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사진기로 붙잡은 봄
대학 시절 사용하던 필름 카메라를 오랜만에 찾았다. 방전된 건전지를 교체하고 필름을 넣어보니 작동되어서 올봄 풍경을 아날로그 사진기로 담을 수 있었다. 하지만 동네 사진관이 대부분 사라져, 충무로의 한 현상소로 필름을 택배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꽃 시즌이라 물량이 세 배 이상 몰려서 조금 늦을 수도 있습니다.” 현상소에서 내가 보낸 필름을 잘 받았다며 이런 문자를 보냈다. 처음에는 ‘꽃 시즌이랑 사진 물량이 무슨 상관이지?’ 생각했다. 하지만 그만큼 사진으로 이 봄날을 담은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로 이해하니, 왠지 미소가 지어졌다. 그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담았을 봄 풍경이 궁금해졌다.
나와 가까운 이들도 유독 이번 봄에는 꽃이 많이 보이고, 사진을 많이 찍게 된다고 말했다. “늘 지나다니던 곳에 그 꽃이 핀 것을 처음으로 유심히 보게 됐다”는 말도 자주 들었다. 미국 작가 레베카 솔닛은 ‘마음의 발걸음’에서 “팬데믹 시기, 사람들은 바로 대문 밖 세계를 더욱 주의 깊게 탐험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번 봄은 많은 이가 늘 그 자리에 있던 나무에 꽃이 핀 것을 관찰한 봄, 매일 다르게 짙어지는 연둣빛 잎을 비로소 발견한 봄이랄까.
나 역시 지난주 다녀온 안산에서 많이 보았던 흰 꽃을 피운 나무가 ‘귀룽나무’였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 나무나 꽃 이름을 새로이 알고 나면 이전에는 없던 풍경이 마음속에 저장된다. 예년보다 더 긴 시간 봄을 바라보고, 봄을 부지런히 사진기에 담는 요즘이다.
“거기 서 봐! 여기 좀 봐.” 멋진 풍경과 함께 누군가를 사진에 담고 싶을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놓치기 싫은 순간을 붙잡으려 휴대전화 카메라를 꺼내기도 한다. 그렇게 담은 순간을 공유하며 찰나의 아름다움을 나눈다. 오늘은 24절기 중 봄의 마지막 절기인 곡우(穀雨)다. 비 온 뒤 더 짙어질 녹색 풍경, 곧 피어날 등나무꽃, 아카시아 향기를 상상하며 깊어가는 봄을 기다린다.
이지나 여행작가·'서울 재발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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