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의 한국군 코멘터리]과학화·기동화 군대의 그늘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2021. 4. 2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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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국방개혁도 버전업 시대다. 참여정부에서 만들어진 ‘국방개혁 2020’은 군 구조·전력체계 및 3군 균형발전, 병영문화 발전, 문민화 등을 목표로 한 장기적 국방개혁 청사진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국방개혁 2020을 기반으로 한 ‘국방개혁 2.0’을 선언했다. 현 정부 임기 내 완결을 목표로 했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그렇다면 국방개혁 2.0은 지금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을까. 국방부는 지난 15일 서욱 장관 주재로 국방개혁 2.0 추진점검회의를 개최했다. 정부의 국방개혁 추진 성과를 평가하고 향후 과제를 수정하는 자리였다. 국방부는 22사단 ‘헤엄 귀순’으로 뚫린 경계 실패의 원인도 진단했다. ‘과학화경계시스템의 노후화와 기능 미흡으로 과도한 오경보 발생’ ‘육상·해안 동시 경계 등 경계작전 여건의 상대적 부족’이 지목됐다. 그러면서 내놓은 대책이 인공지능(AI) 기반 과학화경계시스템 시범사업의 추진이었다.

국방부 설명을 들으면 AI 시스템이 도입되면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들린다. 과연 그럴까. 과학화경계시스템은 2015~2016년 사이에 전력화됐다. 당시만 해도 최첨단 기술을 적용했다는 이 시스템의 핵심은 광케이블망(광망)을 사용한 철책이었다. 광망에 일정 수준 이상의 힘이 가해지면 경보가 울리는 방식이다. 문제점은 곧 드러났다. 과학화경계시스템은 장비 기능이 약해지고 결함이 발생하는 순간 무용지물로 전락했다. 고라니, 토끼 등이 건드려 경보가 울리는 일이 잦아지는 바람에 철책 아래쪽에는 동물들이 싫어하는 기피제를 담은 깡통들을 줄줄이 매달아야 했다. 장비 오작동도 수시로 일어났고, 기상상황에 따라 경보가 울리는 ‘민감도’가 달랐다. 경사가 심한 산악지대 광망은 폭우가 내리고 태풍이 불면 유실되기도 했다. 지금도 작년 8월 악천후로 유실된 광망 17㎞ 중 상당 부분이 복구되지 못한 상태다. 이런저런 환경을 생각하면 AI 시스템 도입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줄 것 같지는 않다. 경계 실패의 책임은 장비에 있으니, 장비를 업그레이드하면 해결할 수 있다는 발상은 미봉책일 뿐이다. AI 시스템 경계가 뚫리면 그때는 또 어떤 대책을 내놓을 것인가. 과연 철책만을 바라보는 경계가 최선인가를 놓고도 근본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국방개혁 2.0의 현실은 뚫려서 문제가 된 후에야 개선점을 찾는 과학화경계시스템과 같다. 곳곳에 문제가 드러날 수 있는 복병이 숨어 있다. 군은 첨단전력 위주의 기동력 강화를 내세우고 있다. 현재 ‘30×70㎞’인 군단의 작전책임지역은 ‘60×120㎞’로 면적이 3∼4배 확대된다. 병력 우위의 기계화보병사단도 몸집을 줄인 기동사단으로 개편돼 K-2 전차와 K-21 보병전투차량으로 무장하게 된다. 군단과 사단이 기동하는 데는 ‘퍼스트 인, 라스트 아웃’을 모토로 하는 공병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유사시 공병이 전차와 자주포가 갈 수 있는 길을 뚫어줘야 하고, 도하작전을 통해 기동부대의 강습도하를 지원해야 한다. 산악지형이 많은 한반도는 평지작전 위주의 유럽이나 사막의 중동지역보다 공병의 역할이 더 크다. 그러나 공병의 경우 4.3%에서 3.5%로 병력을 줄인다고 한다. 공병이 7%인 미군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교훈으로 8%대까지 높이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러다보니 공병을 투입하는 훈련은 ‘했다 치고’ 하는 시뮬레이션이 많다. 이미 알려진 지뢰지대 100m를 개척하는 데 보통 3~4일이 걸린다고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미확인 지뢰지대를 개척하는 데도 짧은 시간에 ‘했다 치고’ 식으로 훈련이 이뤄진다.

군수도 마찬가지다. 한반도의 작전 종심이 길지 않다는 이유로 상대적으로 홀대를 받고 있다. 군수 지원이 시원치 않으면 기동화 군대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첨단장비 도입은 서두르면서 막상 장비 가동률과 전쟁 지속 능력에 대해서는 소홀히 하고 있다. 소위 과학화·기동화 군대의 그늘에 가려진 부분도 잘 살펴야만 국방개혁 2.0이 국방개혁 3.0으로 나아갈 수 있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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