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조용히 스며든 中 ‘문화 공정’
요즘 방송 관계자들을 만날 때마다 빠지지 않는 화제는 단연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다. 제작비 320억원을 투입하며 올해 최대 ‘기대주’로 꼽혔지만, 방송 2회 만에 문을 닫았다. “몇 년 전이었으면 그냥 넘어갔을 것” “역시 민심은 천심” 등 방송 관계자조차 놀란 표정이다. 그동안 역사 왜곡 등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킨 작품은 많았다. 하지만 시청자 항의에 ‘블록버스터급’ 드라마가 중도 폐지된 건 초유의 일이다.
반중(反中) 정서가 큰 축이었다. 한복과 김치를 자국 문화 유산이라 주장하는 중국의 ‘문화 동북공정’에 대해 분노가 폭발했다. 작품을 쓴 작가가 중국 항저우쟈핑픽처스유한공사의 한국 법인인 쟈핑코리아와 계약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혹이 불거졌다.
조선구마사 사태는 이제 시작일 수 있다. 세계 시장의 ‘큰손’인 중국 자본은 이미 국내에 스며들어 있다. 5월 첫 방송 예정인 tvN ‘간 떨어지는 동거’는 최근 중국 PPL 부분을 편집하겠다고 부랴부랴 발표했다. 반중 정서를 고려했다고 한다. 이 드라마는 ‘중국판 넷플릭스’인 아이치이의 투자로, 한·중이 공동 제작하는 드라마다. 중국 텐센트는 지난해 JTBC스튜디오에 1000억원을 투자했다. 넷마블, 카카오 등에도 거액을 투자했다. ‘한류우드(한류+할리우드)’라 불리며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한류 콘텐츠의 위상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자본에 경도돼 중국색(色)이 가미될 우려도 제기된다.
기우(杞憂)라 하기엔 사례가 있다. 지난해 미국 영화계를 들썩인 책 ‘Feeding the Dragon’(중국에 외주 주기·중국 ‘속국’이 된다는 뜻)의 저자 크리스 펜턴은 “할리우드는 중국 정부와 협력해 중국 이미지를 미화했고, 이젠 사실상 자진 검열로 중국 선전책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 코넬대 출신으로 중국 거대 엔터테인먼트 DMG 그룹에서 20여 년 근무하며 중역이 된 그는 ‘고백록’ 같은 책을 통해 2000년대부터 할리우드가 중국 자본 눈치를 보고, 입맛에 맞춘 사례를 서술했다. 처음엔 중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였지만, 어느새 적극적으로 중국 목소리를 반영했다는 것이다.
영화 ‘루퍼’(2012)에선 ‘누구나 동경하는 곳=프랑스’였던 원래 각본을 ‘상하이’로 바꿨다. 영화 제작사 중 하나였던 DMG에 속한 펜턴이 기획부터 참여해, 할리우드와 함께 상하이를 세계 중심이 되는 미래 도시로 바꿨다고 설명했다. 영화 ‘월드워Z’의 경우 원작 소설 ‘세계대전Z’에서 바이러스 시초가 중국이었던 설정을 대만으로 바꿨다. ‘탑건’ 후속인 ‘탑건: 매버릭’(2021)에선 톰 크루즈 재킷에 일본·대만 국기를 삭제했다.
다음 타깃은 ‘한류’일까? 중국은 할리우드에 비해 ‘손 안 대고 코 푸는 일’이라며 웃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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