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시진핑 '국제관계민주화'의 속뜻은

2021. 4. 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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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중국몽’을 향한 새로운 세계질서 구축을 시도하는 중국의 전략적 향방을 읽는 방법 중의 하나는 중국이 내놓는 국정 담론과 슬로건의 행간을 탐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시진핑 전임 후진타오(胡錦濤) 집권 시기 중국의 대외전략 슬로건이었던 ‘화평굴기’(和平崛起)는 말 그대로 ‘평화롭게 불뚝 서다’였는데 '굴기'(rising)란 형용이 결국 ‘패권 추구’를 지향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자 중국정부와 관방언론은 이를 조용히 ‘화평발전’(和平發展)으로 수정하였다. 뒤의 두 글자를 ‘굴기’에서 ‘발전’으로 수정한 것이다. 2021년 작금의 회상적 시각에서 보면 원래 표현인 ‘굴기’가 더 적합했던 것 같다.

서양 학계에서는 이를 말 속임수라 보기보다는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당시에 중국은 이렇게 외국의 비판도 수용할 수 있는 포용적 자세를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공세적 시진핑과 다르다는 것이다.

‘화평굴기’는 중국의 대외전략에서 널리 알려진 대표적 담론이지만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는 것도 있다. 그중 하나가 시진핑 시기 들어 부쩍 많이 쓰는 ‘국제관계의 민주화’(國際關係民主化)란 표현이다. ‘민주화’를 직접 겪은 한국에서 거부감이 없는 표현이겠지만 중국이 이 표현을 어떻게 전략적으로 사용하고 있는지도 알아둘 필요는 있다. 예컨대 왕이(王毅) 외교부장은 2020년 9월 미중 갈등을 논하면서 미국이 ‘국제관계의 민주화’란 시대적 흐름에 순응(顺应)하고 양국 갈등 문제를 정확하게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도 ‘국제관계의 민주화’란 표현이 등장했다.

시진핑 역시 최근 바이든과의 전화 통화에서 뜬금없이 미국이 '세계적 흐름'(世界潮流)에 순응해야 한다는 표현을 썼다. 속이 깊은 중국인들도 종종 자국 정부가 내놓는 정치 시그널을 놓고 갑론을박 ‘해석’ 논쟁을 벌이는데, 결국 공산당 기관지 광명일보(光明日報)가 나서서 논쟁을 평정했다. 광명일보는 시진핑의 이 표현을 '국제관계의 민주화'를 설명하는 문장 바로 뒤에 배치했다(2021년 3월 24일 보도). 행간에서 의미를 찾으라는 절제된 부연이다.

‘국제관계의 민주화’는 시진핑 집권 들어 거세지고 있는 미중 갈등 풍파 속에서 중국이 미국에 요구하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미국이 주도하는 기존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이고 그것에 대한 변형 요구다. 2018년 6월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 연설에서 시진핑은 “국제 관계의 민주화는 이미 막을 수 없는 시대적 조류가 되었다”(国际关系民主化已成为不可阻挡的时代潮流)라고 강조했다. 이렇듯 우리가 알게 모르게 중국 정부 문헌을 쭉 살펴보다 보면 이 표현이 매우 일관성을 있게 등장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일본의 한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중국인 장윈(张云) 교수는 향후 미중관계가 안정을 잡으려면 미국이 ‘국제관계 민주화’란 전제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中美聚焦. 2021년 3월 24일 기고). 이는 또한 시진핑 집권 후 역시 강조되고 있는 ‘신형(新型)국제관계’와 일맥상통하며, 그 핵심은 사실상 미국이 중국을 ‘동급의 강대국’으로 인정하라는 것이다. 이 말을 돌리고 돌려서 표현한 것이 ‘국제관계 민주화’가 되는 것이다.

결국 ‘국제관계 민주화’란 슬로건은 시진핑 시대 중국 정치의 코드 용어(code language)다. 미국의 분석가들은 중국이 이를 심리전 차원에서 이용하고 있다고 보기도 한다. 예컨대 중국이 자주 언급하는 '인류운명공동체'(人類命運共同體) 슬로건과 마찬가지로 실제적으로는 공산당 주도의 '이념적 순응'(ideological conformity)을 고취하는데 이용하고 있고, 이는 중국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중국의 영향력과 담론을 따르게 하려는 ‘심리전’(psychological warfare)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이성현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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