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건순의 제자백가] 商工人들의 언어, 小人들의 세상
자기 언어로 목소리 내는 新사문난적 돼
士農工商 아닌 商工農士 세상 이끌어야
동양 역사에서 소인(小人)들의 시대가 있었다. 바로 중국의 전국시대다. 소인은 본래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첫째, 도덕이 아니라 이익의 논리로 세상을 사는 사람 그리고 둘째, 정치사회적 의미로써 피지배계층을 구성하는 사람들, 이 소인들이 힘들게 육체노동을 해 군자계급 사람들을 부양했는데 맹자는 노심자(勞心者)-노력자(勞力者) 프레임으로 이런 차별적 질서를 정당화했다. 그러나 춘추시대 말부터 철기의 발전과 보급으로 유가가 고집하는 질서가 허물어지고 소인들은 피지배계층 신분을 벗어나 시대의 주역으로 활약할 기회를 얻게 된다.
철기로 인해 생산력이 비약적으로 신장되면서 계층분화가 일어나고 다양한 직업도 등장했다. 그때 하층민 가운데 두각을 드러내는 이들이 있었는데 토지 개간과 농지 경영 성공으로 지주가 된 이들, 장사로 흥한 대상인들, 출신은 한미하지만 글을 배워 행정·외교 전선에서 활약할 관료 후보군이다. 과거에는 피지배계층이었던 소인들이 능력을 바탕으로 무섭게 상승 중이었다. 특히 상공인의 활약이 두드러졌는데 이들은 당당히 요구했다. 자신들의 능력에 걸맞은 자리와 지위를 달라고, 정치·사회적 자원 분배의 룰을 전면적으로 고치자고. 전국시대 당시 소인은 급부상하는 실력파 차상위계층을 일컫는 말이었다.
소인들은 능력 중심의 인사행정, 사유재산의 보호, 계약과 투명한 법치 등을 주장했는데 당시 전국시대 군주들은 이들을 무시할 수 없었다. 총력전의 시대, 제도 혁신과 군사혁명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군주들이 중용해 체제의 중심부로 편입된 소인들이 있었는데 신분 상승만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생각과 논리가 텍스트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게 바로 《한비자》와 《상군서》 《묵자》 《관자》 등이다. 그 책들을 보면 상공인의 자의식과 욕망, 논리가 담겼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시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전국시대가 종결되면서 소인들의 논리와 사상은 사장됐고 이후 동양 역사에서 버림받았다.
특히 우리가 심했다. 법가와 병가, 묵가와 양명학을 공부하면 사문난적이란 낙인이 찍혔고 큰 처벌도 각오해야 했다. 사(士)와 농(農)을 대변하는 사상만이 득세했고 상(商), 공(工)을 대변하는 논리는 발붙일 수 없었는데 오늘날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상공인의 노력으로 외화라는 생명수를 길어 와 먹고사는 나라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 상공인에겐 언어가 없다.
언어가 없으면 자부심을 가질 수 없다. 인재를 입도선매할 수 없으며 특히 자기방어가 불가능하다. 언제든 정치권력의 전리품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우리의 지적 전통과 텍스트에서 상공인의 언어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전국시대 실력파 소인들의 논리가 담긴 텍스트들이다. 묵가와 법가, 병가의 텍스트, 거기에 양명학까지. 이것이 상공인의 언어가 될 수 있는 사상들인데, 소인들의 학문이 연구돼 사회와 공유되면 어떨까? 현대를 사는 이 땅의 소인들이 언어를 갖도록 말이다. 안 그래도 근대는 소인의 세상 아닌가? 소인들이 당당해야 진짜 근대사회라 할 수 있는데 아직 한국은 진정한 근대사회를 달성하지 못했다. 탈근대 담론은 현대판 사대부들의 지적유희와 사기였을 뿐이고.
최상위권 학생들이 창업의 장으로 달려가는 사회, 기술자와 마이스터들이 자부심을 갖고 일하는 사회, 기업인이 국가권력의 자의적 행사에 모욕당하지 않는 사회는 상공인들이 언어를 가지려는 노력에서 시작해야 한다. 안 그래도 ‘87년 체제’의 끝이 보인다는 말들이 많다. 새로운 사회를 열어야 한다면 우리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이 아니라 상공농사(商工農士)의 세상을 만들어가야 하는 게 아닐까? 농경사회적 순함이라는 뜻의 인(仁)이 제일 중시되는 인의예지신의 세상이 아니라 계약과 거래에 바탕을 둔 신뢰라는 사회적 자원이 으뜸이 되는 신의예지인(信義禮智仁)의 세상을 만들고 말이다. 감히 말하고 싶다. 소인들의 세상을 위해 소인의 사상을 공부하는 현대판 사문난적이 나와야 한다고.
임건순 < 동양철학자·‘제자백가 인간을 말하다’ 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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