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포럼] "다문화라고 부르는 게 제일 싫어요"
세대·성별 다른 우리 가족 모두가 다문화 가족이다
“여긴 이제 애들이 정말 없어요. ‘다문화’가 여덟이면 ‘그냥 한국 애들’이 두어 명이야.” 지방 소도시 인근 초등학교에 대해 한 촌로가 한 말이다. 여기서 ‘다문화’란 ‘다문화 가족 자녀’를 말한다. 다문화는 ‘다문화 가족’을 줄인 말로 쓰이기도 하고 ‘다문화 가족 자녀’ 자체가 되기도 한다. 다들 잘 알아듣는다.
학문의 발전은 개념의 발견과 발전 과정이다. 좋은 개념은 현상을 명료하고 효율적으로 설명한다. 대부분의 개념은 공통적 ‘생애사’를 거친다. 획기적 개념의 등장은 그 효능 덕분에 환호받고, 해당 개념이 널리 적용된다. 그러는 사이 그 개념은 초기의 신선함이 흐려지고 오용과 남용으로 설명력을 잃어간다.
안타깝게도 한국 사회의 다문화(가족)는 개념의 일반적 생애사를 적용할 수도 없다. 출발부터 잘못 썼기 때문이다. 우선 정확하지 않다. ‘다문화 가족 지원법’에 따르면 다문화 가족은 국제결혼 가족을 말한다. 즉 국적이 기준이다. 따라서 중국 국적 교포와 결혼한 한국인 가족은 지원 정책의 혜택을 받는다. 반면 한국 국적을 유지해 온, 일본어가 모어(母語)인 재일 교포 3세가 한국인과 꾸린 가정은 대상에서 제외된다. 국적이 일관된 기준도 아니다. 국제결혼 한 외국인이 귀화해도 다문화 가족이기 때문이다.
부정확한 개념은 학술 영역까지 번져 있다. 전 세계 학술 검색 포털인 구글 학술 검색에서 ‘multi-cultural families’를 키워드로 넣어보자. 예상대로 ‘Kim·Lee·Park’ 성씨의 학자들이 쓴 ‘Korean Families’에 대한 연구물만 검색된다. 우리 식의 다문화 가족은 국제적으로 통용되지 않는다. 다종족(multi-ethnic) 가족, 이민자 가족, 아니면 그냥 국제결혼 가족이 통용되는 개념이다.
다문화란 표현은 용법에서도 자기 모순적이다. 다문화라고 하면서 결혼 이주 여성과 그 자녀들에게 ‘한국인’이 될 것, 즉 문화적 동화를 강조한다. 문화적 다름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강조하는 개념이 낙인과 차별의 언어가 되어 버렸다. 다문화를 저개발국 출신자들과 연결해 사용하면서 초래된 결과이다. 그래서 ‘다문화 아이들’은 외친다. “다문화라 불리는 게 제일 싫어요!”
‘문화’란 삶의 방식과 가치관의 총체다. 국적이나 생물학적 속성과는 다른 개념이다. 성인이 되어 한국어를 새로 배운 한국 국적 재일 교포가 겪는 문화적 차이는 ‘조선어’가 모어인 중국 국적 교포보다 클 수 있다. 세대·성(性)·계층에 따른 문화적 격차가 급증하는 한국 사회에서 국제결혼 가족의 사춘기 딸이 ‘한국인’ 아버지와 겪는 갈등은 ‘피’의 문제이기보다 세대와 성에 따른 문화적 차이일 가능성이 더 크다. 우리 집 식탁에서 목도하는 장년의 아빠와 20대 딸의 소통상 난점과 크게 차이가 없을 것이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우리는 모두 다문화 가족으로 살고 있다.
두 가지 정도 해결책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다문화 가족’ 대신 ‘국제결혼 가족’ ‘이민자 가족’ 같은 더 정확한 개념으로 바꾸는 것이다. 또 하나는 다문화 개념을 제대로 쓰는 것이다. 다문화 가족은 저개발국 출신 여성이 한국 남성과 결혼해 꾸린 가족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가족이다. 다문화 교육은 문화적 차이와 다양성에 대한 감수성과 존중을 가르치는 것이다. 따라서 이른바 ‘다문화 학생’이 대상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 대한 교육이어야 한다. 그래서 어느 날 아이들이 “저도 다문화예요!”라고 주장하는 장면이 펼쳐지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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