNT 1000t의 폭발력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각각 1만5000t과 2만 t의 고성능 폭약을 한꺼번에 터뜨린 것과 맞먹는다. 하지만 지금의 핵무기에 비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새 발의 피)이다. 미국과 러시아, 중국 등 주요 핵 강국은 수백 kt을 넘어 메가톤(Mt)급 전략 핵무기까지 배치한 상황이다. 4년 전 북한이 6차 핵실험에 사용한 핵무기도 최대 300kt급 수소폭탄급으로 추정된다. 이런 기준으로 보면 2차대전을 끝낸 핵무기는 경량급 위력의 전술핵 수준에 그친다.
하지만 전술핵이 ‘사용 가능한 핵무기’라는 관점에서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파괴력이 너무 커서 상호 공멸을 초래할 수 있는 전략핵과 달리 전술핵은 위력을 최소한으로 조절해 주요 표적만을 때릴 수 있다. 군사적 옵션으로 활용이 용이한 핵무기는 실전 사용의 유혹도 커질 수밖에 없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올해 초 신년사에서 전술핵 개발을 공식화한 것이 대남 핵 공격의 본심을 노골화한 것이라고 필자가 보는 이유다.
후속 도발에서도 그 저의가 속속 드러난다. 지난달 25일 함경남도 함주군 연포비행장에서 발사한 ‘북한판 이스칸데르(KN-23)’ 개량형의 탄두 중량은 2.5t이라고 북한은 주장했다. 10kt 안팎의 전술핵을 충분히 장착할 수 있는 수준이다. 국가정보원도 처음으로 소형 핵무기(전술핵) 탑재 가능성을 인정했다. 기존 KN-23의 탄두 중량(1t 추정)을 늘려서 대남 핵투하용으로 개량해 첫 테스트를 한 걸로 보는 게 합리적 추론이다.
사거리도 의미심장하다. 북한은 KN-23 개량형이 “동해상 600km 수역의 설정된 목표를 정확히 타격했다”고 발표했다. 우리 군 레이더에는 지구 곡률(曲率) 때문에 450km까지만 탐지됐지만 한미 요격망을 피하려고 하강 단계에서 수평 저공비행을 거쳐 급상승하는 ‘풀업(pull-up) 기동’에 성공한 게 확실시된다.
비행 방향을 남쪽으로 돌리면 한국의 최남단인 전남 진도와 완도에 거의 정확히 떨어진다. 대북 핵심 요격무기인 경북 성주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기지와 미 증원 전력의 통로인 주요 항구가 충분히 타격권에 들어간다는 얘기다. 군 관계자는 “한국 전역의 어떤 표적도 정밀 핵 타격할 수 있는 위협을 과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군 일각에선 유사시 북한의 전술핵 사용을 기정사실로 본다. 개전 초 한미 요격망을 돌파할 수 있는 단거리 탄도·순항미사일에 전술핵을 실어 주요 항구와 공항을 무차별 타격해 미 증원 전력을 차단하면 조기에 전쟁을 끝낼 수 있을 것으로 북한이 판단한다는 얘기다. 실제로 북한은 2016년 김정은의 미사일 발사 훈련 참관을 공개하면서 “해외 침략무력이 들어오는 적의 항구를 핵 타격하는 내용으로 진행됐다”고 밝힌 바 있다.
북한의 대남 핵 폭주가 ‘임계점’에 다다랐지만 정부의 인식은 안이하기만 하다. 미사일 도발을 ‘자위권’이라고 주장하며 원색적 비난을 퍼붓는 북한에 쓴소리는 고사하고, 대화에 목을 매는 ‘대화 지상주의’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있다.
지난 3년간 ‘정상회담 쇼’로 포장된 대북 유화책이 한미를 겨냥한 핵·미사일 고도화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온 현실을 이제는 직시해야 하지 않을까. 더 늦기 전에 북핵 위협의 실체를 꿰뚫어보고, 한미 간 빈틈없는 제재 공조로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압박하는 것이 순리다. 그렇지 않으면 ‘평화·민족 지상주의’에 경도된 대북정책이 한국의 이성을 마비시켜 북핵 고도화의 시간만 벌어준 ‘가스라이팅(gaslighting·상대를 세뇌시켜 지배하는 것)’의 사례라는 비판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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