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기 칼럼]4·7 재·보선과 2022년 대선
[경향신문]
4·7 재·보궐 선거가 긴 여운을 남긴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지난해 총선과는 반대의 결과였다. 여당 참패, 야당 압승이었다. 민심이 1년 만에 역전했다. 우리 정치는 이만큼 역동적이다. 둘째, 내년 3월9일 대선의 전초전이었다. 정치 지형이 보수 대 진보의 경쟁 국면으로 변화했다. 이 국면은 정치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가 말한 ‘파국적 균형’의 성격을 드러낸다. 만일 정권교체가 이뤄진다면, 또 한번 격변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 2주 가까이 선거 분석들이 쏟아졌다. 나 역시 선거가 치러진 주말 KBS 심야토론에 패널로 참여해 의견을 내놓았다. 정부의 부동산정책 실패에 대한 분노가 직접적 원인이었다면, ‘내로남불’이라 불리는 정부와 여당의 ‘선택적 공정’에 대한 심판이 배경적 원인을 이뤘다. 집이라는 현실적 삶의 주요 조건과 신뢰라는 정치적 행위의 기본 조건이 이중적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선거 전략이나 캠페인만으로 중도층의 이반을 만회하기란 처음부터 어려웠다.
내년 대선은 어떻게 전망할 수 있을까. 먼저, 지난해 총선과 이번 선거가 보여주듯, 거대 양당의 정치적 지지가 안정적 구조를 이루고 있지 않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국민의 40%에 달하는 중도층의 표심은 이슈와 국면에 따라 출렁거린다. 이번 선거에서 중도층의 주요 관심은 부동산 문제였다. 가격 폭등과 보유세 증가가 특히 중도층의 경제적 이익을 건드렸다. 선거는 일차적으로 이익투표다. 부동산 문제가 다시 한번 정권심판론의 뇌관을 이룰 가능성은 농후하다.
여당의 정치적 전략 또한 주목할 만하다. 사회학자 디트리히 뤼시마이어 등에 따르면, 중도층으로서의 중간층은 타협적 지배블록에 우호적이지만, 비타협적 지배블록에 대해선 정치적 지지를 거둬들인다. 총선 이후 정부와 여당이 주력한 것은 검찰개혁으로 상징되는 적폐청산이었다. 문제는 검찰개혁이 지지 그룹엔 설득력이 높았을지언정 중도층엔 관심을 끌지 못했다는 점이다. 다수 중도층은 외려 일자리와 양극화 등 사회경제적 과제에 관심이 컸고, 방역을 넘어선 백신 수급에 눈길을 돌렸다. 다시 한번 말하면 선거는 일차적으로 이익투표다. 일자리, 양극화, 코로나19 완전 극복 등이 내년 대선에서 핵심 의제들을 이룰 것임은 분명하다.
이러한 나의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선거에는 또 다른 논리, 즉 가치투표가 작동한다. 나 역시 공감한다. 인간은 경제적 존재이자 철학적 존재다. 우리 삶은 이익 못지않게 정념·신념·이념을 포괄하는 가치로부터 영향 받는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선거인 대선은 정책 경쟁인 동시에 가치 전쟁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 가치 전쟁은 산업화냐 민주화냐, 성장이냐 복지냐, 보수냐 진보냐로 외화돼 왔다. 이념적 선호가 분명한 이들은 일관된 가치투표 성향을 보인다. 판단이 어려울 때는 차라리 기권을 선택한다.
가치투표의 관점에서 세대적 경향은 분명하다. 6070세대가 상대적으로 보수적이라면, 3040세대는 진보적이다. 50대가 진보에서 보수로 가는 전이세대라면, 20대는 탈이념적 세대다. 한 개인의 정치적 판단에는 그가 살아온 시대를 반영한, 특히 젊은 시절에 경험한,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이 말한 집합적 무의식인 ‘망탈리테’가 큰 영향을 미친다. 40대의 망탈리테가 1990년대 전반 ‘신세대’라 불린 리버럴한 시대적 분위기로부터 주조됐다면, 20대의 망탈리테는 2000년대 전반 경쟁주의와 능력주의를 강조한 시대적 분위기에서 내면화됐다. 40대와 20대가 보여주는 정치적 거리감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내가 강조하려는 것은, 정치적 지지가 안정적으로 구조화되지 않은 나라의 경우 중도층이 선거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는 점이다. 지난 16일에 발표된 갤럽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현 정권 유지를 위해 여당 후보가 당선되는 것이 좋다’는 응답은 34%에 머문 반면, ‘현 정권 교체를 위해 야당 후보가 당선되는 것이 좋다’는 응답은 55%를 기록했다. 최근 중도층의 마음이 정권심판론에 기울어져 있다고 봐야 한다.
중도층이 전체 국민을 대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민심의 표지판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민심은 바다다. 바다는 배를 띄울 수도, 뒤집을 수도 있다. 이 간명하면서도 고전적인 교훈은 21세기 현재에도 유효하다. 미래의 대한민국호를 조타할 대통령을 꿈꾸는 이라면, 이 교훈을 마땅히 제1의 경구로 삼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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