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진의 정치시평]우리는 정말 자본주의에서 사는 걸까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2021. 4. 20.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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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30세대의 사고방식이 기성세대와 크게 다르다는 점, 그리고 그들 내부에서도 젠더 간 차이가 매우 크다는 점은 이제 잘 알려진 사실이 되었다. 그리고 그 사실은 이번 보궐선거에서도 다시 한번 확인되었다. 예를 들어 오세훈 후보에게 투표한 20대 남성은 여성에 비해 31.6%포인트나 많았다. 60세 이상 유권자에서의 격차에 비해 10배가 넘는다고 한다. 나는 3년 전 이 칼럼을 통해 젠더정치의 등장을 분석한 적이 있었는데(2018년 3월12일자), 그 이후에 몇몇 정치권 인사들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받았지만 똑 부러지는 답을 주지는 못했다. 사안의 성격상 양쪽의 마음을 동시에 얻는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었는데도 막상 선거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되고 게다가 대선도 1년이 채 남지 않은 시점이다 보니 양당의 움직임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국민의힘은 자신들에게 표를 몰아준 ‘이남자’를 붙드는 것이 살길이라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도 여성친화성을 표방해온 터라 내놓고 말은 못하지만 20대 남성 붙들 생각에 자꾸만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최근 우연찮은 기회에 20대 여성과 남성 여러 명을 심층 인터뷰한 자료를 꼼꼼히 읽게 되었다. 20대라는 공통점이 있을 뿐, 정치적으로는 진보와 보수가 모두 섞여있고 계층적으로도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나 같은 86세대 남성으로서는 피상적으로 짐작만 할 수 있었던 그들의 속마음에 어느 정도 가까이 가볼 기회였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20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계속해서 스스로에게(아니, 우리 세대에게) 질문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우리는 정말 자본주의에서 살아본 것일까?”였다. 86세대가 자부하는 민주화운동은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군부독재에 대한 저항이었다. 자본주의 비판을 공부했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졸업과 동시에 자본주의에 복무했다. 우리가 복무한 자본주의는 4년 동안 학생운동으로 날을 새워도 취직이 되고, 새벽부터 퇴근 후 회식자리까지 성실하게 참여하면 정년이 보장되는, 경쟁 없는 자본주의였다. 즉 우리는 자본주의에 저항해 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자본주의적 삶을 제대로 살아본 적도 없었던 것은 아닐까?

IMF 키즈인 20대는 우리와는 다른 자본주의적 인간이었다. 조직에 헌신하지 않고 단합을 위한 회식자리 한 번 참석하는 것조차 싫어하는 20대를 보며 기성세대는 이기적이고 성실하지 못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그들이 성실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세상의 변화에 따라 성실의 콘텐츠가 바뀐 것일 뿐, 그들은 여전히 성실했다. 다만 그들은 직장에 헌신하는 식의 옛날식 성실만으로는 삶을 꾸려나갈 수 없음을 철저하게 깨달았을 뿐이다. 금수저로 태어나기 전에는 서울에 집을 가질 수 없음을 지난 몇 년간 뼈저리게 깨달은 그들은 직장에 과도하게 헌신하는 대신 짬짬이 주식투자에 몰두하고 다양한 재테크에 열중한다. 그러지 않고는 집도 가질 수 없고, 결혼도 할 수 없고, 출산도 할 수 없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 최대한 효율적으로 자산을 만들어보려고 노력한다. 막스 베버가 분석했던 유럽 자본주의 탄생과정에서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했던 역할을 이들의 생존주의 윤리가 대체하는 셈이다.

그들은 계층이나 이념과 상관없이 현 정부의 부동산정책에 반대했다. 공통으로 사용된 단어는 ‘사다리 걷어차기’였다. 자본주의적 인간에게 부채는 자산의 일부이다. 봉건적 성실성으로 살아온 우리 세대는 빚이라면 펄쩍 뛰지만 20대는 다르다. 일찌감치 ‘영끌’을 해서라도 주택을 소유한 20대는 자신의 집값이 두 배로 올랐더라도 이제 더 이상 올라갈 길이 막혀버린 하우스 푸어가 되었다고 분노했고, 그 막차를 타는 데에도 실패한 대부분의 20대는 ‘하필 지금’ 사다리를 걷어차버렸다며 분개했다.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보편적이었다. 반대의 논리는 명쾌했다. 당장은 임대주택에 산다 하더라도 나중에는 어쩌란 말이냐, 집값은 더 올라 있을 테고 그만큼 경쟁에서 더 뒤떨어질 뿐이다. 거주기간을 연장해준다 하더라도 평생 임대주택에 살란 말이냐. 임대주택 그렇게 좋다면서 왜 그 정책 만든 사람들 가운데 아무도 임대주택에 살지 않느냐.

영끌로 집을 산 한 20대는 유현준 교수의 말을 빌려 이렇게 말했다. 집을 산다는 것은 단순히 ‘내 집 마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소작농에서 지주가 되는 자본주의의 논리를 학습하는 것이었다고. 다시 되돌아볼 일이다. 20대 마음의 변화를 읽는 것이 표 계산으로 해결될 일인지 말이다. 그들은 진짜 자본주의의 시대를 살고 있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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